자고 또 자고

정보공유/SEX 2006. 11. 26. 00:03
당신은 이제까지 몇 명의 여자와 섹스를 했습니까, 라는 질문이 있다.


그런 걸 묻기로는 대학동창 박울희(가명, 32세, 대기업 홍보실 근무)만한 선택이 없다. 막걸리 먹고 토할 때 등 두드려줬겠다, 여차 하면 부축해서 집에도 데려다 줬겠다, 음담패설을 나누기로는 거의 의형제 수준이었겠다, 단도직입, 질문은 이랬다. “나 커보여? 잘할 것 같아? 당연히 웃겠지. 그리곤 건성으로 진짜 진짜 잘할 것 같다고 말하겠지. 한 번 더 크게 웃겠지. 그런 대답이 듣고 싶은 거라면 전화해서 굳이 왜 물어 내가.” 미리 정색하고 경고했다. 그녀는 도장 찍듯 대답했다. “평소엔 별로, 서면 만땅.” 이번엔 내가 웃었다. “맞지?” 그녀가 되물었다. “너 감이 많이 떨어진 것 같다.” 내가 얼버무렸다. “감은 떨어졌지. 사시사철 눈앞으로 쨍기는 청바지 입은 애들이 휙휙대던 때랑, 부장 과장 이사 전무 대리 죄다 양복 바지 올려입고 다니는 지금이랑은 일단 연구 환경이 다르잖니. 하지만, 넌 알아. 확신 100 %, OK?”

그녀에게 전화를 건 이유 중, 대학동창이라서라는 건 두 번째 이유였다. 무엇보다 그녀의 출중한 능력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 출중한 능력이란, 한마디로 ‘척보면 맞히는’ 능력인데, 그녀 표현에 의하면 “지나가는 남자가 한겨울에 무스탕을 입었어도 스캔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여성학 모임에서도 입이 걸걸한 페미니스트이길 자처했던 그녀는 몇 가지 학설까지 정립하고 있었다. 이른바 ‘코설’과 ‘손설’이 대표적이었고 부가적으로는 ‘허벅지와 입술의 상관관계’나 ‘털과 거기’ ‘생기고 못생기고는 둘째 문제’ 같은 보충학설도 시시때때 들려주곤 했던 것이다. “학설은 무슨, 웃자고 한 얘기지. 하지만 실전에선 적중률 80%를 자랑해.” 그녀는 거기까지 말하고 나서야 내가 왜 ‘그 따위’ 질문을 하는지 물었다. 나는 순순히 취조에 응하는 용의자처럼 말하기 시작했다. “살이 쪘어. 요즘 내가. 그거랑 상관 있을 거야. 하기 싫어지더라. 닷새 동안 다섯 명과 한 적도 있는데, 요즘은 씻기도 귀찮아. 막상 하게 되면 아닐 거야라고 생각했는데, 하는 동안도 별로인 거 있지? 내가 봐도 내가 별로야. 천장에 거울 달린 곳에서 하라면 그냥 불 다 끄고 잠이나 잘 것 같아. 근데 여자들은 또 남자 보는 눈이 다르잖아. 섹시하다 아니다의 기준이 오묘하잖아. 남자들이야 대충 비키니면 땡일 수 있지만, 여자들은 뭐 운전석 앉아서 후진하려고 고개 돌린 남자의 턱이 멋있네 어쩌네 하는 거미줄로 방귀 얽는 것 같은 소리도 하는 족속이잖아. 나 너무 많이 해서 닳았나? 네 이론 중에 그런 거 관련된 거는 없니?” 그녀는 짧게 말했다. “살 빼. 그럴 때 됐어.” 우린 다른 얘기를 하다 전화를 끊었다.

아침에 야쿠르트를 꺼내러 현관으로 가다보니 굿모닝 텐트는 여전하다. 몽정은 7년 전에 끝난 것 같다. 아쉽다. 불룩해진 채로 양치질을 하면서 거울을 보면 어떤 안도감이 생긴다. 아직 괜찮다는 말이군. 그건 꽤 더러운 기분이다. ‘당연하지 나이가 몇인데, 그런데 이러다 늙는다 이 말씀이지….’ 이랬다 저랬다 한다. 간밤에 울희에게 전화를 걸었던 게 생각난다. 밤 생각 다르고 아침 생각 다른 건 당연하지만, 술김이긴 했어도 뭐 잘난 일이라고 전화까지 했는지, 감탄사 비슷한 욕이 나왔다. 말 옮기는 애는 아니니까 그런 걱정은 없었지만, ‘내가 진짜 그게 걱정이긴 한가보다’ 하는 생각에, 되려 씁쓸했다. 문자 메시지가 와 있었다. 울희였다. ‘넌 몇 명 하고 잤어? 난 네가 말하면 말할게.’ 웃음이 나왔다. ‘미친년.’

몇 명과 잤는지 헤아려보기 시작한 건 회사로 가는 택시에서부터였다. 일단 처음부터 막혔다. 중학교 때 그 사건을 하나로 쳐야 되나 말아야 되나가 문제였다. RCY라는 모임이 있었다. 갑자기 무슨무슨 응급처치 대회에 참가하게 된 상황이었고, 우리는 인근 여중학교에 모여서 함께 공동실습에 들어갔다. 상대를 붕대로 싸매고, 들것으로 나르는둥 꽤 액션이 능동적인 것들이라서, 우리는 연신 웃음이 떠나지 않는 가운데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 한낮을 보내곤 했다. 초등학교 동창이었던 P와 나는 키스라는 걸 했다. 무작정 혀를 밀어넣는 방식이었다. 이가 부딪혔다. 그러고는 벗기지도 않은 채(벗길 수는 없었다), 몸을 밀착시켰다. 그러다 사정했다. 달라진 기분에 빨리 팬티를 벗고만 싶어서, P가 어떤 기분인지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뛰었다. P와 마주치지 않기를, 하면서 산 지 20년이 다 되어간다.‘쳐, 말어.’ 기획회의가 끝난 시점의 사무실은 평화가 다뉴브강처럼 흐른다. 싸이월드 대신 워드프로세서를 가동시키고 쓰기 시작했다. P, K, U, 다른 P, L…. 결국 중학교 시절 그 사건의 주인공 P는 ‘한 번’이 되었다.

고 3때까지는 두 번, 대학교에 가서도 상황은 비슷비슷했다. 원리연구회 같은 동아리가 정문 앞에서 ‘순결 캔디’라며 나눠주는 사탕을, 안 받으면 될 것을, 많이 달라고 받아서는 그들이 보는 자리에서 쓰레기통에 넣었던(음악은 레이지 어게인스트 머신을 듣던 때였다) 때니까, 생각으로는 얼마든지 육식동물처럼 ‘해대고’ 돌아다닐 판이었지만, 어린애 생각이란 대개 미련한 것들이기 쉬워서, 키에슬롭스키의 <레드>를 보고는 ‘난 박애주의자가 될 것이다’ 같은 헛소리나 일기장에 쓰던 청춘이었던 것이다. 군대시절을 포함시켜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총 5명이 기록되었다.

그러고 있는데, 이게 무슨 조화인가 싶게 인터넷 기사에 이런 게 떴다. ‘미국 남자, 평균 7명과 섹스’, 기사를 읽어보니 신빙성 있는, 100% 믿을 수 있는 얘기는 아니다. 그래도 그렇지 7명밖에 안된다고? 난 이미 대학 시절까지만으로도, 그러니까 본론은 시작하기도 전에 ‘7’인데? 이 문제를 좀 다른 차원에서 생각해보기로 했다. 울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어제 취해서 그런 거야. 내가 뭐라고 하든?” 나는 다 기억하면서도 물었다. “기억 나지? 일부러 그러는 거지? 내 문자에 답이나 하시지.” 여자들은 극단적으로 영악할 때가 있다. “졸업할 때까지 일곱 명. 너도 말해.” 다그쳤다. “너 걔는 친 거니?” 딴소리를 하길래, “몇 명인지부터.” 울희가 대답하길, “나야 당연히 한 명이지. 너 걘 친 거냐고?” 내가 아는 것만도 세 명이 넘는다고 말하려다가 오늘의 주제는 울희가 아니므로 그만두었다. “치긴 누굴 쳐? 누구 말하는 거야?” 울희는 1999년의 일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너 갔잖아 그때.” 이번에도 순순히 답하는 용의자이고 싶었지만, 그렇게 안됐다. 정말 기억이 안났다. “진짜? 난 왜 기억이 안나지? 내가 먼저 갔다고? 그날 나 필름 끊겼었나? 진짜 기억 안나, 농담 아냐.” 울희는 이모가 조카에게 말하는 투로 말하기 시작했다. “아이구 그랬어요. 기 억이 안나요? 그래 C도 네가 기억 못 하는 것 같다고 그러긴 했었어.” 대관절 무슨 소리. “뭐? C? 내가 C랑 했다고?” 울희는 침착했다. “옛날 얘기니까 하는 거야. 지금은 C도 잊어버렸겠다야. 너 그날 취해서 먼저 나갔거든? 집에 가다가 C를 만났는데, 걔도 한 잔 걸쳤었나봐. 한 잔 더하자 어쩌자 그러다가 걔네 자취방 가서 잤대.” ‘말도 안돼’라고 속으로 얘기하고 있었다. “네가 막 벗더래. 막 안고. C도 싫지는 않아서 그냥 있었대, 했대. 그러더니 막 일어나서 가더래. 끝이야.” 소설이었다. “끊는다. 너도 늙었어.”

미간을 찌푸리고 그런 일이 있었던가를 생각해봤다. 전혀. 기억상실증도 아니고 그 부분만 싹 도려낼 수가 있을까? 그 다음 상황이라도 있을텐데 기억엔 아예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C를 추가했다. 그렇게 여덟 명이 되었다.

밤엔 친구들을 만났다. 어제 마셨으니 오늘 또 마셔야 한다는 게 이유였다. 다 싱글이다. 징그럽다. 옆 테이블에 얘기가 다 들리도록 말해서 민망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내가 말했다. “이제까지 몇 명이랑 잤는지 세어봤냐?” 반응이라곤 “미친놈”뿐이었다. 그래도 물었다. “재미있지 않냐? 몇 명이랑 했는지.”

나는 오늘의 회사에서 기억을 짜내 얻은 결과를 발표했다. 열 여섯 명이었다. “너 걔 말하려고 그러지? 신사동 꽃순이. 걔 넣었다. 진짜 거짓말 아니다.” 하나 둘 자기들 얘길 하기 시작했다. “난 얼추 세어도 30명 넘는 거 같은데, 네가 무슨 열 여섯이냐?” “난 세 명도 아니고 세 번.” 그 얘기엔 일제히 반응했다. “X 까.” 친구들 다섯이서 나눈 얘기의 결과로 보자면 나는 중간쯤 되었다. 그게 핵심인지는 모르겠는 채, 친구들은 타령조가 되기 시작했다. “그 중에 하나라도 남았냐고. 지금 있냐고. 왜 여기서 이러고 있냐고. 어디 주우러 갈 데 없을까?” 저질들. 내 생각엔 하나도 남지 않은 게 퍽 다행스러웠다. 차기도 했고 차이기도 했고 둘 다 서로 찼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을테지만, 아무도 그립진 않았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나는 스물아홉에 만난 나의 모든 것, ‘최’를 못잊어서 이러는 거라고 스스로에게 위로까지 했었는데, 이젠 ‘최’랑 하래도 하기 싫은 판이었다. 주위 친구들은 여전히 낄낄거리고 있었다. 걔는 사정은 안했으니까 잔 건 아니야, 걔는 사정은 했어도 조절이 안 되어서 그런 거니까 숫자에 넣으면 안돼. 너 솔직히 말해, 세 번 곱하기 30이냐? 부질없는 말들. “결혼하고 싶잖아.” 내가 말했다. 선문답 같은 말로 상황을 정리하고 싶다는 듯 보였겠지만, 실은 진심이었다. 내 친구들은 죄다 못된 녀석들뿐인지, 그렇게 말하면 꼭 이렇게 대꾸했다. “이혼은 언제할 건대?”
오늘도 무사했다. 택시가 잡혔다. 집에 왔다. 그랬다.

editor | 장우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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