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후의 밥, 걸인의 찬

정보공유/Information 2006. 10. 26. 00:01


그들은 가난한 신혼 부부였다. 보통의 경우라면,
남편이 직장으로 나가고 아내는 집에서 살림을 하겠지만, 그들은 반대였다.
남편은 실직으로 집 안에 있고, 아내는 집에서 가까운 어느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어느 날 아침, 쌀이 떨어져서 아내는 아침을 굶고 출근을 했다.

“어떻게든지 변통을 해서 점심을 지어 놓을 테니, 그 때까지만 참으오.”

출근하는 아내에게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마침내 점심 시간이 되어서 아내가 집에 돌아와 보니,
남편은 보이지 않고, 방안에는 신문지로 덮인 밥상이 놓여 있었다. 아내는 조용히 신문지를 걷었다.
따뜻한 밥 한 그릇과 간장 한 종지― 쌀은 어떻게 구했지만, 찬까지는 마련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아내는 수저를 들려고 하다가 문득 상 위에 놓인 쪽지를 보았다.

“왕후(王后)의 밥, 걸인(乞人)의 찬―이걸로 우선 시장기만 속여 두오.”

낯익은 남편의 글씨였다. 순간, 아내는 눈물이 핑 돌았다. 왕후가 된 것보다도 행복했다.
만금(萬金)을 주고도 살 수 없는 행복감에 가슴이 부풀었다.

- 김소운 수필, <가난한 날의 행복>중에서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고, 가슴 따뜻한 이야기들이 그리워지는 때가 되었습니다.
오래전 학창시절에 읽은 김소운의 수필 중 `왕후의 밥, 걸인의 찬`이라는 구절이 인상깊게 남았습니다.
간장 한 종지로 상징되는 지난 시대엔 마음보다 몸이 더 먼저 가난을 겪었다면,
보다 풍요로운 시대를 사는 우리들의 가난은 몸보다 마음이 더 먼저 겪습니다.
특히 요즘처럼 날씨가 갑자기 쌀쌀해지기 시작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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