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매트릭스가 현실로… 사이버 속 ‘또다른 나’ 있다

정보공유/Information 2007. 3. 9. 10:05

“세컨드라이프에는 신(神)이 존재한다. 그가 손을 대자 새로운 세상이 생겨났다. 그는 수백만 명에게 생명을 불어넣었다. 그가 만든 세상은 끝없이 확장되고 있다.”

미국의 MIT가 발간하는 ‘테크놀러지 리뷰’지(誌)는 가상현실 사이트 세컨드라이프(secondlife.com)를 만든 필립 로즈데일(Philip Rosedale·39)을 사이버 공간의 ‘신’으로 묘사했다. 미켈란젤로의 걸작 ‘천지창조’에 빗대 표현한 말이다.

2003년에 첫 선을 보인 세컨드라이프는 샌프란시스코의 린든 랩사(社)가 3차원 그래픽을 이용해 실제와 똑같은 생활을 즐길 수 있게 재현해놓은 인터넷 사이트다. 작년 초 10만명에 불과하던 사용자 숫자는 작년 10월 100만명을 돌파하며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현재 사용자는 430만명을 넘어섰고, 연말에는 2000만명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작년이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의 해였다면, 올해는 세컨드라이프가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세컨드라이프는 단순한 시간 때우기용 게임이 아니라 전세계에서 벌어지는 사회현상이다. 게임의 목적이 어떤 임무(미션)를 수행해 높은 점수를 받는 것인데 비해 세컨드라이프는 아무런 과제가 없다. 실생활과 마찬가지로 그냥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아갈 뿐이다. 영화 ‘매트릭스’처럼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가상의 세계인지 영역구분도 희미해지고 있다.

  • ▲세컨드라이프 이용자들이 인터넷 가상공간에 모여 파티를 즐기고 있다. 이용자의 분신 역할을 하는 아바타를 조종해 춤을 추거나 대화를 나누는 방식이다. /세컨드라이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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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컨드라이프에서는 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해안가 절벽에 멋진 별장을 짓고, 도요타 자동차를 타고 해변을 드라이브 할 수 있다. 아디다스 매장에 들러 옷이나 신발을 사고, 스타우드 호텔체인의 최고급 호텔에 들러 하룻밤을 보내거나 록그룹 듀란듀란의 콘서트를 감상해도 된다.

    커피숍에서 친구와 수다를 떨거나 다른 사람을 만나 가상의 가정을 꾸리고, 직장 생활까지 할 수 있다. 기업들은 앞다투어 세컨드라이프에 지사를 설립하고, 언론사는 특파원까지 파견했다.

    하버드 로스쿨을 비롯해 수십개의 미국 대학은 이곳에 사이버 캠퍼스를 만들어 학생들을 가르친다. 프랑스 대선 후보는 선거유세를 하고, 스웨덴은 사이버 대사관을 개설했다.

    세컨드라이프는 환상과 현실의 혼합이다. 이 사이트에 등장하는 그래픽 화면은 모두 사용자(사이트 내에서는 ‘주민’이라고 부름)들이 만든 것이다. 제작사인 린든 랩은 가상의 토지를 팔고, 공간을 꾸밀 수 있는 3차원 그래픽 제작도구를 제공한다. 나머지 활동은 모두 사용자의 몫이다.

    사용자는 사이트 내에서 자신을 대신해 활동하는 아바타(Avatar·分身)의 눈 색깔, 볼 두께까지 섬세하게 꾸밀 수 있다. 자신의 얼굴과 똑같이 만들어도 되고, 팝스타 브리트니 스피어스나 모자를 쓴 악어가 될 수도 있다. 이 아바타를 조종해 사용자는 가상공간의 어디든지 방문할 수 있다.

    세컨드라이프는 수많은 사람이 움직이는 경제권이 됐다. 사람들은 이곳에 살기 위해 기꺼이 돈을 지불한다. 가상의 공간이지만, 여기서 오가는 돈은 진짜다. 하루에 소비되는 돈은 평균 150만달러다. 사이트 내의 환전소에서는 미국 달러화와 사이버머니를 자유롭게 교환할 수 있다.

    기본회원 가입은 무료지만,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고 싶다면 가상의 토지를 사야 한다. 토지사용료는 월 9.95달러부터 땅 넓이에 따라 달라진다. 2만평의 토지를 사용하려면 구입비 1675달러에, 매달 295달러의 유지관리비가 든다. 땅을 사서 집을 짓든지, 장사할 가게를 열든지 그건 사용자 마음대로 할 수 있다.

    HSBC 조사에 따르면 세컨드라이프를 즐겨 사용하는 사람은 1주일에 보통 50~60달러를 쓴다. 아바타를 꾸미고, 집을 치장하고 여가활동을 즐기는데 드는 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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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컨드라이프에서 사용자가 만든 것은 모두 개인 소유의 지적재산권이며 그걸로 돈을 벌 수도 있다. 수많은 상인들은 세컨드라이프에 골프장·영화관·스키장·사무실 등을 차려놓고 비즈니스를 한다. 누드비치나 스트립쇼를 하는 술집까지 있다. 누구나 돈을 쓰고, 벌 수 있는 구조다. 토지도 마찬가지. 사용자가 싼 값에 사서 다른 사람에게 비싸게 되팔 수도 있다. 작년에는 가상의 토지를 사고 파는 독일의 부동산 업자가 실제 백만장자가 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인터넷 분야의 석학 존 게이지는 “세컨드라이프는 사람들이 실제 세상을 움직이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인터넷을 진화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들은 실제 세계보다 가상공간에서 사용자들의 사회적 교류가 더 많이 일어난다는 사실에 착안했다. 상품과 서비스를 홍보·판매할 기회가 더 많다는 뜻이다. IBM·GM·도요타·델·시스코·로이터·아디다스 등은 세컨드라이프에 사이버 지점을 열었다.

    IBM의 샘 팔미사노 회장은 작년 11월 베이징에서 열린 전략회의에서 “세컨드라이프는 인터넷이 처음 도입되던 때처럼 세상에 엄청난 충격을 주고 있다”며 “가상공간을 꾸미는데 1000만달러를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올 초 3000명의 IBM 직원이 세컨드라이프에 가입했고, 이중 300명은 지속적으로 이곳에서 대(對)고객 활동을 펼치고 있다. IBM의 사이버 지점을 방문하면 아바타에 입히는 티셔츠·모자·재킷을 무료로 받을 수 있다.

    델(Dell)은 4000달러짜리 최신형 컴퓨터를 이용해 게임을 즐기는 가상체험 공간을 구축했다. 시스코는 방 8개짜리 집을 홈네트워크로 구성해 TV와 컴퓨터를 즐길 수 있게 만들었다. 어메리칸 어패럴과 도요타는 아바타용 청바지와 최신 자동차를 1~2달러에 판다. 실생활에서 사용할 진짜 자동차나 컴퓨터를 주문할 수도 있다.

  • ▲'세컨드라이프'를 만든 필립로즈데일의 아바타.
  • 린든랩 CEO 필립 로즈데일은 “기업들은 실제 매출을 기대하기 보다는 자기 회사의 브랜드를 널리 알리는 수단으로 세컨드라이프를 활용한다”고 설명했다. 새롭고 혁신적인 방식으로 고객과 소통하는 마케팅 수단인 것이다.

    세컨드라이프를 기업의 업무시스템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IBM은 세계 각지에 흩어져있는 직원들이 세컨드라이프에 모여 비즈니스 미팅을 하고, 전략을 논의하는 업무방식을 도입했다. 세컨드라이프를 활용한 기업전략을 짜주는 전문 컨설팅 사업까지 번창하고 있다.

    가상세계가 폭발적으로 커지면서 문제점도 점점 커지고 있다. 길거리에서 다른 사용자에게 갑자기 무차별 총격을 가하거나 성희롱을 하는 사례가 종종 보고된다. 가상의 존재인 아바타가 다치거나 죽지는 않는다. 그래도 사용자들에게는 매우 불쾌한 일이다. 현금 거래가 가능한 점을 이용, 범죄조직이 세컨드라이프를 돈세탁에 사용할 수도 있다.

    사이버공간에서 아바타를 폭행한 사람을 고소할 수 있는지 여부를 둘러싸고 법조계에서는 논의가 분분하다. 세컨드라이프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범법자를 처벌할 법규나 법원을 만들고, 대통령을 뽑자는 주장도 있다.

    코넬 대학의 사회학 교수 마이클 메이시는 “가상사회가 성장하면서 현실세계와 마찬가지로 여러가지 문제점이 생겨나고 있다”며 “초창기부터 세컨드라이프를 사용했던 사람들은 이곳이 더 이상 유토피아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지적했다.

    더 큰 문제는 현실세계와 담을 쌓고, 세컨드라이프 안에서만 살아가는 사람이 점점 늘어난다는 점이다. 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인생을 살 수 있는 가상공간의 삶을 실제보다 더 매력 있고, 편안하게 느낀다.

    세컨드라이프의 창조자 필립 로즈데일은 “세컨드라이프는 내 뜻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가 만들어 가는 것”이라며 “미래를 향한 거대한 발걸음을 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영화 ‘매트릭스’에 나오는 암울한 세상과 달리 사용자가 원할 때 언제든지 세컨드라이프의 접속을 해제할 수 있다는 점은 크나큰 다행이다. 적어도 그것이 실제 생활을 대치하기 전에 정신을 차릴 수만 있다면 말이다.



  • ▲/오라일리 미디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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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컨드라이프의 ‘창조자’ 필립 로즈데일은…

    로즈데일(사진)은 1968년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4남매의 첫째로 태어났다. 영어교사인 어머니는 그가 어릴 때 항상 책을 읽어줬다. 그 덕택에 풍부한 상상력을 키울 수 있었다.

    해군 수송기 파일럿을 지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테크놀러지에도 재능이 뛰어났다. 초등학생 때 음악 반주기(신시사이저)를 조립했다. 중학생 때 애플 컴퓨터를 산 그는 모니터 화면 속에서 나무가 무럭무럭 자라는 컴퓨터그래픽을 만들었다. 그는 “당시 컴퓨터 안에 들어가 새 세상을 창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17세에 소프트웨어 회사를 차린 로즈데일은 자동차 딜러나 건축회사에 프로그램을 만들어 팔았다. 이렇게 번 돈으로 UC샌디에이고에 입학해 물리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1996년 ‘프리뷰’라는 회사를 설립, 비디오 압축기술과 3차원 그래픽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이 회사는 오디오·비디오 파일재생 프로그램으로 유명한 리얼네트워크사(社)에 합병됐고, 그는 CTO(최고기술책임자)를 맡았다.

    로즈데일은 닐 스티븐슨이 쓴 SF소설 ‘스노 크래시’(Snow Crash)를 읽고 “내가 꿈꾸는 것을 실제로 만들 수 있다”는 영감을 얻었다. 이 소설은 실제 세계와 온라인 세상을 오가며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책이다.

    99년 그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린든 랩’(Linden Lab)을 설립, 세컨드라이프를 창조했다.

    청바지 차림에 영화배우처럼 멋진 외모를 지닌 로즈데일은 작년 말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돈을 벌기 위한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에게 다가가는 것이 목표다. 10억의 인구가 세컨드라이프를 사용한다고 생각해보라. 정말 멋지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현재 직원은 140여명이며, 이중 엔지니어는 28명이다. 린든 랩은 세컨드라이프에 최소한의 개발도구만 제공하고, 모든 것은 사용자가 알아서 자신의 세상을 만들어간다.



keyword… 세컨드라이프

3차원 그래픽을 이용, 인터넷에서 일상생활을 즐길 수 있게 재현한 가상현실 사이트. 집짓기·쇼핑·파티·채팅·원격회의 같은 다양한 활동이 가능하다. 미국 린든 랩사(社)가 개발했으며. 올 상반기 중 한글판으로도 서비스될 예정이다.


김희섭기자 firem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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