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얇은 콘돔 줄까, 두꺼운 콘돔 줄까?
가능한 오래, 그리고 끈질기게 살아남아 그녀의 날카로운 손톱이 내 등을 박박 찢어놓길 바라지만, 언제나 그 민감한 ‘머리’가 문제였다. 삽입 단계에 이르면 미리부터 콘돔 투입 시기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도 바로 그래서다. 하지만 그녀는 선비걸음 같은 전희보다 애달아 몸이 꼬일 만한 타이밍에 과감하게 치고 들어오는 삽입을 더 좋아했다. 무엇보다, 우주 최고의 ‘민감성 질벽’을 지닌 그녀는 콘돔 쓰는 걸 어지간한 남자들보다 싫어했다. 콘돔을 처음 쓸 때는 ‘두께가 늘어나니까 더 좋아하겠지’ 싶은 기대감에 초장부터 뒤집어쓰지 못해 안달했다. 하지만 웬걸, 엄마 자궁을 비집고 나온 이후론 처음 콘돔을 섬겼던 그녀의 질은 너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그녀 말을 빌리자면, 자신은 내 페니스 두께와 길이를 직감적으로 안단다. 약간만 두꺼워지거나 미세한 무언가가 달려있어도 왠지 ‘침범’ 당한 기분이라 불쾌하다나? 무서울 정도의 직감이지만, 아닌 게 아니라 어설픈 타이밍에 콘돔을 덮어쓰고 그곳을 파고들었다가, 흥건하던 질벽이 불과 1초도 안 되어 바싹 말라 애먹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건조해진 질구를 밀고 들어가 뻑뻑하게 들락날락하고 있자면, 미간을 찡그리면서 “멀었어?”라는, 섹스 거부보다 무서운 암묵적 사정 강요가 내려지곤 했다. 하지만 나 역시 콘돔을 포기할 순 없었다. 정말 끝까지 살아남아 귀청을 찢을 듯한 그녀의 교성을 듣고 싶었다. 게다가 아직은 날 닮은 아이를 받아 들고 싶지 않았다. 나와 그녀가 함께 윈-윈 할 수 있는, 진정 내 살붙이 같은 콘돔이 절실했다. 핵심은 삽입을 하고도 질 안의 촉촉함을 유지할 수 있는 콘돔을 찾아내는 거였다.
결국 얼마 전 서울 이화여대와 홍익대학교 앞에 문을 연 콘돔 전문 판매숍 콘도매니아를 찾아, 요즘 가장 잘 팔린다는 콘돔만 십여 가지를 챙겨 들고 그녀의 집을 찾았다. 난 그녀 가슴팍에 갖가지 콘돔이 담긴 종이 가방을 찔러 넣곤, 전쟁 선포하듯 소리질렀다. “이 중에서 네 입맛에 가장 잘 맞는 걸 찾을 거야. 그래도 없으면, 나도 별 수 없어. 끝이야.” 첫 번째 ‘타(打)’자는 일본 오카모토사의 ‘젤돔 2000’이었다. 0.02mm 두께의 초박형 제품으로, 일단 ‘얇다’는 데 기대가 컸다. 얇은데도 쉽게 찢어질 것 같진 않았다. 콘돔 몸통은 탄탄하게 말려 있었고, 귀두에 씌운 뒤 첫 마디만 잘 풀어주면 뿌리 부근까지 쉽게 내려갔다. 페니스에 빈틈없이 ‘피팅’되는 느낌도 좋았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윤활용 젤이 일반 제품보다 2배 가량 더 묻어있다는 것. 하지만 끈적거리는 느낌이 적었다. 오, 그녀가 좋아한다. 부드럽게 삼켰다가 내뱉는 모습이 왠지 느낌이 좋다. 삽입 이후 두어 차례 자세를 바꿨지만 질 안쪽은 여전히 촉촉하다. “콘돔, 느껴져?” “아…, 아니. 벼, 별로. 흡!” 첫 실험치고는 대단히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그녀에게 거부감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고, 좌위(座位) 같은 격한 자세를 취해도 찢어지거나 벗겨질 듯한 불안이 전혀 없었다.
이튿날 저녁, 같은 장소에서 마주한 그녀는 얼굴을 맞대자 마자 “오늘은 뭐야?”라며 콧소리를 낸다. 이 여자, 재미 들린 모양이다. 첫 실험에서 초박형 제품으로 재미를 봤으니, 내친김에 초박형 콘돔 맞비교를 해보기로 했다. 상대는 스킨리스 2000. 젤돔 2000보다 더 얇은 0.015mm의 ‘초’ 초박형 콘돔으로, 오카모토 사의 베스트셀러 중 하나다. 엄정한 판단을 위해 테스트 조건도 동일하게 가져갔다. 소파에서의 키스. 귓불과 목덜미를 입술로 정성껏 어루만진 뒤엔 브래지어 틈새로 유두를 공략하는, 약 올려 한껏 흥분시키기 전법을 구사했다. 상체를 충분히 애무한 뒤엔 그녀의 허리 아래까지도 손과 ‘혀’를 다해 정성껏 어루만져주었다. 이젠 콘돔을 쓰고 어제처럼 삽입만 하면 된다. 포장을 뜯자 고무 냄새가 코를 찌른다. 싸구려 모텔의 싸구려 콘돔만큼 역한 냄새는 아니지만 이런 사소한 걸로 민감한 그녀를 자극해선 안 된다. 다행히도 그녀는 눈치채지 못했다. 하지만 내 손에 묻은 윤활 젤은 어제의 그것보다 더 미끌미끌해 꿉꿉했다. 그녀도 어제만큼 감동적인 느낌은 아니었나 보다. 더 얇은 데도 ‘느껴지고’, 약간은 거북스럽단다. 그래도 샘이 마를 정도는 아니니 일단 합격점. 그녀와의 콘돔 탐닉은 이후로 일주일 동안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이어졌다. 복숭아, 딸기, 멜론, 오렌지의 4가지 과일 향이 나는 ‘프루츠 트립(Fruits Trip)’은 솔직히 웃겼다. 향이 비슷비슷해 포장 속 내용물이 어떤 과일인지 가늠하기 쉽지 않을뿐더러, 과일 향이 난다고 그녀와의 관계가 더 좋아질 일도 아니었다. 그녀가 콘돔 씌운 내 페니스를 사랑스럽게 먹어준다면 또 모를까, 콘돔을 우적우적 씹어먹을 건 아니지 않은가. 페니스에의 밀착감이나 두께, 그녀의 질이 반응하는 정도도 평균점에 지나지 않았다.
후지라텍스사의 야광 제품을 사용한 날은 정말 코미디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야광 콘돔이 한참 동안 패키지 안에 갇혀 있어서 그랬는지, 제 ‘성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온 집안의 조명이란 조명은 모두 끄고 야광 콘돔이 찬란하게 빛나길 기대했던 우리는, 다시 모든 조명을 켜고 콘돔에게 ‘해바라기’를 시켜야 했다. 야릇한 분위기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 나는 컴컴한 방 안에서 야광 콘돔을 입고 짱구처럼 코끼리 춤을 췄고, 그녀는 제다이의 광선검처럼 흔들리는 내 페니스를 보며 자지러질 것처럼 웃었다. 이 콘돔에 기대한 또 한 가지는 바로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의 조준 능력 향상. 하지만 이마저 별 소득은 없었다. 중요한 건 ‘야광 페니스’를 받아들일 그녀의 아래 입 위치였으니까.
다음은 ‘레모네이션 팬시’. 딸기 껌, 딸기우유, 캔디 등으로 위장하고 있는 이 제품 안에는 한국라텍스사가 공급한 정품 콘돔이 들어 있었다. 그러나 섹스에 닳을 대로 닳은 우리에겐 오히려 친밀감이 떨어졌다.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풋풋한 대학생 커플들에게나 어울리겠다는 결론. 콘돔을 쓰는 것만이 아니라, 콘돔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큰 여자들의 경계심을 허물기에도 제법 쏠쏠할 듯했다. 국소마취제 벤조카인으로 사정을 지연시켜주는 제품도 써 봤다. 유니더스사의 ‘롱 러브’가 그것인데, 실상 톡톡한 효과는 보지 못했다. 벤조카인은 콘돔의 정액받이 부분에 담겨 있고, 콘돔을 쓴 뒤에 귀두 주변으로 골고루 문질러주어야 그 효과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정액 내뱉는 시간을 좀더 늘려보겠다고 페니스 머리를 비비적거리고 있는 사이, 그녀의 입맛은 물로 헹군 듯 깨끗이 사라지기 십상이었다.
콘돔 실험이 일주일을 넘기면서부터 나와 그녀 사이에는 예상치 못했던 변화가 일었다. 콘돔을 쓰지 못해 애태우던 난 오히려 콘돔을 벗어 던지고 싶어 안달했고, 콘돔을 쓰면 ‘할 맛이 떨어진다’고 꺼리던 그녀는 이물감이 적은 콘돔에 서서히 맛을 들이고 있었다. 특히 내 배 위에 올라탄 그녀가 질 입구의 힘을 주었다 빼면서 농익은 솜씨를 뽐낼수록, 두께 얇은 콘돔의 존재감은 뚜렸했다. 그녀의 섬세하면도 현란한 ‘입구 조절’ 솜씨를 만끽하려면 0.015mm 두께가 가장 적합했다. 0.02mm까지도 오케이, 그 이상으로 두꺼운 콘돔은 답답했다. 콘돔 시장의 스테디셀러인 오카모토 ‘베네통’은 그런 점에서 최적의 제품이었다. 지나치게 끈끈하지 않고, 쓰기 편하면서도 충분히 얇았다. 하지만 그녀는 ‘s+He’를 먼저 찾았다. ‘천연 알로에 배합 젤리가 4배. 여성에 의해 개발된, 여성을 보호해주는 콘돔’이라는 문구가 적힌 제품이었다. 설명처럼, 고려청자 색깔의 콘돔 표면에는 여느 콘돔과는 다른, 촉촉한 무언가가 묻어있었다. 윤활 젤처럼 끈적거리지 않아 좋았지만, 좀더 미끈거려 페니스에 씌우기는 불편했다. 이질감이 적어 좋다는 그녀만큼, 덮어쓴 나도 조금은 가뿐한 느낌. 덧붙여 그녀의 탄력적인 질이 내 페니스를 잘근잘근 씹어주는 움직임을 미묘하게 캐치하기에도 부족함이 없었다.
독일 월드컵 예선전에서 대한민국이 프랑스와 극적인 무승부를 이루던 날, 난 1년 전 동네 대형 아울렛에서 헐값을 주고 대량 구입한 ‘누디메론 아우성’을 꺼내어 들었다. 동아제약이 한국라텍스로부터 납품 받아 시중에 유통시키고 있는 보통 콘돔. 값이 싸고 패키지에 그려진 <누들누드> 캐릭터가 재미있어 사들이긴 했지만, 1년 동안 단 한 번도 써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승리의 카타르시스에 젖어있는 건 그녀의 기분만이 아니었다. 그 눈도, 입술도, 아랫입술에도 촉촉한 이슬이 맺혀 있었다. 나도 흥분하고 그녀도 흥분한 이런 날엔, 어떤 콘돔을 쓰더라도 번거로운 검문절차 없이 무사통과였다.
정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5일 뒤, 경기도 못하고 심판도 도와주지 않아 독일 월드컵 16강 진출이 좌절된 스위스전 때가 바로 그랬다. 그녀는 프랑스전 때와는 너무 다른 방향으로 흥분해 있었다. 아니, 흉포해졌다는 게 더 적절한 표현일 게다. 난 이제껏 아껴두었던, 사가미사의 ‘오리지널 U마크’를 비장의 콘돔으로 뽑아 들었다. 한 개에 2천원씩이나 하는, 울트라 럭셔리급 콘돔이었다. 라텍스 대신 채용했다는 폴리우레탄 소재에는 역한 고무 냄새가 없었다. 역시! 페니스에 감기는 밀착감이나 두께(0.02mm)도 끝내줬다. 그녀의 윗도리를 거칠게 밀어올리고, 브레지어와 손바닥만한 크기의 팬티까지 훌렁 끌어내리고는 허겁지겁(이 대목이 정말 중요했다) 쑤셔 넣었다. 폴리우레탄 소재의, 0.02mm 두께의 오리지널 U마크 콘돔이면 안 될 게 없다는 자신감으로. 하지만 그녀는 단말마에 가까운 비명을 질렀고 나를 거칠게 밀어내며 소리쳤다. “너 미쳤어! 찢어지는 줄 알았잖아! 꺼져!” 밥이든, 여자든 급하게 먹으면 체하기 마련이다. 밥도 먹고, 반찬도 씹고, 가끔은 물도 삼켜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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