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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2일 개봉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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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수와 태진(지진희)은 일란성 쌍둥이로 쏙 닮은 외모만큼 사이 좋은 형제다. 하지만 형제의 우정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한다. 어린 시절, 굶주림에 지친 태수가 마약 조직 보스 구양원(문성근)의 돈을 훔쳐 달아나자 태수 대신 태진이 구양원에게 붙잡혀 갔기 때문이다. 판박이로 빼 닮은 얼굴과 달리 둘의 인생은 그렇게 엇갈린다. 그 후 19년. 그 사이 태수는 ‘해결사 수’란 이름의 청부살인업자로 자랐고, 구양원의 그늘 아래 자란 태진은 환경을 거스르며 경찰이 된다.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를 찾아 헤매던 형제가 오랜 세월을 건너 드디어 얼굴을 마주한 날, 태진은 태수가 보는 앞에서 머리에 총을 얹어 맞고 죽는다. 누가 태진을 죽였나? 그 비밀을 캐기 위해 태수는 스스로 태진이 돼 태진의 삶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리고 태수의 이 지난한 복수극 안으로 구양원과 그의 조직원 점박이(오만석), 태진의 애인 강미나(강성연)와 해결사 ‘수’를 쫓는 부패 경찰 남달구(이기영)가 걸어 들어온다.
국내 관객에게 <피와 뼈 Blood and Bones>로 알려진 재일 한국인 감독 최양일은 일본영화계에서 ‘하드보일드영화라면 역시 최양일이 적임자다’라는 말을 듣는 인물이다. 그리고 <수>는 그런 최양일 감독의 장점을 최대치로 끌어올린 영화다. 지하주차장을 지그재그로 오가는 자동차 폭주 신으로 시작해 칼과 일본 검, 쇠파이프와 총이 춤추는 가운데 수십 명이 죽어 나가는 액션 신으로 끝을 맺는 <수>는 영화 내내 ‘피범벅’ 액션을 선보인다. 여기에 ‘액션의 합’이란 말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최양일 감독이 짜맞추는 액션은 ‘때린 데 또 때리고, 찌른 데 또 찌르는’ 피와 살, 그리고 뼈가 맞닿는 진짜 싸움이다. <수>를 가득 채운 이 ‘핏빛’ 액션은 영화의 장르를 결정짓는 요소인 동시에 영화의 주제를 이룬다. 태수는 자신의 잘못으로 조직 폭력배에게 끌려간 동생에 대한 ‘속죄 의식’을 칼에 찔리고 총을 얻어 맞는, 이 지루하고 힘든 싸움으로 대신한다. <수>는 동생을 죽인 이를 향한 잔인한 복수극인 동시에 살과 뼈를 깎으며 얻어낸 처절한 속죄 의식인 것이다. [키드갱]으로 유명한 만화가 신영우의 원작 만화 [더블 캐스팅]이 주인공을 영웅주의적으로 묘사했다면 최양일은 여기에서 영웅의 기개를 발라내고 나약한 인간을 가져다 놓았다.
눈알이 뽑히고 뇌수가 튀어나오는, 극단의 폭력 묘사가 <수>의 가장 큰 매력이라면 허약한 드라마 줄기는 <수>의 가장 큰 단점이다. 동생에 대한 태수의 죄책감은 짐작하는 바지만 처절한 복수극을 끌고 갈 만큼의 충분한 정서적 공감은 끌어내지 못한다. 태진의 애인인 미나가 태수에 대해 보이는 ‘애증’의 감정도 설득력이 떨어지는 부분. 태진의 죽음을 둘러싼 배후 인물들이 밝혀지는 과정의 단서들 역시 복선으로 쓰이기엔 어설픈 수준에 머무르고 말았다.
기존의 ‘젠틀’한 이미지를 벗어 던진 지진희는 과감한 액션 연기가 돋보이지만 해결사 수에 강한 카리스마를 입히는 덴 부족함이 엿보인다. <왕의 남자>에서 요염한 장녹수를 연기한 강성연은 의지가 강한 여경찰 강미나가 돼 남자 못지않은 강도 높은 액션 연기를 선보인다. 여기에 마약 조직 보스를 연기한 문성근의 비열함이 관객을 소름 돋게 만든다. 뮤지컬과 TV 드라마를 종횡무진 하고 있는 오만석도 피도 눈물도 없는 조직원의 ‘강단’을 완벽히 연기한다.
HOT 하드보일드, 하드고어 액션영화로서의 매력이 가득하다. ‘핏빛’ 향연을 꿈꾸는 관객에게 이보다 더 좋은 영화는 없다.
COLD 눈알이 뽑히고, 목울대로 끊임없이 피가 솟구쳐 나오는. 베고 자르고 찌르고 쏘는, ‘날 것’의 액션에 익숙지 않은 관객들은 살짝 속이 울렁일 수도 있겠다.
박아녜스 기자 (fatcat@movielink.co.kr)
[3/22 개봉작 리뷰] <타인의 삶> - One & The Other
때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5년 전인 1984년, 나라와 자신의 신념을 맹목적으로 고수하는 원칙주의자 비밀경찰 비즐러(울리쉬 뮤흐)는 동독 최고의 극작가 드라이만(세바스티안 코치)과 그의 애인이자 인기 여배우인 크리스타(마르티나 게덱)를 감시하는 임무를 맡는다. 그러나 드라이만을 체포할 만한 단서 대신 비즐러는 드라이만과 크리스타의 삶에 감동받고 사랑을 느끼며, 이전의 삶과는 다른 인간적인 모습으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타인의 삶 Das Leben der Anderen>은 동독 정부에 의한 국민의 인권 탄압이 극에 달했던 1984년 겨울, 이야기가 시작된다. 더 이상은 회복될 수 없을 정도로 공산주의 체제가 망가질 즈음, 동독 정부는 이를 막아보고자 동독 국민들에게 국가에 대한 끝없는 복종을 강요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5년전인 1984년을 배경으로 하는 <타인의 삶>은 우익으로 낙인찍힌 극작가 게오그르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악랄한 비밀경찰 비즐러의 이야기다. 여기서 '타인의 삶'이라는 제목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독일 최고의 도청 전문가로 손꼽히던 최고의 특수 경찰 비즐러는 국가 외에는 그 어느 것에도 가치도 부여하지 않았던 그런 원리원칙적인 사람이다. 지난 20년 동안 비즐러는 수백의, 아니 수천수만의 사람들을 감시하고 도청해 왔지만, 그에게 그들은 철저히 타인이었을 뿐이었다. 그는 국가에 해가 될 수도 있는 사람들의 삶을 관찰자적인 입장에서 관찰하고 부기해 왔다. 하지만 게오르그의 경우는 다르다. 게오르그를 도청하면서 비즐러는 더 이상 관찰자의 위치에 만족하지 못한다. 점차 게오르그의 일상과 대화에 공감하기 시작하면서 비즐러는 적극적으로 그의 삶에 개입하기 시작한다. 게오르그의 책상에 놓여진 '브레히트 선집' 을 훔쳐 읽으며, 게오르그가 연주하는 '선한 사람들의 소나타'를 도청기를 통해 훔쳐 들으며 비즐러는 그가 그동안 잊고 지냈던 것을 다시 깨닫게 된다.
1973년생 감독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의 장편 데뷔작 <타인의 삶>은 이처럼 우연히 엮인 관계로 인해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두 남자의 이야기를 정공법으로 풀어낸다. 러닝타임 137분을 계속 정공법으로 일관하는 탓에, 중반 이후 이야기의 종착점이 어느 정도는 예측 가능하다는 약점도 눈에 밟힌다. 그러나 세바스티안 코치와 마르티나 게덱 등 두 배우의 호연은 영화의 고루하고 따분함을 상쇄하고도 남으며, 특히 비즐러 역의 울리쉬 뮤흐의 연기는 실로 압권에 해당되는 부분이다. 그는 <타인의 삶>을 통해 미니멀리즘의 연기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보여준, 현존하는 독일 최고의 배우다.
HOT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외국어영화상을 비롯 <타인의 삶>은 유수의 해외영화제와 시상식을 거의 휩쓸다시피 했다. 또한 여전히 남과 북으로 분단된 상황에 처해 있는 한국인들에게 극 중 이야기는 절대 남 이야기같지 않다.
COLD 언제나처럼 그렇듯 문제는 배급 규모. 또한 유럽 영화라면 보지도 않고 일찌감치 손사래를 치는 국내 관객들의 관람 성향도 흥행에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태상준 기자 (birdcage@movielink.co.kr)
[3/22 개봉작 리뷰] <넘버 23> - 숫자 놀이와 허황된 반전의 결합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 윌리엄 제퍼슨 클린턴, 프랭클린 델라노 루즈벨트. 세 미국 대통령의 이름은 모두 23개의 알파벳 글자로 이루어져 있다. 1941년 12월 11일, 미국은 독일에 전쟁을 선포했고, 히틀러는 1945년 4월에 자살했다. 12와 11을 더하면 23이 나오고, 1과 9, 4, 5, 4를 모두 더하면 23이 된다. 9.11 테러 사건이 발생한 2001년 9월 11일의 숫자를 2+0+0+1+9+11로 계산하면 역시 23이 만들어진다. 살인마 찰스 맨슨은 11월 12일에 태어났고, <양들의 침묵 The Silence of the Lambs>의 한니발이 나오는 데 모티브를 제공한 테드 번디는 1월 23일에 처형됐다. 고대 마야인들은 지구의 종말이 2012년 12월 23일에 올 것이라고 예언했다. 23의 숫자 놀이는 영화 <넘버 23 The Number 23>의 제작진들로 이어진다. 조엘 슈마허와 짐 캐리의 알파벳 글자수를 더하면 23이 나오고, 버지니아 매드슨과 짐 캐리를 더해도 23이 된다. <넘버 23>은 조엘 슈마허의 23번째 작품이다.
이 정도면 <넘버 23>이 어떤 영화인지 대충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숫자 23에 관한 편집증적 집착이 <넘버 23>을 관통한다. 월터 스패로우(짐 캐리)는 동물관리센터에서 일하는 평범한 노동자다. 생일인 2월 3일 개에게 물리는 사고를 당한 후 월터는 이상한 일을 겪기 시작한다. 생일선물로 아내(버지니아 매드슨)에게 받은 소설 [넘버 23]이 그 시작이다. 숫자 23의 저주로 살인을 저지르게 된 소설 속 주인공인 핑거링(짐 캐리)과 자신의 삶이 매우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월터는 점점 편집증에 가까운 망상에 사로잡히고 자신을 둘러싼 숫자들이 온통 23으로 조합이 가능함을 알게 된다. 급기야 소설 속 주인공처럼 자신도 살인을 저지르게 될 것이라 믿게 된 월터는 부인을 살해하는 꿈까지 꾸게 된다. 월터가 악몽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소설 [넘버 23]에 숨어 있는 비밀을 추적하는 것이다. 소설의 작가 톱시 크레츠를 추적하던 월터는 소설 속 살인사건이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고 살인사건을 일으킨 범죄자가 작가일 것이라고 확신한다.
<넘버 23>은 음모 이론이나 숫자 놀이에 관심이 많은 사람의 흥미를 끌 만한 미끼를 던지며 시작한다. 불길한 역사 속에 담긴 숫자 23의 예들이 나열된다. 단순한 숫자 놀이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여러 가지 숫자로 23을 꿰어 맞추는 논리는 제법 흥미롭다. 숫자 23의 법칙에 흥미를 느낀다면 월터가 소설 [넘버 23]에 몰입해 가는 과정에 동화되는 것도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문제는 뻔히 예견되는 결말의 반전이다. 영화의 소재와 달리 <넘버 23>은 결코 숫자 23과 연관된 수학적 추리력을 요구하지 않는다. 비현실적인 사건과 이를 비밀스런 반전으로 삼은 스릴러의 뻔한 트릭만 존재할 뿐이다. 짐 캐리와 버지니아 매드슨은 1인 2역을 하며 연기에 심혈을 기울였지만 반전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댄 영화의 허술함 탓에 빛을 발하지 못한다. 조엘 슈마허 감독은 몽환적인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해 현실과 소설 속 이야기를 연결시키지만 이 또한 허황된 스토리 때문에 효과적으로 활용되지 못한다. 그나마 이 영화를 최대한 즐기고 싶다면 결말 부분 직전에 극장에서 나오는 게 좋을 것이다.
HOT 숫자 23의 법칙은 그 자체로 흥미롭다. 처음으로 스릴러에 도전한 짐 캐리의 1인 2역 연기도 관심을 끌 만하다.
COLD 결말 부분의 허황된 반전이 극적 흥미를 잃게 한다. 결말에 도달하는 과정도 그리 매끄럽지 못하다.
고경석 기자 (kave@movielink.co.kr)
[3/22 개봉작 리뷰] <향수> - 향을 보여드립니다
서른 넷에 한 극단의 제의로 쓴 희곡 [콘트라베이스]로 주목 받기 시작한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 그는 1985년, ‘향기’에 미친 한 남자의 연쇄 살해극 [향수]를 출간한다. 뛰어난 후각의 소유자 ‘장 그르누이’가 향기를 찾아 연쇄 살인에 이르게 된 사연을 담은 이 책은 전세계 45개 언어로 번역돼 1,500만부의 판매 부수를 기록하며 스테디셀러로 사랑을 받고 있다. <레지던트 이블 Resident Evil> 시리즈의 제작자 번드 아이킨거는 책이 출간된 해, [향수]를 영화로 옮길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그 꿈을 이루기란 쉽지 않았다. 세상과 담을 쌓고 지내는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가 영화화를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번드 아이킨거가 그를 설득해 판권을 구입하는 데 든 시간은 무려 15년. 이후 스탠리 큐브릭, 팀 버튼 등의 감독이 이 ‘향기 살인마’에 눈독을 들였지만 결국 연출은 <롤라 런 Lola Rennt>의 톰 튀크베어에게 맡겨졌다.
18세기 프랑스, 생선 비린내 가득한 시장통에서 사내아이가 태어난다. 아이가 세상에서 가장 처음 맡은 냄새는 코를 찌르는 생선 냄새. 이렇게 태어난 사내아이는 세상 누구보다 예민한 후각을 갖고 있다. 청년으로 자라난 장 그르누이(벤 위쇼)는 어느 날, 과일 바구니를 든 한 여인에게서 지금껏 맡아보지 못한 향기를 맡는다. 놓치고 싶지 않은 매혹적인 향을 경험한 그르누이. 그는 그 향을 간직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다니다 퇴물 향수 제조사 주세페 발디니(더스틴 호프만)와 만난다. 하지만 발디니의 향수 제조법도 그르누이의 욕망을 채워주지는 못한다. 그르누이가 간직하고 싶은 향은 장미나 라벤더가 아닌, 살아있는 육체가 뿜어내는 향이기 때문이다. 결국 향을 간직할 방법을 찾아 ‘향수의 낙원’이라 불리는 프랑스 남동부 그라스로 향한 그르누이. 그곳에서 그는 수많은 여자들을 향기를 얻기 위한 재료로 이용하기 시작한다. 세상 하나밖에 없는 그르누이의 ‘향수 컬렉션’이 쌓여가는 동안, 여인들은 차례 차례 주검으로 발견된다.
섬세하고 세밀한 언어로 향기를 기록한 소설 [향수]를 영화로 옮길 때 가장 큰 난관은 이야기의 소재인 향 그 자체였다. 시각 예술인 영화가 후각의 느낌을 담아내긴 쉽지 않은 법. 톰 튀크베어는 영화에 향을 새기기 위해 오히려 시각을 더 자극하는 방법을 택했다. 구역질 나는 시장통의 비린내를 표현하기 위해 생선 내장을 늘어놓는 건 물론 구더기가 들끓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향수 한 방울의 향기를 표현하기 위해 화면 전체를 꽃밭으로 뒤덮는다. 향기를 찾아나선 그르누이의 발길을 따라 장미와 라벤더가 피고 지는 사이, 관객은 자연스레 자신의 기억에 남아있는 수많은 향기를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영화 말미, 단두대에 올라선 그르누이가 여인들의 향으로 만든 향기를 퍼트리는 순간 <향수 Perfume: The Story of a Murderer>의 탐미주의적 시선은 폭발한다. <향수>는 소설 속 문자가 만들어낸 '향기의 향연'을 옮겨내기 위해 향에 취한 750명 엑스트라를 '문자 그대로' 옷을 벗고 뒹굴게 한다. 이렇듯 <향수>는 문자로 그려진 모든 상상, 후각의 느낌까지 모조리 시각으로 빚어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여기에 <레이어 케이크 Layer Cake> 등에 출연한 신예배우 벤 위쇼가 장 그르누이의 절제된 감정 묘사를, 할리우드 중견배우 더스틴 호프만이 한물간 향수 제조사의 능청스런 표정 연기를 더해 <향수>를 시각적으로 더욱 즐겁게 만든다.
HOT 꼼꼼한 기록으로 재현해낸 18세기의 풍경, 꽃내 진한 향수 제조 과정을 엿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매력은 충분하다.
COLD 향수도 너무 짙으면 쉽게 질리는 법. 차고 넘치게 보여주는 영상미가 오히려 관객의 ‘상상’의 범위를 제한한다.
박아녜스 기자 (fatcat@movielink.co.kr)
[3/22 개봉작 리뷰] <브레이크 업: 이별후애(愛)> - 달콤하지 않은 로맨틱 코미디
정말 남자는 화성에서 오고 여자는 금성에서 온 걸까? 그렇게까지 남자와 여자는 다른 걸까? <브레이크 업: 이별후애(愛) The Break-Up>(이하 '<브레이크 업>')는 ‘그렇다’라고 대답한다. 시카고에서 버스 관광 가이드를 하는 게리(빈스 본)와 브룩(제니퍼 애니스톤)은 사귄 지 2년 된 커플. 게리가 야구장에서 만난 브룩에게 첫눈에 반해 적극적인 애정공세를 펼쳐 연인이 되지만, 두 사람이 함께 사는 모습은 사랑에 빠진 순간의 달콤함과는 거리가 멀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대화하며 서로에 대한 오해를 쌓아간다. 그러던 어느날 사소한 문제로 시작된 게리와 브룩의 말다툼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결국 브룩의 입에서 "헤어지자"는 말이 나오는 지경에 이른다. 서로 구할 집을 찾는 동안 어색한 동거생활을 하게 된 두 사람은 서로 화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만 그마저도 서로에게는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질 뿐이다.
<브레이크 업>은 남녀가 만나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주로 그리는 여느 로맨틱 코미디와 달리 사랑이 시작된 후에 초첨을 맞춰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연애할 때는 그냥 무시하고 지나쳤던 서로의 단점들이 함께 살면서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한다. 이해할 수 없는 상대방의 행동과 자신의 생각대로 따라주지 않는 상대방 때문에 화를 내는 일이 잦아진다. 이처럼 <브레이크 업>은 낭만적이고 달콤한 연애 시절 이야기 대신 함께 생활하게 된 연인이 상대방의 단점을 받아들이지 못해 결국 헤어지게 되는 과정을 담아낸다. 영화는 수많은 연인들이 헤어지는 이유가 사랑이 끝나서라기보다는 서로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해서라고 주장한다.
<브레이크 업>은 서로 다른 별에서 온 것처럼 다른 생각을 하는 남자와 여자의 갈등을 생생하게 묘사해낸다. 게리와 브룩이 서로 오해하며 헤어지게 되는 과정은 연애를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만큼 리얼리티가 살아있다. <브링 잇 온>의 페이튼 리드 감독은 실제 커플들의 인터뷰를 통해 완성한 현실감 있는 시나리오를 생생하게 스크린에 옮겨냈다. 코미디연기에 재능을 보여온 빈스 본과 '브래드 피트의 여자'로 더 유명세를 탔던 제니퍼 애니스톤의 실감나는 연기는 영화에 활력을 더한다.
HOT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의 이야기를 실감나게 풀어놓는다.
COLD 달콤한 로맨틱 코미디를 기대한 관객들은 시종일관 다툼으로 일관하는 연인들의 이야기에 실망할 수도 있다.
최상희 기자 (immerblau@movielink.co.kr)
[3/22 개봉작 리뷰] <빼꼼의 머그잔 여행> - 온몸으로 웃기는 애니메이션
겁 많은 어린 아이 베베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에게 세계 어느 곳이든 갈 수 있는 거대한 머그잔을 불러오는 신비한 힘을 지닌 마법 펜던트를 선물로 받는다. 마법 펜던트에서 튀어나온 머그잔이 베베를 데리고 간 곳은 바로 북극. 베베는 그곳에서 말썽꾸러기 곰 빼꼼과 미녀 펭귄 도도, 신사 펭귄 꽁꽁을 만난다. 빼꼼과 꽁꽁은 도도를 놓고 사랑 싸움을 벌이는 라이벌이라 하루라도 조용한 날이 없다. 춥고 낯선 북극에 도착한 베베는 집에 가고 싶은 마음뿐이지만, 마법 펜던트는 베베와 일당들을 계속 엉뚱한 곳으로 떨어뜨려 놓는다. 사막에서 만난 멋쟁이 도마뱀 후다닥이 이들의 세계여행에 합세하면서 베베의 여정은 끝이 없어 보인다.
EBS와 투니버스에서 방영 중인 단편 애니메이션 시리즈 <빼꼼>을 영화화한 <빼꼼의 머그잔 여행>은 3세에서 8세 사이의 어린이들을 타깃으로 한 유아용 애니메이션이다.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만큼 <빼꼼의 머그잔 여행>의 모든 캐릭터들은 대사 없이 표정과 몸짓 그리고 단순한 효과음 만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기다리는 어린 아이 베베는 표정 만으로도 절박함이 담겨있고, 미녀 펭귄 도도를 향한 빼꼼과 꽁꽁의 좌충우돌한 몸짓은 보는 이로 하여금 자연스런 웃음을 유발한다. 그러나 3분짜리 단편 애니메이션 <빼꼼>을 대사가 전혀 없는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옮기기엔 영화의 호흡이 다소 길어 보인다. 말 없는 머쓱한 상황을 보완하는 것은 <빼꼼의 머그잔 여행>의 완성도 높은 컴퓨터 그래픽. 빼꼼이 낙하산을 메고 하늘에서 활공하는 장면이나 마법 펜던트를 놓고 지하 동굴에서 벌어지는 승부는 긴장감을 자아내기 충분하다. 100% 국내 기술로 만들어 진 <빼꼼의 머그잔 여행>은 한국 애니메이션의 진일보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HOT 대사 없이 진행되는 <빼꼼의 머그잔 여행>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구나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애니메이션이다. 온몸으로 보여주는 위트는 하나의 언어가 되어 신선한 웃음을 제공한다.
COLD 각 에피소드들은 유기적인 관계를 이어가지 못하고 슬랩스틱 류의 단발적인 웃음을 선사하는 것은 <빼꼼의 머그잔 여행>에 단점으로 작용한다.
김영서 기자 (nodata@movielink.co.kr)
고경석 기자 (kave@movielink.co.kr)
[3/22 개봉작 리뷰] <내 여자의 남자친구> - 연애의 달인과 내숭 100단이 만났다
방송국 PD인 석호(최원영)은 둘째 가라면 서러운 연애의 달인이다. 석호의 이번 데이트 상대는 친구에서 연인으로 발전한 여대생 채영(김푸른). 석호는 특유의 자상함과 아낌없는 금전봉사로 채영을 보살피지만, 그의 본심은 그저 채영과의 하룻밤이다. 석호는 이리저리 작업을 걸어본다. 스킨십도 강도를 올려보고 피곤하다는 핑계로 모텔에 차를 세워보지만 채영에게 돌아오는 말은 “미쳤어?” 한마디. 살갑지 않은 채영의 반응에 석호의 불만이 나날이 쌓여만 간다. 한편 개인 스튜디오를 운영할 만큼 능력있는 사진작가 지연(고다미)은 나이트 클럽에서 만난 선수(이정우)와 원나잇 스탠드를 나눌 만큼 대담한 연애를 지향한다. 하지만 지연은 예전부터 만나오던 석호에게 마음이 가는 것을 느끼고 이들의 관계는 조금씩 복잡해져 간다.
<내 여자의 남자친구>는 여섯 명의 등장인물이 얽혀있는 연애의 속사정을 하나씩 풀어가는 영화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펄프 픽션 Pulp Fiction>과 가이 리치의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 Lock, Stock and Two Smoking Barrels>의 이야기 구조에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 박성범 감독은 피와 대사의 향연 대신 섹스로 얽힌 이들의 연애담을 나열해 놓는다. 그러나 <내 여자의 남자친구>는 <펄프 픽션>과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같은 치밀한 구성의 영화가 아니다. 총 5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영화는 동일한 사건이 반복적으로 서술되며 이들의 실체를 풀어갈 뿐이며, 남녀의 알콩달콩한 연애심리를 잡아냈던 영화 초반에 비해 영화의 후반은 질펀한 섹스 신으로 채워진다. 그 결과 이야기는 후반으로 갈수록 두터워지지만 오히려 깊이는 후반으로 갈수록 얕아진다.
하지만 <내 여자의 남자친구>의 주연배우들은 개성강한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소화해 낸다. 석호 역을 맡은 최원영의 능청스런 연기가 단연 압권이며, 청순가련과 내숭을 오가는 김푸른의 호연도 돋보인다. '현대생활백수'로 유명한 개그맨 고혜성이 연애와 담쌓고 지내는 어수룩한 영수 역을 맡아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HOT 옴니버스 형식으로 이뤄진 <내 여자의 남자친구>는 다양한 연애의 유형이 종합선물세트처럼 담겨있는 작품이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해 가는 이들의 연애담에 결말을 예측해 보는 것도 이 영화의 재미.
COLD 로맨틱 코미디를 표방하고 나선 작품이지만 원나잇 스탠드 같은 가벼운 사랑이야기를 다룬 만큼 잔잔히 울려 퍼지는 감동은 적다.
김영서 기자 (nodata@movielin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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