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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3주, 개봉영화 소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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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03월 1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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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영국 런던의 한 사교 파티장. 도도한 아가씨 키티(나오미 왓츠)는 그곳에서 수줍음 많은 청년 월터(에드워드 노튼)와 만나 결혼한다. 첫눈에 반한 사랑? 그런 건 아니다. 키티를 향한 월터의 마음은 뜨겁지만 키티는 월터를 사랑하지 않는다. 단지 결혼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나이가 됐을 뿐이다. 하지만 키티에게도 사랑은 찾아온다. 문제는 그것이 남편이 아니라는 것. 세균학자인 월터와 함께 떠난 중국 상하이에서 그녀는 또 다른 사랑을 만난다. 총독부 관리 찰리(리브 슈라이버)를 사랑하게 된 키티는 남편 몰래 그와의 사랑을 키운다. 물론 이 사랑은 오래가지 못한다. 아내의 불륜을 알게 된 월터는 키티에게 간통죄로 고소 당할 것인지, 콜레라가 한창인 중국 오지 ‘메이탄푸’로 자기와 함께 떠날 것인지를 선택하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사회적 명성을 중요시하는 찰리에게 외면당한 키티는 결국 월터와 함께 죽음의 기운이 가득한 메이탄푸로 길을 떠난다.
<페인티드 베일 The Painted Veil>은 윌리엄 서머셋 모옴의 동명 소설을 영화로 옮긴 작품. 불륜을 이야기의 축으로 한 소설 [인생의 베일]은 삼각구도의 사랑이란 소재부터 영화의 관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덕분에 [인생의 베일]은 세 번에 걸쳐 영화로 옮겨졌다. 에드워드 노튼과 나오미 왓츠가 호흡을 맞춘 <페인티드 베일> 이전에 그레타 가르보가 키티로 분한 <페인티드 베일 The Painted Veil>(1934)과 <세븐스 씬 The Seventh Sin>(1957), 두 편이 이미 영화로 만들어졌다.
<페인티드 베일>은 원작의 이야기 줄기를 거의 그대로 옮긴다. 하지만 색채는 달라졌다. 불륜을 소재로 인간의 뒤틀린 욕망과 사랑의 미묘한 심리를 묘사하는 데 치중한 소설과 달리 영화 <페인티드 베일>은 화해와 용서에 초점을 둔다. 아내의 외도로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월터와 애초 월터에게 사랑의 감정 따윈 느끼지 못했던 키티는 죽음의 도시, 메이탄푸에서 조금씩 서로를 이해해 나간다. <페인티드 베일>은 이렇듯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하며 사랑을 완성해가는 키티와 월터의 성장담을 통해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되묻고 있다. 가슴 아픈 러브 스토리로 아쉬울 것 없는 틀을 갖췄지만 인간 욕망의 복잡다단함을 그린 원작의 맛이 바랜 것도 사실이다. 월터가 죽고 난 후 홍콩으로 돌아와 또 한번 찰리와 관계를 맺는 키티의 ‘욕망’으로서의 사랑, 키티의 아이가 자신의 아이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월터의 두려움, 자살일지도 모를 월터의 죽음을 둘러싼 의문 모두가 영화에선 지워지고 없다. 대신 뒤늦게 깨닫게 된 사랑의 애달픔만이 남았을 뿐이다.
<페인티드 베일>의 매력은 뭐니뭐니해도 두 주연배우의 호연. 에드워드 노튼은 사랑에 상처받은 남자의 아린 마음을 차가운 시선 안에 녹여내고, 나오미 왓츠는 뒤늦게 사랑을 깨닫게 되는 여인의 심리를 완숙하게 표현해낸다. 수묵 채색화를 보는 듯한 중국의 아름다운 산하, 올해 골든글로브 음악상을 수상한 알렉상드르 데스플라의 잔잔한 음악 선율도 <페인티드 베일>을 풍성하게 만든다.
HOT 가슴 아픈 러브 스토리로 손색이 없다. 화이트 데이에 개봉하니 '연인 관객'을 위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COLD 서머셋 모옴의 원작 소설을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실망할지도 모른다. 불완전한 사랑의 심리는 사라지고 잘 다듬어진 사랑만 남았다.
박아녜스 기자 (fatcat@movielink.co.kr)
[3/15 개봉작 리뷰] <300> - 헤모글로빈과 아드레날린이 분출하는 액션 스펙터클
BC 480년. 스파르타의 왕 레오니다스(제라드 버틀러)는 페르시아 제국의 사신으로부터 페르시아 왕에게 무릎을 꿇으면 전쟁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전해 듣는다. 자유와 명예를 위해 사는 스파르타인에게 이는 용납할 수 없는 일. 레오니다스는 사신의 목숨을 빼앗고 전쟁을 준비한다. 원로회의 반대로 대규모의 군대를 파병할 수 없게 된 레오니다스는 300명의 정예 용사들을 이끌고 테르모필레 협곡으로 향한다. 하지만 크세르크세스 왕이 이끄는 페르시아의 100만 대군은 아무리 천하무적의 스파르타 정예군이라 해도 무찌르기 힘든 중과부적이다. 테스피스 군의 지원 아래 테르모필레 협곡으로 향한 레오니다스와 300명의 스파르타 용사는 가족과 나라의 자유를 위해 명예로운 죽음을 선택한다.
프랭크 밀러의 그래픽 노블을 영화화한 <300>은 BC 5세기에 페르시아 제국이 시도했다가 실패한 그리스 원정 전쟁을 그린 작품이다. 테르모필레 전투는 페르시아 전쟁에서 그리스 연합군이 승리하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으며, 프랭크 밀러에게 영감을 제공한 1962년작 <300 스파르탄 The 300 Spartans>의 소재로 쓰이기도 했다. 역사적인 사실을 극화한 작품이기에 영화의 내용은 이미 알려진 것과 다름없다. 게다가 두 시간에 달하는 영화치고는 내용도 단순하다. 300명의 스파르타 정예군과 100만 페르시아 대군의 전투. 스파르타의 용사들은 페르시아 대군의 파상 공세에 맞서 용맹하게 싸워 나가지만 결국 전원 전사하고 만다. 이미 노출된 내용에 단순한 이야기지만, <300>은 직설적이고 장식적인 방식으로 역사 속 전설을 풀어간다. 다소 과장 섞인 듯한 묘사와 표현은 <300>의 단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지만 오락용으로서는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한다.
<300>은 근래 보기 드물게 남성 호르몬이 넘쳐나는 영화다. 추가 파병을 둘러싼 왕비와 의회의 갈등 같은 드라마적 요소도 있지만, 영화의 대부분은 전쟁 신으로 채워져 있다. 여성성이라고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근육질 마초맨들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우레 같은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진다.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기 위한 전사들의 강인함은 스파르타라는 도시를 대변하는 동시에 대단한 스펙터클로 기능한다. 여기에 회화와 만화의 중간쯤 되는 미장센은 정교한 그래픽 노블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을 안겨준다. 이미지의 어두운 부분을 뭉개서 컬러의 컨트라스트를 바꾸는 크러쉬 기법은 구릿빛 영상에 신비감을 더한다. 마치 비디오 게임처럼 단순한 내용이지만 역사적 박진감과 남성적 매력, 화려한 영상이 어우러져 <300>은 킬링타임용 영화로서 최고의 성능을 발휘한다.
HOT 단순 명쾌함이 강점인 영화. 화려한 비주얼과 남성적 매력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다.
COLD 비디오 게임처럼 단순한 이야기에 과장된 스타일이 반감을 살 수 있다.
고경석 기자 (kave@movielink.co.kr)
[3/15 개봉작 리뷰] <리틀 러너> - 기적을 향해 달리는 소년
여기 기적을 위해 달리는 소년이 있다. 랄프는 혼수 상태로 병상에 누워 있는 엄마를 깨우기 위해 달리고 또 달린다. <리틀 러너 Saint Ralph>는 열네 살 소년 랄프(아담 버처)가 기적을 향해 달리는 이야기를 다룬다. 주인공 랄프는 말썽꾸러기다. 카톨릭계 사립학교 학생인 랄프는 몰래 담배를 피우고, 수영장에서는 여자 탈의실을 훔쳐보고, 자위행위도 서슴치 않는다. 엄격한 교칙을 위반하기 일쑤인 랄프는 고해성사로 용서를 구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뻔뻔한 소년이다. 그러나 제멋대로인 랄프도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 있는 엄마에게는 세상에 둘도 없는 착한 아들이다. 그러던 어느날 엄마는 병세가 악화돼 혼수상태에 빠지고 만다. 엄마를 살릴 길은 기적밖에 없다는 말에 랄프는 상심에 빠진다. 랄프는 그러나 "보스톤 마라톤에 출전해 우승하면 기적이 이루어진다"는 코치의 말을 듣고 그때부터 마라톤에 매달린다. 주위의 비웃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꾸준히 달리는 랄프의 정성에 감동한 전직 캐나다 최고 마라토너 허버트 신부(캠벨 스코트)가 랄프의 코치를 자처한다.
<리틀 러너>는 랄프가 보스톤 마라톤에 출전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춰 꿈과 희망이 전이되는 모습을 그려낸다. 영화는 학교에서는 왕따이자 말썽꾸러기로 유명한 랄프가 엄마를 깨어나게 하기 위해 막무가내식으로 마라톤에 매진하는 모습을 묘사하는데 상당한 공을 들인다. 그래서 영화 속에서 랄프는 달리고 또 달린다. 사고뭉치였던 탓에 도와주는 사람보다는 비웃는 이들이 더 많은 상황이지만 랄프는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엄마가 입원한 병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여자친구 클레어(타마라 호프)와 엄마의 담당 간호사 앨리스(제니퍼 틸리)만이 랄프를 지원할 뿐이다. 카톨릭계 학교에서 니체를 강의하는 괴짜 신부 허버트가 뒤늦게 랄프의 개인 코치로 합류해 함께 기적을 만들어나간다.
아픈 엄마를 위해 마라톤에 도전하는 소년의 이야기 <리틀 러너>는 별반 새로울 게 없다. 휴먼가족드라마의 틀 위에 스포츠영화의 박진감을 살짝 덧입힌 영화는 예정된 해피 엔딩을 향해 순조롭게 달려간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도 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틀 러너>는 묘한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영화다. <리틀 러너>는 미워할 수 없는 악동 랄프처럼 군데군데 자리한 상투성의 함정을 잔잔한 감동으로 덮어버리는 마력을 지녔다. 500대 1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주인공 랄프 역을 따낸 캐나다 출신 아담 버처의 자연스러운 연기와 빛나는 조연들의 활약은 영화의 감동을 배가시키는데 단단히 한몫을 한다. 전직 마라토너로 랄프의 코치가 되어준 허버트 신부 역은 <사랑을 위하여 Dying Young>(1991)에서 줄리아 로버츠의 상대역으로 출연했던 캠벨 스코트가 맡아 훌륭한 조력자의 역할을 해내며, 엄격한 교장선생인 피츠 신부는 캐나다의 베테랑 배우 고든 핀셋이 맡아 영화의 무게 중심을 잡아준다. 뻔하지만 감동적인 영화 <리틀 러너>의 각본과 연출은 주로 TV 드라마 연출에 매진해온 캐나다 출신 마이클 맥고완이 담당했다.
HOT 휴먼드라마의 감동과 스포츠영화의 박진감이 조화를 이룬다. 상투적인 소재를 매력적으로 연출한 마이클 맥고완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인다.
COLD 감독과 배우들의 이름이 잘 안 알려진 탓에 아예 관객들이 외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최상희 기자 (immerblau@movielink.co.kr)
[3/15 개봉작 리뷰] <쏜다> - 야단법석 난장판 일탈 드라마
오늘 하루는 박만수의 인생이 180도 뒤바뀌는 날이다. 도덕과 법규의 준수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공무원 박만수(감우성)는 정도만을 걷는 바른 생활 사나이. 도대체 융통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박만수는 준법정신과 성실성 하나로 평생을 살아 왔지만 오늘 하루 그 모든 게 부질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건의 시작은 아침부터다. 출근 준비에 정신 없는 만수에게 아내(문정희)는 함께 사는 게 재미없다며 이혼을 요구한다. 난생 처음 지각을 한 만수에게 직장 상사는 상부 지침이라며 정리해고를 통보한다. 내키지 않는 환송회 자리를 박차고 나온 만수는 경찰서 담벼락인 줄도 모르고 노상방뇨를 하다 강력계에서 좌천된 다혈질 경찰 마동철(강성진)에게 현행범으로 체포된다. 한편, 만수가 체포된 파출소에 병든 홀어머니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가벼운 죄를 짓고 교도소를 드나드는 양철곤(김수로)이 들어와 난동을 피우며 소란을 떤다. 아내의 이혼 이야기 때문에 마음이 다급해진 만수는 철곤의 부추김에 도망을 시도하다 다시 붙잡히게 되고, 철곤과 함께 경찰차에 실려 이송되던 중 차량사고가 나는 틈을 타 본격적인 탈주를 시작한다.
시나리오 작가 출신의 박정우 감독이 <바람의 전설> 이후 두 번째로 연출을 맡은 <쏜다>는 전형적인 박정우 스타일의 좌충우돌 야단법석 액션 영화다. <주유소 습격사건> <라이터를 켜라> <광복절 특사> 등 박정우 감독이 썼던 시나리오와 <쏜다>의 이야기는 여러모로 비슷한 점이 많다. <광복절 특사>처럼 상반된 성격의 두 남자가 탈주를 시작하고 <주유소 습격사건>의 인물들처럼 일탈의 쾌감을 즐긴다. 만수와 철곤은 달리고 부딪치고 깨부수고 총을 쏘아댄다. 시속 300킬로미터로 달리는 레이싱카와 도로 위를 질주하는 스포츠카 그리고 여기저기 충돌하는 자동차들. <난다> <간다>로 이어지는 도심난장 3부작 프로젝트의 시작이라고 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난장판의 연속이다. 왕복 16차선 도로를 막고 일렬로 정렬한 특수기동대 경찰병력과 그 위를 나는 헬리콥터는 대규모 군중 신으로 영화를 정리하는 박정우 감독의 특징을 다시 한 번 증명한다.
<쏜다>의 외양은 <내일을 향해 쏴라 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와 <델마와 루이스 Thelma & Louise>와 비슷하다. 사건이 전개되는 방식도 두 영화의 조합과 별반 다를 게 없다. 모범생 공무원과 효자 범죄자가 만나 평소 자신들을 억눌러왔던 것들을 깨부순다는 점만 차이가 있을 뿐이다. 법을 지키는 게 신념이었던 남자와 어기는 게 버릇이었던 남자, 두 사람 모두 가진 게 없는 소시민이고 당하고만 살아온 사회적 약자다. 이들의 일탈은 착하게 사는 것이 손해인 현실에 대한 노골적인 비판이다. <쏜다>를 코미디 영화로 분류하기보다 사회적 메시지가 강한 액션 드라마로 분류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하지만 만수와 철곤의 일탈은 충분히 예측 가능한 평범한 방식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드라마로서의 일탈은 찾아보기 힘든 것이다. 만수와 철곤의 일탈에만 초점이 맞춰져 두 사람과 경찰 마동철 사이의 긴장은 좀처럼 이어지지 않는다. 만수와 철곤의 계속되는 일탈을 정당화하는 동기가 지속적으로 부여되지 않아 영화가 진행될수록 이들의 행동은 점점 의미를 잃게 된다. 작용 반작용의 법칙은 영화에서도 꼭 필요한 원리다.
HOT 시끌벅적한 박정우식 소동극을 좋아한다면 한 번쯤 볼 만한 영화. 달리고 쏘고 깨부수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
COLD 박정우 감독이 시나리오를 썼던 영화들처럼 웃기는 영화를 원한다면 실망할 수 있는 영화. 사회적 억압과 통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일탈이 영화의 핵심인 것에 반해 일탈의 방식이 너무 단조롭다.
고경석 기자 (kave@movielink.co.kr)
[3/15 개봉작 리뷰] <엘 토포> - 컬트영화의 기념비적인 작품
총잡이 엘 토포(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는 어린 아들과 함께 사막을 횡단하던 중 악당들에 의해 폐허가 된 마을을 발견한다. 엘 토포는 사람들을 무차별 학살하고 마을을 점령해 버린 악당들을 찾아내 복수를 펼친다. 치열한 싸움을 마친 엘 토포는 마라(마라 로렌지오)라는 한 여인을 만난다. 자신의 아들을 버리고 마라와 함께 여행길에 오르게 된 엘 토포. 마라는 엘 토포에게 사막에 있는 네 명의 현자와의 대결에서 이기면 사막의 신이 될 것임을 알려준다. 마라의 꼬임에 넘어가 현자를 찾긴 했으나 이들의 실력이 보통이 아니다. 정상적인 방법으론 이길 수 없음을 판단한 엘 토포는 비열한 방법을 사용해 현자들을 처치해나간다. 하지만 승리의 기쁨도 잠시. 엘 토포는 마야의 배신으로 인해 사막 한 가운데 버려진다. 시간이 흘러 엘 토포가 동굴 속에서 깨어난다. 엘 토포는 장애인들에게 발견되어 목숨을 부지한 것이다. 엘 토포는 마을에 버림받고 동굴에 모여 사는 이들을 돕기로 결심한다.
<엘 토포 El Topo>(1970)는 종교, 정치, 문화적인 요소들이 한꺼번에 녹아 들어 있는 영화다. 각 요소들은 영화라는 용광로 속에서 꿈틀대며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겨 놓는다. 우선 <엘 토포>는 총잡이가 바람이 폴폴 날리는 사막에서 대결을 펼치는 내용을 그린 전반부와 세상으로부터 소외 받은 자들과 함께 수행을 시작하는 후반부로 나눠진다. 엘 토포가 네 명의 현자들을 찾아가 결투를 벌이는 전반부는 서부극의 모양새를 갖추고 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고행길에 나선 엘 토포의 수행 여정을 그리는데 초점을 맞춘다. 영화의 마지막 참혹한 죽음을 맞이하기까지 엘 토포의 여정은 고난과 위험으로 점철되어 있을 뿐이다. 엘 토포를 그리스도, 네 명의 현자들을 구약성서의 예언자들로 비유한다는 점에서 <엘 토포>는 성경의 재해석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엘 토포>는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감독이 각본, 음악, 미술, 의상, 주연까지 맡는 등 놀라운 괴력을 발휘해 만든 영화로, 그를 세계적인 컬트영화 감독의 반열에 올려놓은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서부극의 기묘한 변주이기도 하고 기독교 사상과 동양 철학을 뒤섞은 희한한 종교영화이기도 한 <엘 토포>는 신에 대한 흥미로운 재해석으로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1970년 12월 미국 뉴욕의 심야상영관에서 처음 상영된 후 컬트영화 마니아들로부터 폭발적인 지지를 얻은 <엘 토포>는 이후 심야영화의 신호탄이 되어 컬트영화 마니아들의 밤을 밝혀준 영화가 됐다. 그러나 표현 수위와 신성 모독 논란으로 국내에서는 개봉이 불가했던 작품. 이번 국내 개봉은 첫 개봉 후 37년만에 이루어진 것으로, <엘 토포>는 디지털 리마스터링을 거친 깨끗한 필름으로 상영된다.
HOT 컬트영화의 대표작이라는 점에서 마니아들의 관심을 끌 만하다. 지금까지 정식으로 개봉한 적이 한번도 없는 <엘 토포>를 디지털 리마스터링한 필름으로 대형 스크린에서 볼 수 있다는 점이 매력.
COLD 영화가 묘사하는 표현 수위가 상당히 높고 성경에 대한 재해석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김영서 기자 (nodata@movielink.co.kr)
3/15 개봉작 리뷰] <홀리 마운틴> - 충격적인 이미지의 향연
예수를 닮은 사나이(올라시오 살리나스)가 난쟁이의 손에 이끌려 세상을 배운다. 그의 눈에 비친 세상이란 군인이 도시를 점령하고 종교가 돈으로 거래되는 암흑과 같은 곳. 복잡한 세상을 정처 없이 헤매던 그는 신비한 지도자(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를 높은 탑에서 만난다. 그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이 지도자에게 세상에서 가장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일곱 수행원들을 소개받는다. 이들은 태양계의 행성을 각각 대표하고 있으며 사업가, 예술가, 재정고문, 경찰서장, 건축가 등 합법적인 직업을 내세워 세상의 돈을 긁어 모으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속세의 영광 대신 불멸의 삶을 추구한다. 예수를 닮은 사내와 지도자, 그리고 일곱 명의 수행원들은 불멸의 삶을 살고 있는 현자를 찾아 비법을 전수받기 위해 성스러운 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홀리 마운틴 The Holy Mountain>(1973)은 충격적인 이미지로 가득찬 영화다. 신비한 지도자가 음산한 주술소리와 함께 나체의 두 여성의 머리카락을 죄다 밀어 대머리로 만드는 장면을 전주곡으로 끔찍한 장면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자신의 눈알을 잡아빼는 남자, 가죽을 벗긴 동물들을 꼬챙이에 꿰서 행진하는 사람들, 예수의 성상을 빵처럼 씹어먹는 사람들 등 섬뜩한 이미지들의 향연이 이어진다. 그러나 충격적인 이미지를 통해 조도로프스키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세상이 아무리 혼란스럽더라도 도피하려 들지 말고 현실의 삶에 충실하라는 것. 성스러운 산에 오른 인물들이 보게 되는 것은 허상들로 가득한 현실의 모습이다. 불멸을 찾으러 가봤자 별 것 없다는 감독의 조롱섞인 메시지가 드러나는 것이다.
<홀리 마운틴>은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의 전작 <엘 토포 El Topo>를 보고 감동을 받은 비틀즈의 멤버 존 레논의 전폭적인 투자로 만들어 졌다. 소수의 국제영화제와 뉴욕과 샌프란시스코의 영화관에서 제한 상영된 후 한번도 전세계 배급망을 타 본적이 없는 <홀리 마운틴>은 컬트영화 마니아들의 사이에서 무단으로 불법 복제돼 어둠의 경로로 유통되는 불운을 겪었다. 판권 소유자였던 존 레논의 매니저 앨런 클라인과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의 불화로 개봉이 제한되었기 때문이다. 오랜 분쟁이 뒤늦게 해결되면서 국내에 개봉되는 <홀리 마운틴>이 지금에 와서도 여전히 충격적인 것은 자극적인 영상에 자신의 철학을 진심으로 담아낸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의 뚝심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HOT 조악한 화질의 불법복제 비디오를 돌려보며 <홀리 마운틴>에 열광했던 컬트영화 마니아라면 HD영화로 복원되고 무삭제로 찾아온 이 영화를 거부하기 힘들 것이다.
COLD <홀리 마운틴>은 섬뜩한 이미지로 가득 차 있는 영화다. 잔인하고 초현실적인 이미지들이 주는 충격을 감당하기란 쉽지 않다.
김영서 기자 (nodata@movielink.co.kr)
[3/15 개봉작 리뷰] <씨 인사이드> - 죽음을 꿈꿉니다
1998년 1월 13일 한 남자가 죽었다. 라몬 삼페드로, 그의 죽음이 유럽을 발칵 뒤집어 놓은 건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없는 전신마비자였기 때문이다. 스물 다섯에 사고로 침대에 누운 이후, 26년. 전신마비자로서 ‘죽을 수 있는 권리’를 외쳤던 그는 자신의 뜻이 관철되지 않자 결국 여자친구의 도움을 받아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목숨을 끊었다. 카톨릭 신자가 인구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카톨릭 국가 스페인에서 나라를 상대로, 당시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상대로, 유럽 인권재판소와 싸웠던 그는 그렇게 세상과 작별했다. 그리고 라몬 삼페드로가 생전에 쓴 책 [지옥으로부터의 편지]를 접한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감독은 그의 삶을 영화로 옮기기로 마음 먹는다. <씨 인사이드 Mar Adentro>는 그렇게 태어났다.
라몬 삼페드로(하비에르 바르뎀)는 오늘도 침대에 누워 하루를 맞는다. 26년 째 똑같다. 수영 사고로 전신마비가 된 그가 꿈꾸는 건 오로지 죽음. ‘삶은 의무가 아닌 권리’라고 생각하는 그는 이제 그 권리를 그만 놓고 싶다. 하지만 전신마비인 그가 죽을 수 있는 방법은 간단치 않다. 안락사를 원하지만 카톨릭 국가인 스페인이 이를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죽을 권리’를 내세우며 소송에 들어간다. 소송이 진행되고 그의 이야기가 세상에 전해짐에 따라 그의 침대 곁을 찾는 이들이 하나, 둘 늘어간다. 소송을 진행할 변호사이자 퇴행성 질환을 앓고 있는 훌리아(벨렌 루에다), 통조림 공장에서 일하는 씩씩한 여인 로사(롤라 두에냐스)가 그를 찾아오고, 사랑스런 가족들이 그의 곁을 지킨다.
데뷔작 <떼시스 Tesis>와 <오픈 유어 아이즈 Abre Los Ojos>, <디 아더스 The Others> 등 교묘하게 이야기를 꼬고, 반전을 심는 데 탁월한 재능을 발휘해온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감독은 <씨 인사이드>에서 이런 ‘기교’를 모두 버렸다. 침대 위에 묶인 라몬 삼페드로의 ‘상상’을 영화 사이 사이 끼워 넣고 있지만, 전반적으론 죽음에 당도하기까지의 과정을 차분히 옮길 뿐이다. 소송이나 사건을 크게 부각시켜 사건을 만들지도 않는다. 대신 라몬 삼페드로의 지난 날을 조용히 돌아보고, 가족들의 따스한 배려를 담아내며, 그가 새로 얻게 된 사랑의 감정에 주목한다. 그리고 이렇게 사랑 받고 있음에도 ‘죽고 싶다’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 관객이 귀 기울이게 만든다. 그렇다고 안락사를 무조건 옹호하는 건 아니다. 그를 사랑하는 가족들의 아픔을 함께 그려 ‘죽음의 권리’가 당사자에게만 해당하는 문제인지를 동시에 고민하게 만든다.
<하몽 하몽 Jamon Jamon> <라이브 플래쉬 Carne Tremula> <햇빛 찬란한 월요일 Los Lunes Al Sol>의 하비에르 바르뎀은 라몬 삼페드로의 아픔을 표정만으로 완벽히 묘사해낸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 청산가리를 탄 물을 마시고 죽어가는 이의 얼굴에 생생한 표정을 입혀냈다. 하비에르 바르뎀에게 제61회 베니스국제영화제 남자연기상을 안겨준 <씨 인사이드>는 같은 해 베니스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제77회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역시 거머쥐었다.
HOT 영화 속, 카톨릭 신부와 라몬 삼페드로의 '죽고 사는 권리'를 둘러싼 논쟁이 흥미롭다. 유머가 가득한 그 논쟁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다.
COLD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감독의 전작들을 좋아한다면 <씨 인사이드>는 너무 싱거울지도 모른다.
박아녜스 기자 (fatcat@movielin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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