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4월1주차 개봉영화
2007년 04월 0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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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토에서 아침을 Breakfast on Pluto>은 아일랜드 영화다. 아일랜드 출신 작가와 감독, 배우가 손을 잡고 만든 작품답게 <플루토에서 아침을>에는 아일랜드의 풍경과 아일랜드 특유의 문화가 오롯이 녹아 있다. 아일랜드가 낳은 유명 감독 닐 조단은 아일랜드 출신 시나리오 작가 겸 소설가인 패트릭 멕카베와 <푸줏간 소년 The Butcher Boy>(1997) 이후 두번째로 호흡을 맞췄고, 주인공 키튼 역에 킬리언 머피를 비롯, 연기력을 인정받는 아일랜드의 배우들이 가세했다.
영화의 배경은 1960년대에서 1970년대 사이 아일랜드의 시골 마을. 태어나자마자 성당 앞에 버려진 패트릭(킬리언 머피)은 엄격한 양어머니 밑에서 구박을 받으며 성장한다. 자라면서 자신을 여자라고 생각하게 된 패트릭은 자신의 이름을 성정체성이 불분명했던 성녀의 이름인 키튼으로 바꾸고 여장을 하고 다닌다. 자신을 버리고 간 친엄마를 '유령 숙녀'라고 부르며 그리워하던 키튼은 어느날 친엄마가 런던에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런던으로 향한다. 아일랜드 시골뜨기 키튼에게 런던은 정글이었다. 카바레 가수, 놀이공원의 광대, 마술사 보조 등 다양한 직업을 전전하며 여러 남자들과 사랑하고 이별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지만 친엄마를 찾는 데는 실패한다. 그러던 어느날 자신의 친아버지인 시골 마을의 신부가 찾아와 키튼의 친엄마가 사실은 아일랜드 시골 마을에서 가정을 꾸린 채 살고 있다는 말을 전한다.
1992년 작 <크라잉 게임 The Crying Game>에서 성정체성이 모호한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도발적인 정치 문제를 풀어내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던 닐 조단 감독이 오랜 만에 다시 여장 남자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플루토에서 아침을>을 만들었다. <크라잉 게임> <마이클 콜린스 Michael Collins> 등 아일랜드의 역사와 문화를 스크린으로 옮기는 데 관심을 기울여 온 닐 조단 감독은 <플루토에서 아침을>에서 다시 한번 아일랜드의 과거 한 시점을 스크린에 되살려낸다. 우리가 흔히 '변태'라고 부르는 복장도착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플루토에서 아침을>에는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60~1970년대 아일랜드의 정치적 상황과 문화적 배경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닐 조단 감독은 아일랜드 공화국군(IRA)의 테러 위협이 도사리고 있는 아일랜드의 불안한 정치 상황과 언제든지 테러 용의자로 몰릴 수 있는 사회 분위기, 여장 남자, 피부색 등에 대한 사회, 문화적 편견 등에 대한 이야기를 심각하게 묘사하지 않는 대신, '모든 것이 다 잘 될 거야'를 외치는 키튼 캐릭터를 내세워 경쾌한 톤으로 풀어낸다. 닐 조단 감독은 이처럼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삶을 긍정하는 키튼의 모습을 통해 긍정이야말로 인생의 난관을 극복해나갈 수 있는 힘이라고 역설한다.
<28일 후... 28 Days>와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The Wind that Shakes the Barley> <선샤인 Sunshine> 등에서 열연한 킬리언 머피가 바보스러울 만치 긍정적인 인물 키튼을 마치 자기 옷을 입은 것처럼 완벽하게 소화해내며, <쉰들러 리스트 Shindler's List>로 유명해진 아일랜드 배우 리암 니슨이 키튼의 친아버지인 인자하고 따뜻한 버나드 신부로 분한다. 이외에도 스티븐 레이, 브렌단 글리슨, 루스 네가, 로렌스 킨런 등 아일랜드 출신의 연기력 뛰어난 배우들이 조연으로 참여해 완벽한 앙상블을 선보이며 영화의 완성도를 높인다.
최상희 기자 (immerblau@movielink.co.kr)
[4/5개봉작 리뷰] <우아한 세계> - 우아하지 않은 가장의 우아한 꿈
강인구(송강호)라는 이름의 중년 남자가 있다. 아내(박지영)와 두 명의 자녀가 있는 평범한 가장이다. 캐나다로 유학 간 아들의 학비를 걱정하고, 갑자기 성적이 뚝 떨어진 딸(김소은)의 학교 생활을 신경 써야 하며, 가족의 안락한 삶을 위해 좋은 집으로 이사 갈 궁리를 해야 하는 대한민국 평균 가장의 모습과 별로 다르지 않다. 낮에는 정글 같은 직장 내에서 살아 남기 위해 발버둥치다가 밤이 되면 녹초가 되어 돌아온다. 대단한 성공 따위는 바라지도 않는다. 가족을 잘 지킬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일반적인 가장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직업이 특별하다는 것이다. 그는 조직폭력배다. 아내와 딸이 혐오하는 일을 하고 있지만, 당장 가족을 먹여 살리고 새 집을 장만하기 위해서 강인구는 어쩔 수 없이 조직에 몸담고 있어야 한다. 마지막 한 건만 성공적으로 마치고 조직을 떠나려 하지만 조직 내의 라이벌(윤제문)은 그의 밥그릇마저 빼앗으려 한다. 칼에 찔리고 경찰서를 드나드는 남편이 지긋지긋해진 아내는 이혼을 요구하고 딸과 함께 친정으로 떠나버린다. 위기에 몰린 가장 강인구는 이제 결단을 내려야 한다.
<우아한 세계>의 강인구는 상징적인 인물이다. 적자생존의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과 정신을 혹사시켜야 하지만, 집에 돌아가면 여러모로 부족한 남편이고 아버지일 뿐이다. 가족과 함께 우아한 삶을 살고 싶어도 팍팍한 현실은 그의 목을 졸라온다. 조직폭력배라는 직업은 단지 남을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을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 사회의 극단적인 은유일 뿐이다. 상징과 은유를 덜어 내면 강인구는 대한민국의 모든 가장을 대표하는 인물이라 해도 무방하다. 이것이 <우아한 세계>가 여타 조폭 영화들과 분명하게 대립되는 부분이다. <우아한 세계>를 조폭 영화의 진화 혹은 돌연변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는 조직폭력배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서가 아니라 묘사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연애의 목적>으로 데뷔한 한재림 감독은 강인구라는 인물을 통해 갱스터의 세계나 한국 중산층 가족사회의 문제점을 파헤치는 대신 그 속에 위치한 보편적인 의미의 한국 사회 가장을 응시한다. 지극히 1인층 시점을 유지하며 직장과 가족으로부터 소외된 인물의 현실을 낱낱이 드러낸다. <우아한 세계>가 누아르인 것은 ‘OO파’, ‘OO파’ 같은 폭력조직들이 등장해서가 아니라 한국 사회 자체의 생존논리가 거대한 갱스터 조직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비극적인 상황과 경쾌한 음악을 대조적으로 배치시키는 연출 방식에서 드러나듯 한재림 감독은 관객의 과도한 감정이입을 배제하기 위해 관습적인 장치 사용을 애써 피한다. 아이러니와 위트, 비극성을 공존시키며 따뜻한 인간 드라마를 완성해낸다. 휴먼 드라마는 결코 아니지만 누아르라는 장르적 특성에 비해 주인공을 바라보는 시선이 무척 따뜻하다. <우아한 세계>의 장점은 적당한 거리두기에 있다. 지나친 감정이입은 피하지만 연민의 시선은 시간이 지날수록 강화된다. 커다란 집에 홀로 남은 강인구가 가족의 모습이 담긴 테이프를 보며 눈물 흘리다 그릇을 집어 던지는 장면은 주인공을 바라보는 연출자의 시선이 가장 명확히 드러나는 부분이다. 최근 몇 년간 제작된 한국영화의 엔딩 장면 중 가장 인상적인 명장면이라 불릴 만한 이 신은 영화 속 주인공의 복잡다단한 심리를 압축해 담아내며 작품의 궁극적 메시지를 함축해 묘사한다. 단 하나의 장면으로 연기상을 수여한다면 송강호의 엔딩 신 명연을 0순위 후보로 올려야 할 것이다. 후반부로 접어들며 집중력을 잃는 작품의 단점을 한재림의 연출력과 송강호의 연기력이 완벽하게 결합된 엔딩 장면으로 만회한다. 한국 조폭 영화의 변화를 이야기할 때 <우아한 세계>는 가장 먼저 언급되어야 할 작품들 중 하나다.
고경석 기자 (kave@movielink.co.kr)
[4/5 개봉작 리뷰] <마하 2.6: 풀 스피드> - 실사촬영으로 담아낸 극한의 속도감
차세대 전투기 미라지 2000이 에어쇼 도중 사라져 버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프랑스 최고의 공군 마르첼리(브누아 마지멜)와 발로아(클로비스 코르니악)는 미라지 2000을 찾으라는 명령을 하달받고 수색작전에 돌입한다. 레이더 망을 피해 교묘하게 위장 비행하고 있던 미라지2000은 이들에게 발각되자 위협적인 태세를 취하고, 죽음의 위기에 놓인 발로아를 구하기 위해 마르첼리는 상부의 명령을 어기고 미라지 2000을 격추시킨다. 부대로 복귀한 두 비행사는 상부의 명령에 불복한 죄로 공군에서 쫓겨난다. 하지만 이들의 실력을 눈여겨 본 전투기 판매상은 실의에 빠진 이들에게 전투기를 다시 몰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마하 2.6: 풀 스피드 Les Chevaliers du ciel>는 최신예 전투기가 선사하는 극한의 속도감을 유감없이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카레이서 출신이자 <택시 Taxi>의 연출을 맡았던 제라르 피레 감독은 <마하 2.6: 풀 스피드>에서 무대를 하늘로 옮기며 긴박감 넘치는 비행 대결을 스크린에 펼쳐 놓는다. 역동적인 비행 신을 연출하기 위해 피레 감독은 실제 비행기에 특수 카메라를 달아 전투기를 뒤쫓으며 영화를 촬영했다. 컴퓨터 그래픽이 사용되지 않은 <마하 2.6: 풀 스피드>의 비행 장면은 전투기의 미세한 떨림까지 고스란히 잡아내 사실감을 높이고, 구름을 뚫고 360도 회전하는 미라지 2000의 모습은 짜릿한 전율을 선사한다. 알프스 산맥에서 파리 시내까지 펼쳐지는 유려한 풍경 역시 <마하 2.6: 풀 스피드>에서 놓칠 수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속도감 있는 영상에만 집중한 탓에 허술한 이야기 구조는 <마하 2.6: 풀 스피드>의 단점으로 작용한다.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테러리스트 파일럿의 정체는 끝내 밝혀지지 않으며, 차세대 전투기 미라지 2000을 둘러싼 음모 역시 설명 없이 성급하게 마무리된다. 또한 중동 테러집단의 방해만 없었다면 미국과의 비행 시합에서 무난하게 우승할 수 있을 것이라는 설정은 프랑스 전투기 미라지 2000에 대한 자부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 거부감을 일으키기도 한다.
김영서 기자 (nodata@movielink.co.kr)
[4/5 개봉작 리뷰] <철없는 그녀의 아찔한 연애코치> - 극성 엄마, 딸의 연애코치가 되다
밀리(맨디 무어)는 ‘얼굴도 안 보고 데려간다’는 셋째 딸. 하지만 결혼은커녕 지금껏 제대로 된 연애도 한번 못해봤다. 어떻게 된 게 만나는 남자마다 게이 아니면 유부남, 그도 아니면 변태들이다. 하지만 밀리의 이 ‘저주 받은’ 연애사를 본인보다 더 가슴 아프게 생각하는 이가 있었으니, 그녀는 다름아닌 밀리의 엄마 대프니 와일더(다이앤 키튼). 딸 셋을 혼자 힘으로 키워낸 억척엄마 대프니는 결혼해 잘 사는 두 딸과 달리 연애 젬병인 밀리가 걱정이 돼 밤잠을 설칠 지경이다. 자고로 엄마들의 치맛바람은 동서양 구분이 없는 법. 결국 대프니는 스스로 밀리의 애인을 찾기로 결심한다. 인터넷 사이트에 ‘애인구함’ 광고를 내고, 직접 면접을 거쳐 대프니가 낙점한 ‘미래 사위’는 건축가 제이슨(톰 에버렛 스콧). 이렇게 속 사정 전혀 모르는 밀리는 자신에게 다가온 남자 제이슨과 데이트를 시작한다. 그러나 이게 다가 아니다. 밀리에게 또 다른 매력남 조니(가브리엘 매치)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밀리의 ‘양다리 연애’는 이렇게 시작된다.
원제 ‘Because I Said So(내가 그렇게 말했기 때문)’에서 알 수 있듯 <철없는 그녀의 아찔한 연애코치>는 딸의 연애를 ‘내 맘대로’ 주무르고 결정하고 싶어하는 극성 엄마의 일기를 담고 있다. ‘네가 행복하길 바란다’는 마음으로 딸의 감정까지 조정하려 드는 엄마 대프니와 딸 밀리의 좌충우돌이 코믹한 톤으로 펼쳐진다. 문제는 티격태격 코믹한 전반부의 영화 흐름이 모녀간의 이해와 화해, 모녀애로 발전하는 후반까지 매끄럽게 이어지지 못한다는 점이다. 코믹한 상황 속에서 감동을 끌어내려는 ‘전형적인’ 드라마 공식이 투박하게 표현돼 결국 유쾌한 코미디도, 진한 모성애도 모두 빛 바랜 꼴이 되고 말았다.
<철없는 그녀의 아찔한 연애코치>에서 가장 흥미를 끄는 부분은 현실 속 여자들이 한번쯤 고민해봤을 ‘조건 좋은 남자와 조건보다 마음이 끌리는 남자’ 사이에서 고민하는 밀리의 양다리 연애다. 직업, 돈, 명예, 외모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제이슨과 마음 맞는 건 많지만 여러 가지 ‘세부 조건’이 형편없는 조니 사이에서 갈등하는 밀리의 고민이 영화에 현실적인 색을 입힌다. 하지만 이에 대해 영화가 새롭고 획기적인, ‘아찔한’ 결론을 찾았다는 건 아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진심’이란 ‘전형’에서 역시 영화는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한다. <고양이와 개에 관한 진실 The Truth about Cats & Dogs>을 통해 연애의 세심한 심리를 꿰뚫었던 마이클 레만 감독이 잡아낸 여성들의 연애 심리는 여전하지만 이것이 전형적인 이야기 틀 안에서 신선한 자극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한다.
영화에 기운을 불어넣는 건 억척 엄마 대프니를 연기한 다이앤 키튼. 다이앤 키튼은 ‘참견’이 짜증이 아닌 애교로 보일 수도 있다는 걸 온몸으로 증명하며 ‘사랑할 수밖에 없는’ 엄마를 훌륭히 표현해낸다. 그녀와 호흡을 맞춰 밀리를 연기한 맨디 무어도 영화에 귀엽고 발랄한 미소를 더했다. 드라마 <섹스 앤 시티 Sex and the City>의 사라 제시카 파커의 의상을 담당한 샤이 컨리프가 만들어낸 패션 스타일들은 여성 관객들을 <철없는 그녀의 아찔한 연애코치> 앞에 불러들이게 할 또 다른 요소다.
박아녜스 기자 (fatcat@movielin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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