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5월1주차 개봉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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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05월 0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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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더맨이 다시 빌딩 숲 사이를 날아오른다. 1편의 어수룩한 고등학생, ‘알바’에 치여 살던 2편의 바쁜 대학생이 3편에 이르러 어느덧 어엿한 청년이 됐다. 인간으로, 또 슈퍼 히어로로서의 성장통을 딛고 자란 청년 피터 파커. 스파이더맨의 운명을 기꺼이 받아들이기까지 힘겹고 질긴 고뇌를 해온 그가 또 다시 맞닥뜨리게 될 문제란 과연 무엇일까? <스파이더맨 3 Spider-Man 3>는 두 가지 문제를 한꺼번에 들고 나타났다. ‘인간’ 피터 파커를 겨냥한 갈등과 ‘슈퍼 히어로’ 스파이더맨을 향한 악당들의 도전이 그것이다.
피터 파커(토비 매과이어)는 요즘 행복하다. 메리 제인(키어스틴 던스트)과는 ‘러브 러브’ 연애 모드고, 피자 배달로 용돈을 벌어야 할 만큼 경제적으로 궁핍하지도 않다. 원래 똑똑했으니 공부도 척척. 스파이더맨으로 여러 가지 사건들을 해결하느라 피곤하긴 하지만 ‘시민의 영웅’이 된 탓에 인기는 할리우드 배우들 뺨칠 만큼이다. 게다가 결혼도 하고 싶다. 메리 제인과 결혼해 잉꼬 부부였던 삼촌과 숙모처럼 사랑하며 사는 게 꿈이다. 하지만 스파이더맨의 삶은 항상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법. 문제는 1, 2편과 달리 이번엔 상대해야 할 대상이 너무 많다는 거다.
각 시리즈마다 고블린과 닥터 옥토퍼스, 딱 한 명씩의 악당만 상대했던 스파이더맨에게 이번엔 세 악당이 한꺼번에 덤벼든다. 고블린의 아들이자 피터의 절친한 친구 해리 오스본(제임스 프랑코)이 아버지의 죽음을 복수하기 위해 ‘뉴 고블린’이 된다. 1편에서 피터의 삼촌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플린트 마르코(토마스 헤이든 처치)는 온몸이 모래로 된 ‘샌드맨’으로 다시 태어나 단단한 주먹을 휘두른다. 피터 대신 신문사 사진기자 자리를 노리는 에디 브록(토퍼 그레이스) 역시 외계에서 온 유기체 심비오트에 감염돼 ‘베놈’이란 이름의 괴물로 탄생했다. 이들을 상대하는 것도 피곤한데 문제가 또 있다. 스파이더맨은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나’ 때문에 괴롭다. 심비오트에 브록보다 먼저 감염된 스파이더맨은 자신 안에 복수심에 활활 불타는 ‘블랙 스파이더맨’이 불쑥 불쑥 나타나 난감하다. 블랙 스파이더맨은 대의는 나 몰라라, 개인적인 분노와 복수에 휩싸여 마구잡이로 힘을 쓰고 다닌다.
악당을 세 배, 네 배로 추가한 만큼 <스파이더맨 3>의 액션 스펙터클은 전편들을 가볍게 누른다. 거미줄을 쭉쭉 뽑아 그네 타듯 돌아다니던 스파이더맨의 스피드는 훨씬 빠르고 강해졌다. 영화 초반, 빌딩과 빌딩 틈 사이를 비집고 싸우는 뉴 고블린과의 대결, 샌드맨과 베놈, 뉴 고블린과 스파이더맨이 다같이 한 자리에 모여 합을 맞추는 액션 신은 전편의 어떤 액션 신에서도 보여준 적 없는 박진감과 파워를 선사한다. 위기의 순간 모래로 부서져 내리는 샌드맨, 고블린보다 더 정교한 칼날을 장착한 뉴 고블린 등 캐릭터의 특징에 따른 액션 비주얼도 시선을 잡아 끈다. 3억 달러(한화 2850억 원)라는 막대한 제작비는 이들 캐릭터를 표현하고 아드레날린이 한껏 분비되는 액션의 박진감을 위해 쓰여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항상 홀로 악당과 맞서던 전편과 달리 각기 두 명씩 ‘조’를 만들어 함께 싸우는 액션 신도 <스파이더맨 3>만의 재미다.
돈도 벌고 연애도 하고 공부도 해야 하는데 정의마저 지켜야 하다니. <스파이더맨 2>는 이런 피터 파커의 고민을 다뤘다. 정의냐, 일상의 행복이냐를 두고 고민하던 스파이더맨은 그래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캐릭터로 우리의 뇌리에 남아 있다. 액션과 함께 <스파이더맨 3>는 스파이더맨의 인간적 면모를 더욱 확장시킨다. 정의의 대명사로 불리지만 사실은 질투와 복수에 눈이 먼 또 다른 자아가 스파이더맨 내부에 있다는 ‘블랙 스파이더맨’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힘을 지닌 자가 복수 등의 개인적 감정에 휩싸일 때 얼마나 큰 위험과 직면할 수 있는지를 <스파이더맨 3>는 몸소 보여준다. 하지만 이러한 인간적 고민들이 2편만큼 생생하게 표현되었는지는 의문이다. 이는 복수와 질투 등의 감정이 스파이더맨 마음에 자리잡은 ‘진짜’ 감정이라기보다 외계 생물체에게 숙주로 사용돼 오염된 ‘가짜’ 감정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블랙 스파이더맨은 일반인과 똑같은 사사로운 감정에 휩싸인 인물이 아니라 외부의 힘에 의해 조종되는 껍질로 그려질 뿐이다. 때문에 두 가지 자아 사이에서 고민하는 스파이더맨의 인간적 고뇌는 가슴을 울리지 않는다.
박아녜스 기자 (fatcat@movielink.co.kr)
[5/1 개봉작리뷰] <이대근, 이댁은> - 어느 늙은 아버지의 초상
초라한 노년을 보내고 있는 독거노인 한 명이 있다. 그의 이름은 이대근(이대근). 악극단 잡일을 하다 도장포를 운영하며 일생을 보낸 이대근은 세상을 떠난 아내의 기일을 맞아 흥신소 구 실장(박원상)에게 자식들을 모아달라고 부탁한다. 사업이 망한 후 실종된 막내아들을 찾아내고, 장남(이두일)과 막내딸(안선영) 부부를 불러 모으는 것이 구 실장의 임무. 옷을 차려 입고 아들이 보낸 렌터카에 몸을 실어 장남 내외가 준비한 제사 자리에 참석한 이대근은 가족의 아픈 기억을 다시 끄집어낸다. TV 재연 프로그램 전문 배우로 근근이 살아가며 건강 보조기구 영업을 겸하고 있는 큰아들과 아버지의 괄괄한 성격을 이어받은 막내딸은 3년 만에 아버지를 다시 만나 예전의 갈등을 반복한다. ‘우리가 힘들 때 아버지는 어디 계셨나요?’가 그들이 공통적으로 아버지 이대근에게 묻는 질문이다. 아버지의 권위를 내세우며 호통치고 소리지르는 이대근과 막내아들만 감싸고 돈다며 아버지를 비난하는 장남, 종교적 신념 때문에 제사상에 절하지 않겠다는 막내딸의 갈등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커져만 간다.
<이대근, 이댁은>은 한국 사회 어딘가에 있음직한 한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다. 젊은 시절 악극단에서 꿈을 키우다 결국은 도장을 새기며 일생을 보낸 아버지와 막내 동생의 사업 실패로 빚을 떠안게 된 장남과 막내 딸은 접점이 보이지 않는 말다툼을 반복한다. 아버지로서는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는 자식들이 못마땅하고, 자식들은 막내아들만 감싸다가 가세를 기울게 한 아버지가 원망스럽다. 한국사회 가족의 일면을 대변한다는 의미에서 배우 이대근은 은유의 방식으로 차용된다. 군사정권 시절 강한 남자의 아이콘이었던 이대근은 이제 호통치는 것밖에 모르는 늙고 초라한 아버지를 연기한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가족과 대화하는 법을 몰랐던 아버지, 소통하기보다는 권위만 내세우고 목소리만 키우던 아버지, 자식들을 사랑하면서도 표현하지 못했던 아버지, 늙어서 혼자 남은 후에도 자식과 화해하지 못하고 자꾸 부딪히기만 하는 아버지. 이대근이 연기하는 아버지가 사실적인 것은 영화 속 이대근 가족이 초고속 성장을 이룬 개발도상국 사회가 남긴 쓸쓸한 뒷모습과 일부분 일치하기 때문이다.
민복기 원작의 연극 <행복한 가족>을 영화로 옮긴 <이대근, 이댁은>은 제사가 치러지는 장소가 직접적으로 암시하듯 연극적인 성격이 두드러진 작품이다. 구 실장으로 출연한 박원상이 원작 연극의 연출을 맡았고 배우로도 무대에 올랐다. 연극 원작을 영화로 옮겨서인지 <이대근, 이댁은>의 연극적 특성은 매우 두드러진다. 제사를 위해 아들이 빌린 집에서 대다수의 장면이 연출된다는 점이 그렇다. 아버지와 자식들 사이의 갈등을 묘사하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연극적인 부분이다. 이런 연극적인 설정은 <이대근, 이댁은>에서 영화적 장치로 기능한다. 눈치 빠른 관객이면 알겠지만, 제사 장면에는 반전이 숨어있다. 하지만 결코 반전을 위한 반전에 머무르지는 않는다. 제사라는 것 자체가 하나의 제의이듯 가족들의 모임도 하나의 제의로서 기능한다. 말하자면 이 모든 것이 이대근 가족을 위한 씻김굿인 셈이다.
고경석 기자 (kave@movielink.co.kr)
[5/1 개봉작리뷰] <아들> - 휴먼드라마와 장진식 코미디의 만남
최근 한국영화는 아버지를 중심으로 한 가족관계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 같다. 가족과 우아하게 살고 싶어 손에 피묻히는 일도 마다않지만 정작 가족 사이에서는 소외되는 아버지를 그린 <우아한 세계>나 죽어가는 딸과 마지막 시간을 보내는 아버지에 초점을 맞춘 <눈부신 날에>, 발달장애 아들을 데리고 씩씩하게 살아가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담은 <날아라 허동구>, 젊은 날 호통치는 것밖에 할 줄 몰랐던 아버지의 초라한 노년을 그린 <이대근, 이댁은> 등 아버지를 전면에 내세운 가족영화들은 최근 한국영화의 한 경향을 형성하고 있다. 장진 감독의 <아들>도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관계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에서 최근 개봉되는 일련의 아버지 영화 범주에 들어가는 작품이다.
젊은 날 강도 살인을 저지르고 무기수로 15년째 복역중인 이강식(차승원)은 하루 동안의 휴가를 얻게 된다. 강식은 그 하루의 휴가를 세 살 때 이후로 만나지 못한 아들 준석(류덕환)과 만나는 데 쓰려고 한다. 강식은 휴가 일주일 전부터 교도관으로부터 신세대 대화법을 배우는 등 아들을 만날 준비를 한다. 한편 아들 준석은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아버지와 만난다는 사실에 기대보다 걱정이 앞선다. 드디어 그 날이 오고 강식과 준석은 학교 앞에서 재회한다. 첫 만남의 어색함은 저녁 식사 후 둘이 함께 산책을 나간 후 서서히 깨지기 시작하고, 두 사람은 오랫동안 시간을 보내온 아버지와 아들처럼 친밀한 사이가 된다. 그러나 그 하룻밤이 지나고 교도소로 복귀하는 기차를 타기 위해 플랫폼에 앉은 강식은 배웅을 나온 준석으로부터 엄청난 비밀을 듣게 된다.
<아들>은 장진 감독이 지금까지 만들어온 영화들과 비교하면 다소 뜻밖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다. 장진은 데뷔작 <기막한 사내들>부터 <간첩 리철진> <킬러들의 수다> <아는 여자> <박수칠 때 떠나라> <거룩한 계보>에 이르기까지 관객의 뒷통수를 치는 기발한 상상력과 엇박자의 코미디로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를 구축해온 감독이기 때문이다. <아들>은 오랫동안 헤어져 있던 아버지와 아들이 만나 잊고 지냈던 정을 회복하는 내용의 휴먼드라마. 설정은 진부하기까지 하다. <아들>은 이처럼 소위 말하는 장진식 영화 스타일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영화다. 그렇다고 해서 장진 특유의 감성이 완전히 제거된 것은 아니다. 휴먼드라마의 틀거리 안에 장진 감독은 자신의 장기인 엇박자의 코미디를 슬쩍슬쩍 심어놓았다. 그래서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장면이 이어지는가 싶다가도 어느새 웃음이 피식피식 비어져나오는 신이 따라나온다.
이런 스타일의 혼합은 이 영화의 장점으로도, 단점으로도 작용할 수 있다. <아들>을 휴먼드라마로만 본다면 감정을 극단까지 밀어붙이지 않는 스타일이 불만일 수도 있고, 장진식 코미디를 기대한 관객들은 진부한 설정과 마냥 착한 영화의 내용을 불편하게 느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영화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갈릴 수 있지만, 배우들의 연기에 대해서는 별 이견이 없을 듯하다. <박수칠 때 떠나라>로 장진 감독과 인연을 맺은 차승원은 15년 동안 꼭꼭 숨겨두었던 부정을 폭발하는 아버지 이강식을 맡아 이름값이 아깝지 않는 연기를 선보이고, <천하장사 마돈나>로 연기에 물이 오른 류덕환은 엄청난 반전의 열쇠를 쥐고 있는 사춘기의 아들 준석을 매끄럽게 소화해낸다. 두 배우의 연기 호흡도 흠잡을 데 없이 자연스럽다. 치매 걸린 강식의 어머니를 연기한 김지영과 인정 많은 교도관을 맡은 이상훈도 맛깔스러운 연기로 재미를 더한다.
최상희 기자 (immerblau@movielink.co.kr)
5/3 개봉작 리뷰] <쉬즈 더 맨> - 그녀의 완벽한 이중 생활
왈가닥 여고생 바이올라(아만다 바인즈)는 축구를 사랑한다. 땅을 박차며 두 발 끝으로 공을 튀기는 것이 세상 무엇보다 행복하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 여자 축구부를 해체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날아든다. 남자 축구부는 괜찮지만 여자 축구부는 더 이상 안 된다는 학교 쪽 통보에 바이올라는 화가 잔뜩 올랐다. 그때 문뜩 바이올라의 머리를 스치는 생각 하나. 자기와 쏙 빼닮은 쌍둥이 세바스찬의 학교로 잠입하는 것이다. 새 학기를 시작하지도 않고 음악 한답시고 영국에 가버린 세바스찬 대신 그곳 고등학교 축구부에서 뛸 생각이다. 자신의 고등학교 축구 라이벌이니 곧 축구로 ‘맞짱’도 뜰 수 있을 터. 여자 축구부를 해체한 데 대한 복수를 확실히 할 수 있다. 문제는 쌍둥이 세바스찬이 남자라는 것. 꼼짝없이 바이올라는 남장을 해야 할 신세가 된다. 그렇게 바이올라의 ‘이중 생활’이 시작된다.
축구를 하고 싶어 남자가 된 여고생 이야기 <쉬즈 더 맨 She’s the Man>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십이야 The Twelfth Night]가 원작이다. 쌍둥이 세바스찬으로 남장한 바이올라를 올리비아 백작부인이 사모하고 오시노 공작이 그런 올리비아 백작부인을 맘에 품는, 그러나 정작 바이올라가 좋아하는 사람은 오시노 공작이란 원작의 ‘복잡한’ 삼각 구도가 그대로 영화로 옮아왔다. 세바스찬의 기숙사로 성큼 걸어 들어간 바이올라의 룸 메이트는 같은 축구부의 듀크(채닝 테이텀). 듀크는 학교 킹카 올리비아(로라 램지)를 오랫동안 좋아했다. 하지만 올리비아의 눈에 든 건 여느 남자애와 달리 말이 잘 통하는 바이올라다. 그리고 바이올라는 어느덧 듀크에게 조금씩 룸 메이트 이상의 감정을 품게 된다. 현대판 [십이야]라고 불러도 전혀 손색 없는 <쉬즈 더 맨>의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관계망을 그대로 걷어 와 차용하는 건 좋지만 관계를 이루는 각 인물들의 심리 변화는 제대로 옮겨오지 못했다. 여러 에피소드를 거치며 바이올라를 좋아하게 되는 올리비아의 감정은 그나마 이해되지만 듀크를 좋아하게 된 바이올라의 심경 변화는 좀처럼 납득하기 어렵다. 굳이 찾자면 한번의 장난 같은 키스 정도? 그도 아니면 듀크와 함께 살면서 그의 멋진 근육에 마음을 빼앗겼을 거라는 추측만이 가능할 뿐이다. 샤워실, 가발, 탐폰 등 남자 고등학교 축구부에 들어간 여학생이란 설정에만 기댄 성의 없는 에피소드들도 영화를 엉성하고 어지럽게 만들었다.
<쉬즈 더 맨>에 힘이 되어 준 건 남장 여고생이 돼야 했던 아만다 바인즈의 호연. 아만다 바인즈는 ‘북 치고 장구 치고’란 말이 무슨 뜻인지 온 몸으로 보여주듯 매 장면, 매 에피소드에 웃음을 끌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왈가닥 여고생 바이올라의 마음을 흔들어놓는 멋있는 남자 듀크 역은 국내에 <스텝 업 Step Up>으로 얼굴을 알린 채닝 테이텀이 맡았다. 잘 만들어진 로맨틱 코미디만을 엄선해 소개한다는 취지로 시작된 ‘무비 온 스타일’ 첫번째 프로그램인 <쉬즈 더 맨>은 무비 온 스타일이 진행되는 메가박스 극장에서만 만나볼 수 있다.
박아녜스 기자 (fatcat@movielink.co.kr)
[5/3 개봉작 리뷰] <캐쉬백> - 결정적 순간을 잡아라
미술을 전공하는 대학생 벤(숀 비거스태프)은 얼마 전 여자친구와 헤어졌다. 그리고 곧 사귀게 된 새 친구는 ‘불면증’. 벤은 잠을 이룰 수 없다. 하루 24시간 중에 단 1분도, 아니 단 1초도 말이다. 그렇게 2주가 흘렀다. 처음엔 잠을 잘 수 없어 괴로웠던 벤은 자신에게 ‘덤’으로 주어진 8시간을 활용하는 방법을 찾기 시작한다. 그것이 바로 대형 슈퍼마켓 야간 근무. 남들이 잠으로 흘려보낼 8시간을 돈과 맞바꾸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야간 근무 일은 지루하기만 하다. 물론 이건 벤만의 얘기는 아니다. 샤론(에밀리아 폭스)을 비롯한 벤의 동료들은 무료함을 달랠 제 각각의 방법들을 연마 중이다. 그러던 어느 날, 벤은 자신이 시간을 멈출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시간아 멈춰라’하면 시간이 곧 멈춘다. 정지된 시간 안을 홀로 걸을 수 있는 벤은 그곳에서 멈춰진 순간, 정지된 인물을 곰곰이 관찰하고 그들을 스케치한다. 어느 날 멈춰진 공간을 거닐던 벤의 눈에 동료인 샤론의 모습이 빨려 들어온다.
<캐쉬백 Cashback>은 18분짜리 동명 단편영화에서 시작됐다. 열한 살부터 사진을 찍기 시작해 90년대 후반, 영국을 대표하는 차세대 패션 사진작가가 된 숀 앨리스가 ‘시간과 아름다움’에 대한 머리 속 그림을 옮긴 단편 <캐쉬백>은 2004년 아카데미 최우수 단편 후보에 오르며 주목 받았다. 단편에 살과 피를 보탰지만 장편 <캐쉬백>을 흐르는 기본 주제는 단편의 큰 맥인 ‘시간과 아름다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오랫동안 사진작가로 살아온 숀 앨리스 감독은 영화에 ‘사진’의 이미지를 고스란히 가져온다. 시간을 멈추고 순간을 한 장의 정지된 화면 안에 잡아 놓을 수 있는 벤의 능력은 그 자체로 사진이 갖는 능력과 같다. 차이가 있다면 벤은 정지된 화면 안에서 움직일 수 있다는 것. 벤은 멈춰진 순간 안으로 뛰어들어 대상들을 관찰하고, 때론 대상에 변화를 주어 다시 움직이게 될 앞으로의 공간을 조금씩 비틀어 놓는다.
멈춰진 시간 안에서 벤이 하는 일은 대부분 ‘아름다움’을 찾는 일이다. 쇼핑 카트를 밀고, 물건을 고르는 이들의 몸이 지닌 아름다움을 벤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관찰하고 스케치한다. <캐쉬백>은 사진과 그림, 영상 등 인생에서 숱하게 마주치고 또 흘려보내는 ‘결정적 순간들’을 간직하는 수많은 미적 체험을 온몸으로 재현해 보여주고 있다. 자유자재로 조합해낸 시간이 매력적이고 한 컷, 한 신 모두가 아름답지만 <캐쉬백>이 ‘시간과 미(美)’의 문제에 대해 영화를 표현하기 위한 ‘수단’ 이상을 넘어 관객들로부터 얼만큼 깊이 있는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사랑과 아름다움에 관해 ‘1초’의 시간이 갖는 의미를 나름대로 찾아내지만 시간과 아름다움에 관한 본질적인 고민들은 영화에 그리 깊게 드리워 있지 않다.
패션 사진작가란 이름에 걸맞게 <캐쉬백>은 황홀한 이미지들로 가득하다. 수많은 여체들로부터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벤의 눈동자와 함께 관객 역시 아름다움의 순간들을 체험할 수 있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가볍게 부수는 영화적 상상력도 <캐쉬백>의 매력 포인트 가운데 하나. 여기에 벤의 슈퍼마켓 동료로 나오는 네 명의 ‘어리버리’ 유머가 영화에 자잘한 코미디를 심어두었다. <해리포터 Harry Potter> 시리즈 1, 2편에서 퀴디치 주장 ‘올리버 우드’ 역을 연기한 숀 비거스태프가 상상력 가득한 청년 벤을,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피아니스트 The Pianist>에 출연한 에밀리아 폭스가 벤의 또 다른 사랑 샤론을 연기했다.
박아녜스 기자 (fatcat@movielink.co.kr)
[5/3 개봉작리뷰] <마이 베스트 프렌드> - 내 친구는 어디 있는가?
사람들은 농담 삼아 이런 말로 남을 놀리곤 한다. ‘그래서 네가 친구가 없는 거야’라고. 복잡한 인간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문득 휴대폰에 빼곡히 저장된 전화번호를 뒤적거리며 ‘누가 진정한 내 친구인가?’ 하고 묻는다. 중년의 골동품 딜러인 이혼남 프랑수아(다니엘 오테이유)도 그 중 한 명이다. 다이어리를 가득 채우는 일정표대로 바쁘게 움직이는 프랑수아는 사람들과의 약속에 파묻혀 사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조문객이라곤 고작 10여 명에 불과한 한 고객의 장례식에 참석한 프랑수아는 자신의 생일을 축하하는 친구들의 모임에 나갔다가 ‘너를 진정한 친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말을 듣는다. 심지어 동업자인 카트린(줄리 가예)은 10일 안에 진정한 친구를 데려오면 프랑수아가 최근 회사 경비로 경매에서 구입한 골동품 그리스 화병을 주겠다고 내기를 건다. 승리를 자신하던 프랑수아는 친구들의 목록을 뽑고 하나둘 찾아가지만 냉담한 반응에 당황해 한다. 의기소침해진 프랑수아를 자극한 건 다름아닌 택시기사 브뤼노(대니 분). 누구와도 금방 친해지는 것처럼 보이는 브뤼노에게 친구 사귀는 법을 배우던 프랑수아는 내기에서 이길 묘안을 떠올린다.
일생 동안 진정한 친구 한 명만 있어도 성공한 인생이라고들 말한다. 대인관계가 복잡해지고 업무에 빼앗기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현대인들에게 친구 문제는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결혼식 하객 대행이 뉴스에 보도될 정도니 프랑스 파리나 대한민국 서울이나 별 차이는 없는 셈이다. <마이 베스트 프렌드 Mon Meilleur Ami>는 친구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현대인에 대한 우화다. 프랑수에게는 진정한 친구도 없지만, 사실상 가족이라 할 만한 사람도 없다. 이혼 후 아내와는 왕래가 없는 상태이고, 유일한 자식인 딸과도 거의 대화가 없다. 프랑수아에게 친구 만들기 비법을 가르치는 택시기사 브뤼노 역시 별반 다를 게 없다. 처음 만난 사람과도 금방 친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에게도 진정한 친구란 없다. 브뤼노에게 충고를 듣건 친구 만들기 비법 강연회에 찾아가건 ‘베스트 프렌드’를 만드는 데 별 도움은 되지 않는다. 프랑수아는 내기에서 이기기 위해 브뤼노를 이용하고, 그러한 과정 속에서 친구의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영화 속 그리스 화병에 그려진 아킬레스와 파트로클로스의 우정은 <마이 베스트 프렌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지점이라 말할 수 있다.
<마이 베스트 프렌드>는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Le Mari de la Coiffeuse> <걸 온 더 브릿지 La Fille sur le Pont> <친밀한 타인들 Confidences Trop Intimes> 등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중견 감독 파트리스 르콩트의 2006년 작품이다. 주로 연인들의 심리묘사에 관심을 기울이던 감독은 <마이 베스트 프렌드>에서 외로운 현대인의 초상을 가벼운 터치로 그려낸다. <마이 베스트 프렌드>가 코미디이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웃음을 만들어 내는 것은 현대사회에서 왜곡된 친구의 의미를 꼬집기 때문이다. 프랑수아가 카트린에게 진정한 친구가 있음을 보여주려고 꾸민 연극은 현대인들이 얼마나 이기적인 방식으로 친구를 사귀는지 말해준다. 하지만 친구의 의미에 대해 얼마나 깊이 고민했는가는 다른 문제다. 과장 섞인 프랑수아와 장치로서 활용되는 브뤼노의 캐릭터는 복잡미묘한 친구 관계를 다루기엔 너무 도식적이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로 선택된 퀴즈 쇼 장면은 극적 장치로서는 훌륭히 기능하지만, 프랑수아와 브뤼노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는 데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다. 진정한 친구를 만들기란 브뤼노의 대사처럼 도저히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것이다.
고경석 기자 (kave@movielink.co.kr)
[5/3 개봉작리뷰]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 - 강충남, 일본에 살다
택시기사 강충남(기시타니 고로)은 재일한국인이다. 술집을 운영하는 어머니와 함께 일본에서 살고 있기는 하지만 남북통일 문제 같은 것은 그의 관심 밖이다. 동창이 운영하는 택시회사에 운전사로 일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강충남에게 어느 날 미모의 여인 코니(루비 모레노)가 나타난다. 필리핀계 불법이주민 코니는 강충남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술집에서 접대부로 일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에겐 한없이 사랑스런 여인일 뿐이다. 코니의 마음을 사기 위해 온갖 권모술수를 사용한 강충남은 결국 그녀와의 동거에 성공하게 된다. 충남과 코니가 연애의 재미에 흠뻑 빠져 있는 동안 택시회사에는 커다란 위기가 닥친다. 재정적 위기에 몰린 택시회사 사장이 야쿠자의 돈을 빌려 빠져나올 수 없는 덫에 걸려든 것. 필리핀으로 가서 함께 살자는 코니의 제안도, 망해가는 회사를 살리고 싶은 의지도 충남에게는 이제 버거운 일로만 느껴진다.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 All Under the Moon>는 재일한국인 강충남과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택시기사 강충남의 이야기가 영화를 이끌어 가고 있지만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는 재일한국인의 애환과 설움에만 무게중심을 둔 작품은 아니다. 충남의 애인인 코니는 15살에 필리핀에서 일본으로 건너온 뒤 시부야 술집을 전전하며 호스티스 생활을 하는 여인이다. 택시회사 동료인 일본인 친구들은 늘 돈이 없어 강충남에게 구걸을 하고, 부인이 집을 떠나 독수공방하고 있는 하층민의 전형이다. 사기를 당해 야쿠자에게 택시회사를 저당 잡히는 사장 세이이치 역시 이들의 삶과 다를 바가 없다. 이들은 하나같이 사람에 치이고 돈에 치이는 소시민들이며 한 푼이라도 주워 모으며 전전긍긍해 봤자 영원히 비주류로 남을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는 재일교포 출신인 양석일 작가의 소설 [택시 광조곡]을 원작으로 하고 재일한국인 최양일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지만 재일한국인 뿐만 아니라 이주노동자, 일본 하층민 등 일본에 사는 아시아인들의 문제와 고민을 동시에 털어 놓고 있다.
<피와 뼈 Blood and Bones> <수>로 최양일 감독의 영화를 먼저 접한 관객이라면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는 다소 낯설수 있다. 최양일 감독은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피가 사방에 튀기는 하드보일드 영화의 대가이기도 하지만 코믹한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앙상블에도 재능을 보인 감독이기 때문이다.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는 재일한국인, 불법이민자의 무거운 소재를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이들의 일상을 유쾌하게 풀어놓는 소동극 형식을 취하고 있다. 영화는 엉뚱하고 개성 강한 캐릭터들이 즐비해 있는데 그 중 가장 돋보이는 인물은 시도 때도 없이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자신의 위치를 물어보는 택시기사 안보다. “내가 지금 어디 있지요?”라고 물어보는 안보의 질문은 최양일 감독이 자신에게 묻는 씁쓸한 농담이기도 하다. 1993년 작인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는 우리나라에 14년 만에 지각 개봉되는 영화지만 최양일 감독의 대표작 중 하나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일본 영화잡지 [키네마 준보]는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를 1993년 베스트 1위로 선정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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