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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31일, 개봉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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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김응수)는 궁금하다. 그의 연인이 “가장 가까웠던 사람에게 가장 잔인했던 나를 용서하지 않길 바래”라는 엽서 한 통을 남겨둔 채 갑자기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녀는 어디로 간 것일까? K는 3년 전 그녀와 함께 여행한 적 있는 히말라야 고원의 라다크로 무작정 발걸음을 옮긴다. 하지만 사라진 그녀를 찾기 위한 여정은 쉽지가 않다. K는 정체불명의 여행객 태훈(이재원)을 만나 히말라야를 넘는 도중 심한 고산병에 시달린다. 수십 번의 토악질과 죽을 만큼 힘든 두통을 겪으며 간신히 천상고원에 다다른다. 태훈 역시 말없이 사라져 버렸지만 K는 3년 전 여행에서 찍었던 사진 속의 주인공을 찾아 나선다. 어떤 이는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해 그곳에 없고, 다른 이는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변해있었다. 하지만 K는 그들에게 사진 한 장씩을 전해주며 소소한 즐거움을 느낀다. 사진을 모두 돌려주고 난 후 K는 더 이상 그녀를 찾지 않고 왔던 길을 되돌아온다.
네 명의 스탭으로 제작된 <천상고원>은 극영화와 다큐멘터리가 혼합된 로드무비다. 김응수 감독, 배우 김재원, 촬영감독 박기웅, 그리고 동시녹음기사 김원이 <천상고원>을 만든 사람들이다. 특히 김응수 감독은 연출뿐 아니라 주인공 K역을 맡아 연기도 겸했다. 영화 속 K가 여행을 떠나는 라다크는 감독이 3년 전에 여행했던 곳이기도 하다. 영화는 K가 사라진 애인을 만나기 위해 여행길에 오르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지만 이들의 만남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천상고원>은 뜻하지 않게 히말라야 여행을 하게 된 주인공이 다시 대자연과 조우하며 성찰의 시간을 갖게 된 것에 주목한다. K는 덜컹거리는 자동차에 몸을 실어 라다크로 향하지만 고산병에 시달리며 대자연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생각한다. 또한 세속적인 삶에서 벗어난 현지 주민들과 만나고 광활하게 펼쳐진 길을 통과하면서 정신적으로 황폐한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 보게 된다.
하지만 <천상고원>은 80분의 러닝타임 동안 대사가 거의 없이 진행돼 변화하는 주인공의 내면을 따라잡기에는 버거운 편이다. 영화는 주인공이 별이 쏟아져 내리는 밤하늘을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 장면을 카메라에 담아낼 뿐 그가 무엇을 발견했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해발 5,000미터의 히말라야 고원을 통과하지만 K가 간간히 구토 때문에 차를 멈춰 세우는 것 외에는 별다른 사건도 벌어지지 않는다. 카메라는 그저 K의 단조로운 여정을 묵묵히 따라갈 뿐이다. 감독은 광활한 자연 속에 작기만 한 인간의 모습을 포착해내는 것으로 만족할 따름이다. <천상고원>은 2006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기도 한 작품으로, 뒤늦게 관객들과 만나게 됐다.
김영서 기자 (nodata@movielink.co.kr)
[5/31 개봉작 리뷰] <상성: 상처받은 도시> - 상처 받은 사람들의 도시, 홍콩
형사 선후배 사이인 유정희(양조위)와 아방(금성무)는 크리스마스 연휴에도 편히 쉴 수가 없다. 출동명령을 받고 현장을 급습하던 중 유정희는 파렴치한 범죄를 저지른 범인에게 분노하고, 아방은 귀가 후 자신의 애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을 알고 오열한다. 3년 후, 둘의 상황은 극명하게 변한다. 유정희는 경찰청의 엘리트 팀장으로, 가정에선 숙진(서정뢰)에게 헌신하는 다정한 남편으로 행복한 삶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아방은 애인의 자살로 충격을 받고 알코올 중독자가 돼 사립탐정 일을 하며 간신히 생계를 유지하기 바쁘다. 그러던 어느 날 유정희의 장인이 잔인하게 살해되고, 숙진은 사립탐정인 아방에게 사건의 재수사를 요청한다. 의뢰를 받은 아방은 사건을 조사할수록 유정희가 연루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상성: 상처받은 도시 Confession of Pain>는 <무간도 Infernal Affairs> 시리즈로 유명한 유위강, 맥조휘 콤비의 작품이다. <상성: 상처받은 도시>은 비극적인 운명에 놓인 두 남자의 이야기를 그렸다는 점에서 <무간도>와 같은 연장선에 있지만, 살인범을 뒤쫓는 추리극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점을 갖는다. <상성: 상처받은 도시>가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과정은 특이하다. 영화의 초반부에 범인을 미리 밝히고 이야기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상성: 상처받은 도시>는 ‘어떤 사연으로 범죄를 저지르게 됐는가’를 다룬 추리물이다. 그 과정에서 유위강, 맥조휘는 홍콩 누아르를 부활시킨 감독답게 도시의 우울한 정서를 유려하게 그려낸다. 카메라는 홍콩의 야경을 멀리서 담아내며 쓸쓸한 분위기를 전달하고, 후미진 뒷골목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를 포착해낸다. 또한 <상성: 상처받은 도시>는 가슴 아픈 사연이 있는 범인을 내세워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는 전략을 구사한다. 유정희와 아방이 아웅다웅하며 살아가는 홍콩이란 도시에는 영웅도 악당도 아닌, 상처 받은 사람들만이 존재할 뿐이다.
하지만 <상성: 상처받은 도시>는 범인의 사연을 풀어내는 과정이 매끄럽지 못하다. 아방이 도서관에서 책을 뒤적이다가 느닷없이 사건의 단서를 발견하는 장면이나 영화의 후반부, 범인이 자신의 사연을 한꺼번에 고백하며 그간의 이야기를 정리하는 부분에선 추리물의 긴장감을 크게 떨어뜨린다. 금성무의 연인으로 등장하는 서기는 이야기 전개에 하등 지장을 주지 않는 사족과도 같은 인물이라 아쉬움을 남긴다. <상성: 상처받은 도시>는 양조위가 <무명경찰 Young Cops>로 영화계에 입문한 뒤 21년 만에 처음으로 악역을 맡은 작품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끌기도 했다. 또한 <상성: 상처받은 도시>는 할리우드에 리메이크가 확정됐고 <킹덤 오브 헤븐 Kingdom of Heaven> <디파티드 The Departed>로 유명한 시나리오 작가 윌리엄 모나한이 시나리오 각색에 참여할 예정이다.
김영서 기자 (nodata@movielink.co.kr)
[5/31 개봉작 리뷰] <팩토리 걸> - 앤디 워홀의 그녀
팝 아티스트 앤디 워홀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여배우는 누굴까. 앤디 워홀의 대표작 몇 편쯤 아는 이라면 대부분 마릴린 먼로를 떠올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마릴린 먼로보다 더 가까운 이가 있다. 앤디 워홀의 작품 세계는 물론 개인적인 삶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친 여인, 배우 에디 세즈윅이 바로 그다. 에디 세즈윅은 <가련한 부자 아가씨 Poor Little Rich Girl> <루페 Lupe> 등 1960년대 만들어진 앤디 워홀의 영화 대부분에 출연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스타이자 깡마른 몸에 찰싹 달라붙는 블랙 타이즈, 스모키 화장을 즐겼던 1960년대 패션 아이콘이었다. <팩토리 걸 Factory Girl>은 그녀를 위한 찬가다. 앤디 워홀과 만나 서로 교감을 나누고 배우로서 반짝이던 한 때, 그리고 약에 빠져 스물 여덟의 나이로 생을 다할 때까지, 에디 세즈윅의 인생이 통째로 들어있다.
1965년. 하버드에서 미술을 공부하던 에디 세즈윅(시에나 밀러)은 더 큰 세상과 만나고 싶어 뉴욕행을 결심한다. 그리고 그녀는 그곳에서 앤디 워홀(가이 피어스)과 운명적인 만남을 가진다. 그 시절 앤디 워홀은 캠벨수프 깡통을 늘어놓은 파격적인 전시로 미술계와 문화계의 관심(관심이 방향이 호의적이든 호의적이지 않았든 간에)을 한 몸에 받던 팝 아티스트였다. 하지만 이들의 만남이 에디 세즈윅에게만 흥미로웠던 건 아니다. 앤디 워홀은 한 눈에 그녀의 매력을 간파했고, 그녀를 자신이 작품 활동을 하던 예술 공간 ‘팩토리’로 초대한다. 재력가의 딸이자 뉴욕 패션계를 쥐락펴락한 패션 아이콘 에디 세즈윅은 그렇게 앤디 워홀의 친구가 된다. 그리고 영화 작업을 통해 점차 그의 뮤즈가 되어 간다. 그러나 이들의 달콤한 한 때가 그리 오래 지속된 건 아니다. 앤디 워홀은 곧 다른 예술 ‘동지’들과 관계를 확장해갔고, 약에 손을 대기 시작한 에디 세즈윅의 인생은 시들어가기 시작한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지옥의 묵시록 Apocalypse Now> 제작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회상, 지옥의 묵시록 Heart of Darkness: A Filmmaker’s Apocalypse>과 몽키스, 콜드 플레이 등 유명 음악인들의 명성을 다룬 다큐멘터리 <메이어 오브 선셋 스트립 Mayor of the Sunset Strip> 등을 작업한 조지 하이켄루퍼 감독은 <팩토리 걸>에서도 다큐멘터리의 색채를 잊지 않았다. <팩토리 걸>이 가장 공을 들인 부분은 재현. 앤디 워홀의 작품은 물론 60년대 문화계의 모습, 에디 세즈윅의 패션들을 스크린에 옮기기 위해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덕분에 은박지와 은색 페인트로 칠해진 벽과 은색 풍선, ‘실버 팩토리’라 불리던 앤디 워홀의 작업 공간이 고스란히 영화 안으로 옮겨왔다. 여기에 1963년부터 66년까지, 앤디 워홀의 작품 가운데 열아홉 작품이 실물 그대로 영화 속 소품으로 사용됐다. 고독한 듯하면서 냉정함을 잃지 않는 앤디 워홀의 표정, 스모키 화장으로 대표되는 에디 세즈윅의 여러 패션 아이템들도 완벽한 의상, 메이크업으로 스크린 위에 재현된다.
하지만 영화는 앤디 워홀이 왜 에디 세즈윅을 철저히 이용하다 버렸는지, 매혹으로 빛나던 에디가 왜 그토록 쉽게 약물에 빠져들었는지에 대한 제대로 된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는다. 이들 관계의 겉만 훑다 보니 에디 세즈윅의 일대기를 정리하는 데 머물 뿐, 미술학도이기도 했던 그녀의 예술에 대한 열정과 삶의 고뇌는 어느 곳에도 설명되지 않는다. 그 시대, 미술계의 고정관념들을 뒤흔든 앤디 워홀의 예술 감각은 드러나지 않고 그를 감정이 움직이는 대로 ‘아무 생각 없이’ 영화를 찍고 그림을 그리는 제멋대로 예술가로 그린 것도 아쉬운 부분 가운데 하나다.
박아녜스 기자 (fatcat@movielink.co.kr)
[5/31 개봉작 리뷰] <데스워터> - 물도 함부로 마시지 마라
됴쿄 서쪽 지역에서 최근 몇 달 간 의문의 자살 사건이 연이어 발생한다. 자살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자신의 눈을 찔렀다는 점. 이 사건을 취재하던 신문기자 교코(이가와 하루카)는 이 끔찍한 사건이 모두 물과 관련되어 있다는 의심을 품고, 전 남편이자 수질 연구원인 유이치(와타베 아츠로)에게 도움을 청한다. 처음에는 교코의 말에 콧방귀를 뀌던 유이치는 동료 연구원이 눈을 찌르고 자살한 사건을 겪으면서 교코에게 협조하게 된다. 두 사람은 문제의 물이 '데스워터(죽음의 물)'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데스워터를 마신 사람은 환각을 보며 점점 미쳐가다가 결국 끔찍한 방법으로 자살하게 된다는 사실도 알아내게 된다. 그러나 문제는 데스워터가 상수관을 통해 도쿄 서쪽 지역 전체로 흘러들어갔다는 사실.
동명의 일본 호러소설을 원작으로 한 공포영화 <데스워터 Death Water>는 인간의 삶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물을 매개로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데스노트>는 귀신이 갑자기 등장해 놀래키거나, 서늘한 음악이 공포분위기를 조장하거나 하는 등의 공포영화의 관습적인 장치를 별달리 활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신문기자 교코의 취재 과정을 꼼꼼하게 추적해나가는 드라마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드라마를 강화함으로써 스멀스멀 스며드는 공포를 창출하고 공포의 강도를 조금씩조금씩 높여간다는 점에서 <데스워터>는 깜짝쇼에 치중한 여느 공포영화와는 다른 색깔의 공포를 선사한다.
생명의 근원인 물이 오염되었을 경우를 상정하고 그 파급효과를 그린다는 점에서 <데스워터>는 공포의 강도가 여느 공포영화의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다. 일상적으로 매일매일 마시는 수돗물에 인간을 미치게 만드는 성분이 들어있다면, 이는 인류 멸망으로 이어질 만큼 대단히 충격적인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론을 보면, 그렇게 거창하게 해석할 필요는 없어진다. 신문기자 교코가 목숨을 걸고 알아낸 데스워터가 그저 민담 속에 나오는 저주받은 물일 뿐이기 때문이다. 공포영화를 만들기 위한 작위적인 설정일 뿐인 것이다. 이런 싱거운 설정만 제외한다면, <데스워터>는 즐길거리가 충분히 많은 공포영화다. 데스워터를 마시고 미쳐가는 인물들이 보여주는 환각, 물에 대한 강박증을 드러내는 교코의 행동양식 등 디테일을 꼼꼼하게 살린 장면들은 꽤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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