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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공유/영화에 해당되는 글 54건
- 2008.02.05 2월 2주차 개봉영화
- 2008.01.30 1월 마지막주 개봉영화
- 2007.12.26 2007년 마지막 개봉영화
- 2007.12.20 12월 3주차 개봉영화
- 2007.12.12 12월 2주차 개봉영화
- 2007.12.06 12월 첫주 개봉영화
- 2007.11.28 11월 마지막주 개봉영화
- 2007.11.22 11월3주차 개봉영화
- 2007.11.14 11월3주차 개봉영화
- 2007.11.07 11월2주차 개봉영화
글
2월 2주차 개봉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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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선물…귀휴> - 마음을 울리는 진심어린 부성애 |
<귀휴>에서 <마지막 선물>로 다시 <마지막 선물…귀휴>로 제목이 바뀐 이 영화는 부성애를 그린 신파극이다. <돈텔파파> <파송송 계란탁> <눈부신 날에> <날아라 허동구> <아들> <어린왕자> 등 최근 몇 년간 장르와 상관없이 한국영화가 관심을 가졌던 부자관계(혹은 유사 부자관계)가 <마지막 선물…귀휴>의 핵이다. 하지만 앞서 열거된 영화들과 <마지막 선물…귀휴>가 다른 점은 세 주인공의 관계 설정에 있다. 친구의 딸을 위해 간이식 수술에 임하는 무기수 이야기. 딸에게 아버지가 이식해줄 수 없는 간을 아버지의 고등학교 친구가 대신 이식해준다는 설정은 말도 안 되는 우연이 아니라 영화 초반에는 드러나지 않는 비밀스런 필연의 결과다.
정서적으로 <마지막 선물…귀휴>는 <미워도 다시 한번> <엄마 없는 하늘 아래> 등 전통적인 한국 신파영화의 맥을 잇는다. 한국적인 감수성에 호소하는 <마지막 선물…귀휴>는 비밀스런 과거를 통해 관객들이 감정을 이입시키게 한다. 바로 두 명의 아버지라는 설정이다. 낳은 정과 기른 정의 대립/공존은 <마지막 선물…귀휴>가 관객들에게 흥미와 긴장을 유발시킬 수 있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다. 죽어가는 딸을 살리기 위해 몸부림치는 두 남자의 애절한 부성애와 한 여자를 사이에 둔 질투 어린 사랑이 조합돼 고전적인 신파극을 만들어낸다. 희귀병, 간이식수술, 귀휴, 두 아버지 등 극단적인 설정들 탓에 이야기 사실적이거나 현실적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앞뒤가 맞지 않는 수준에 이르지는 않는다. 슬픈 감정을 끄집어내기 위해 수용 가능한 범위를 넘어서는 작위적 시도를 감행하지도 않는다.
영화적 완성도나 참신함을 떠나 <마지막 선물…귀휴>가 자극하는 것은, 영화라는 매체를 인식하기 전부터 내재돼 있는 가족에 대한 감정이다. <마지막 선물…귀휴>에는 영화를 구성하고 관객을 요리하는 손재주는 없지만 마음을 울리는 순박한 진심이 담겨 있다. 영화를 평가하는 머리가 아니라 영화를 소비하는 가슴으로 본다면, 눈물이 자연스레 흐르는 걸 감당할 도리는 없다.
<6년째 연애중> - 현실적이고 진지한 고민이 담긴 베테랑 연애담 |
<6년째 연애중>은 겉보기와 달리 트렌디한 로맨스 드라마가 아니다. 낯선 만남-관계의 발전-오해나 실수로 인한 다툼-화해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와도 거리가 아주 멀다. 일단 두 인물이 6년째 연애 중이라는 건 일상적인 로맨스의 초기 요소인 판타지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순진하고 희망적일 수 있는 여지를 남겨놓던 로맨스 드라마는 재영이 ‘부적절한 관계’를 맺기 시작하면서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임을 알려준다. 피가 섞이지 않은 남자와 여자의 관계가 환상을 떠나 현실에 입각했을 때 얼마나 흔들리기 쉬운지 <6년째 연애중>은 다진과 재영을 통해 이야기한다.
연애와 감정에 대한 두 주인공의 일상적인 싸움과 고민은 오랜 기간의 연애를 경험한 관객에게 공감을 사기 충분할 만큼 현실적이다. 6년째 연애 중인 것 같은 두 배우들의 꾸밈 없는 연기도 한몫 한다. 여기엔 무리한 해피엔딩도 없고 어두운 비관적 시선도 없다. 어쩌면 지리멸렬하고 지지부진한 일상만 있는지도 모른다.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의 에피소드들보다 훨씬 사실적인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이야기임에도 사건과 고민의 범위가 좁고 이야기 구성이 단조롭다는 점은 <6년째 연애중>이 지닌 장점을 단점으로도 보이게 만든다. 6년의 사건과 감정, 고민, 희망을 압축시키는 과정에서 중요한 무언가가 빠진 느낌이다.
<찰리 윌슨의 전쟁> - 괴짜 하원의원의 유쾌한 전쟁 |
<클로저> <졸업>의 마이크 니콜스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찰리 윌슨의 전쟁>은 소련의 침공으로 신음을 앓던 아프가니스탄을 구제해 준 실존인물 찰리 윌슨의 이야기를 그린다. 미국과 소련의 대립이 한창이던 1980년, 찰리 윌슨은 미국 국방분과위원회와 교섭을 벌이며 아프가니스탄의 무기지원을 비밀리에 추진한 인물이다. 하지만 마이크 니콜스 감독은 찰리 윌슨을 세계 평화를 위해 공헌한 위대한 영웅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영화 속 찰리 윌슨은 지아 대통령과의 공식석상에서 술을 마시려다 빈축을 사기도 하고, 라스베가스에서 발생한 마약 스캔들에 연루돼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르기도 한다. 술과 여자를 밝히는 한량 하원의원이 아프가니스탄 무기지원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은 관객들로 하여금 유쾌한 웃음을 자아내게 만든다. 마이크 니콜스 감독의 해학과 풍자는 단순히 찰리 윌슨의 인물 묘사에만 그치지 않는다. 무기지원은 전폭적이지만 학교, 병원 등의 공공시설에는 돈을 쓰려하지 않는 정치인들, 그리스 출신인 탓에 외교문제를 다루는 임원직을 번번히 거절당하는 CIA요원 거스트 등의 인물들을 그려내는 장면은 꽤나 통렬하다. <찰리 윌슨의 전쟁>은 특별한 사건, 사고 없이 각 등장인물들이 만들어내는 해프닝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고 있어 지루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 영화는 찰리 윌슨의 지원을 받은 아프가니스탄 반군이 훗날 9.11 테러를 일으킨 원흉이 됐다고 설명하지만 미국과 중동지역의 첨예한 관계를 묘사하지 않아 다소 갑작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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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1월 마지막주 개봉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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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듸오 데이즈> - 개봉박두! 조선 최초 라디오 연속극 |
야심차게 기획된 라디오 연속극은 첫 방송부터 삐걱거린다. 주인공을 차지하기 위한 마리와 명월의 자존심 싸움이 화근이다. 마리는 자기가 맡은 연속극 속 인물이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출연 분량이 많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6개월 만에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는 설정으로 바꿔버린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애드리브와 실수로 라디오 연속극은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 버리고, 단 한 번도 결말을 써본 적이 없는 노 작가는 어떻게 결말을 써야 할지 암담해 한다.
<라듸오 데이즈>와 가장 유사한 영화로는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를 떠올릴 수 있다. 라디오 드라마를 만들어가는 일군의 사람들이 등장하고 극중 성우들의 신경전과 막무가내 애드리브로 인해 정신없이 뒤바뀌는 극본이 웃음을 자아낸다.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보다 훨씬 옛날이 시간적 배경이지만, <라듸오 데이즈>는 1930년대 경성이라는 시공간적 제약에 구애되지 않고 적극적으로 현재를 패러디한다. 성우들의 애드리브로 뒤바뀐 극본을 수정하기 위해 로이드와 노 작가, 아이디어 뱅크인 사환 순덕(고아성)은 기억상실증과 이복남매 같은 한국식 드라마의 전형적인 장치들을 이용한다. 영화의 엔딩 장면에서 패러디하는 TV시리즈 <하늘이시여>도 그 중 하나다.
청취자들이 방송국 앞에서 연속극의 결말을 놓고 시위하는 장면에서 알 수 있듯 <라듸오 데이즈>는 쪽대본에 의해 하루하루 촬영하고 연장방송을 일삼는 한국 TV방송국의 현재를 코믹하게 풍자한다. 연속극 내용마저 간섭하는 일제의 횡포와 일제에 대항하는 일군의 독립운동가가 시대적 배경을 환기시키기는 하지만 정치적 의미를 만드는 단계에까지는 이르지 못한다. 영화가 관객에게 보여주려 하는 것은 단지 ‘조선 최초 라디오 방송이 만들어지는 현장’이기 때문이다. 라디오 드라마 제작이라는 단조로운 구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단점으로 인해 ‘에피소드들은 재미있고 유쾌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지루한 영화’처럼 보인다. 류승범과 오정세, 이종혁의 호연도 허약한 영화적 갈등 구조를 만회하기는 역부족이다.
<더 게임> - 스릴러와 드라마의 예기치 못한 충돌 |
일본 만화 [체인지]를 각색한 <더 게임>은 죽음을 앞둔 재벌 노인이 내기를 걸어 젊은 남자의 몸을 강탈한다는 내용을 그린 스릴러 드라마다. 뇌 이식 수술로 육체가 뒤바뀐 두 사람, <페이스오프>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육체를 바꾼 노인과 청년은 인간의 근원적인 탐욕과 욕망을 놓고 게임을 시작한다. 젊음을 탐하는 노인, 돈을 탐하는 청년. 승자는 일단 돈이라는 권력을 손에 쥐고 있는 강노식이다. 권력과 젊음을 손에 쥔 강노식은 더 많은 것을 손에 쥐기 위해 몸부림치고, 재화를 탐하다 모든 것을 잃게 된 민희도는 죽음을 눈앞에 둔 노인의 몸을 이끌고 육체를 되찾고자 강노식에게 버림받은 전처 혜린에게 도움을 청한다. 젊은 육체를 얻게 됐지만 더욱 외로운 처지에 놓인 강노식은 은아를 차지하겠다는 욕심에 사로잡히고, 도박꾼인 삼촌 민태석(손현주)을 겨우 믿게 만든 민희도는 혜린의 도움을 받아 강노식의 모든 것을 빼앗기 위해 계획을 꾸민다.
만화적인 상상력에서 출발한 <더 게임>은 젊은이의 신체를 강탈한 노인과 육체를 강탈당한 청년의 대결을 기본적인 틀로 삼고 있지만 두 캐릭터가 부딪히면서 만들어내는 갈등은 그리 크지 않다. 오히려 갑작스럽게 변한 환경을 대하는 두 인물들의 내면과 외적 상황들에 주목한다. 젊음을 얻은 노인은 쾌락을 좇으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혹 떼려다 혹을 붙이게 된 청년은 삼촌에게 만화 같은 일을 이해시키기 위해 힘든 시간을 보낸다. 전자는 악마의 드라마이고, 후자는 <빅> 같은 영화를 연상시키는 코믹 판타지다. 영화 속 변희봉의 행동거지와 말투를 재현하는 신하균과 어린이처럼 울상을 지으며 불쌍한 표정을 연신 반복하는 변희봉의 연기는 심각한 긴장과 만화적인 웃음을 동시에 만들어낸다. 두 인물을 맞바꿔 연기하는 1인 2역의 두 배우를 보는 것만으로도 <더 게임>은 무척 흥미롭다. <더 게임>은 팽팽한 긴장감을 주는 스릴러라기보다 스릴러와 코미디가 예기치 못한 충돌을 하는 상황극이라 하는 것이 맞는 표현일 것이다.
<슈퍼맨이었던 사나이> - 마음보다는 메시지, 감동보다는 교훈 |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휴먼 드라마 <말아톤>과 독립영화적 감수성을 풀어낸 <좋지아니한가>로 극단적인 장르 이동을 감행했던 정윤철 감독이 이 두 가지를 절충한 작품을 내놓았다. <슈퍼맨이었던 사나이>는 <말아톤>처럼 독특한 인물을 소재로 하지만 <좋지아니한가>처럼 독특한 방식으로 묘사하고 두 작품 사이를 오가는 방식으로 사건을 전개시킨다. 비일상적인 인물을 조명하고 특징을 반복적으로 끌어내는 방식은 <말아톤>과 유사하지만. 현실성에 토대를 둔 <말아톤>보다 ‘달의 뒷면’ 같은 특징에 집중하는 <좋지아니한가>에 가깝다. 친숙하지 않은 캐릭터를 짧은 시간 내에 친숙하게 만들기 위해 <슈퍼맨이었던 사나이>는 슈퍼맨의 이상한 행동들을 집중적으로 보여주다가 그가 이상하게 변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는 방향으로 초점을 이동시킨다. 하지만 <말아톤>의 감동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그렇다고 <좋지아니한가>처럼 감독의 독창적인 시도도 찾기 힘들다.
<슈퍼맨이었던 사나이>는 독립영화적 감수성을 <말아톤>의 화법으로 풀어내는 영화다. 하지만 <말아톤>처럼 삶의 중심으로 들어가지도 않고 <좋지아니한가>처럼 개성을 드러내지도 않는다. 영화의 가장 큰 약점은 슈퍼맨의 삶을 현실로 끌어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단순히 슈퍼맨의 아픈 과거를 보여준다거나 뜬금없이 역사적 상처를 개인화시켜 동기화시키는 것으로는 관객의 동감을 이끌어내기 힘들다. 슈퍼맨의 선행과 엉뚱한 행동도 캐릭터의 특징으로 읽히기보다는 영화의 원론적인 교훈적 메시지로 읽힌다. 잃어버린 개를 찾아준다거나 횡단보도 위의 할머니를 돕고 쓰레기 무단투기를 막는 행동들이 캐릭터의 입체감을 만들어내지도 스스로 살아있는 이야기로 만들어내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나열된 에피소드들이 축적돼 입체적인 캐릭터와 스토리를 만들어내지 못하니 결말부의 사건 역시 단지 나열된 에피소드 중 하나로만 보인다. 빈번한 등장으로 영화의 현실성을 떨어뜨리는 환상 장면은 사실적인 감정으로 팽창해야 할 클라이맥스마저 위조된 사건으로 느끼게 만든다.
작위적인 결말부의 화재 장면은 눈물을 뽑아낼 수 있을지는 몰라도 마음을 움직이기는 힘들 것이다. 감동은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고 마음은 삶의 입체감과 생기를 느낄 때 움직인다. <슈퍼맨이었던 사나이>에는 마음을 움직이려는 노력보다 이성을 자극하는 메시지로 가득하다. <슈퍼맨이었던 사나이>는 거창한 우화로 둔갑한 공익광고처럼 보이기도 한다. '착한 일을 하고 환경을 보호해 인류의 미래를 바꾸자!' <슈퍼맨이었던 사나이>에는 가르침과 교훈이 넘쳐나지만 감동은 찾아보기 힘들다.
<원스어폰어타임> - 웃어라, 가볍지만 유쾌한 팝콘영화니까 |
최근 들어 드라마와 영화의 소재로 주목받기 시작한 일제 치하의 경성은 근대 한국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여러 모로 흥미를 끈다. 긴 머리를 자르고 서양식 의복을 입기 시작한 시대, 서양의 음악과 음식이 들어온 시대, 다시 말해 문화의 급작스런 변화가 일어나던 시대가 극적 장치로 활용된다.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시대적 특성을 활용해 <원스어폰어타임>은 1940년대의 경성을 할리우드식 코믹 어드벤처 범죄물의 배경으로 삼는다. 해방 직전, 일제의 횡포가 극에 달하던 시기이지만 이 영화는 역사적 고민거리에 대해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다. ‘독립군’이 중요한 키워드로 등장하기는 하지만 역사 의식에 기반을 둔 것이라기보다는 단지 시공간적 배경에 부합하는 장르적 장치에 불과하다. 신분을 숨기고 일하는 미네르-바의 두 독립군이 <덤 앤 더머>의 주인공들처럼 희화화되는 것도 역사적 의식을 최소화시키고 장르적 장치만 강조했기 때문이다.
<원스어폰어타임>의 주인공은 표면적으로 봉구와 춘자이지만, 봉구와 춘자의 비중은 요리사와 사장이 차지하는 비중과 그다지 큰 차이가 없다. 코믹한 조연으로 배치된 요리사와 사장이 오히려 주인공처럼 느껴지는 장면도 많다. 캐릭터가 더 강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물리적으로 차지하는 비중도 주인공과 큰 차이가 없다. 봉구와 춘자의 캐릭터가 코믹한 조연으로 배치된 두 캐릭터보다 약하다는 건 <원스어폰어타임>의 커다란 약점이지만, 오히려 이러한 점이 오락영화로서의 재미를 배가시킨다. 할리우드 장르 영화의 매끈함을 따라가지는 못한다 해도 <원스어폰어타임>은 오락영화로서 최소한의 임무를 잊지 않는다. 작위적이지만 흥미를 유발하는 설정과 궁금증을 자극하는 이야기 전개, 재치 넘치는 유머와 코믹한 캐릭터가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며 조화를 이룬다. 가끔 넘치기도 하고 부족하기도 하지만 재미에 대한 기대를 크게 배반하는 정도는 아니다. 정용기 감독의 이전 영화들인 <가문의 영광> 시리즈 2, 3편의 과장되고 작위적인 면도 많이 정제되고 순화됐다. 흔히 말하는 ‘웰메이드’라 부르기도 힘들고 진지한 맛도 없지만, 가볍게 웃으며 볼 수 있는 오락영화로 <원스어폰어타임>은 크게 손색이 없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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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2007년 마지막 개봉영화
칼라스 포에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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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코 제피렐리 | |
화니 아르당, 제레미 아이언스 | |
9.50 (참여:12명) | |
6.33 (참여:3명) | |
더 시크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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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12월 3주차 개봉영화
황금나침반
크리스 웨이츠 | |||
다니엘 크레이그, 니콜 키드먼, 에바 그린 | |||
7.62 (참여:120명) | |||
6.50 (참여:2명) | |||
등록일 2007.12.17
<황금나침반 The Golden Compass>은 <반지의 제왕 The Lord of the Rings> 시리즈로 기록적인 흥행을 기록한 뉴라인 시네마가 내놓은 또 한 편의 판타지 삼부작이다. 전 세계적으로 1,400만 부 이상이 팔린 필립 풀먼의 베스트셀러 판타지 소설 [황금나침반] 삼부작 중 첫 번째 책을 영화로 옮겼다. <아메리칸 파이 American Pie> <어바웃 어 보이 About a Boy> 등으로 연출력을 인정 받은 크리스 웨이츠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컴퓨터 그래픽에만 8,000만 달러를 투입하고 전체 제작비에 2억 5,000만 달러를 쓸 정도로 대단한 규모를 자랑하지만, 아직까지 미국 내에선 여타 판타지 블록버스터보다 나은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다. <황금나침반>은 판타지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반지의 제왕>을 연상시키지만, <해리 포터> 시리즈가 <반지의 제왕>과 다르듯 <황금나침반> 역시 <반지의 제왕>과는 전혀 다른 작품이다. <반지의 제왕>의 반지처럼 황금나침반이 절대권력의 상징으로 비춰지고 있지만, <황금나침반>의 중심은 황금나침반이 아니라 미지의 물질 ‘더스트’다.
지구와 다른 우주에 놓인 또 하나의 지구, 이곳 사람들은 육신과 영혼이 분리되어 있어서 동물 모양으로 생긴 영혼의 존재인 데몬을 모두 하나씩 지니고 있다. 영국의 옥스포드 대학처럼 생긴 조던 대학에서 학자들에 의해 양육되고 있는 소녀 라라(다코타 블루 리처즈)는 조던 대학의 학장으로부터 마지막 남은 황금나침반을 받는다. 라라에게 진실을 알려주는 황금나침반의 비밀을 해독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학자이자 탐험가인 아스리엘 경(다니엘 크레이그)은 다른 차원의 세계로 갈 수 있게 해주는 더스트를 노스폴에서 발견하고 이 사실을 학계에 보고하지만 권력이 흔들릴 것을 염려하는 종교집단 매지스테리움은 아스리엘 경의 연구를 막으려 한다. 조던 대학에서 만난 콜터 부인(니콜 키드먼)의 비행선을 타고 어둠의 세력 ‘고블러’에 납치된 친구들을 찾아 노스폴로 떠나던 라라는 황금나침반을 탐내는 콜터 부인의 음모를 피해 탈출을 시도한다. 라라는 아이들을 납치한 어둠의 세력 고블러의 과학자들이 아이들과 데몬을 분리시키는 위험한 실험을 진행 중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콜터 부인이 고블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집시족과 하늘을 나는 헥스족, 조종사 리 스코스비, 스발바드 왕국에서 쫓겨난 아머 베어족 이올게 버니슨 등과 함께 라라는 황금나침반을 지켜내고 친구들을 구하기 위한 험난한 여정에 오른다. 필립 풀먼의 <황금나침반>은 간단히 설명하기 힘든 내용을 지니고 있다. 일단 개념부터 생소하다. 평행이론을 기반으로 한 또 하나의 우주, 육체와 영혼이 분리된 데몬, 다른 세계로 진입할 수 있게 해주는 더스트 등 낯선 개념들을 먼저 이해한 다음에는 갑옷을 입은 말하는 전투 곰 아머 베어, 매지스테리움, 인간과 데몬을 분리하는 인터시즌 실험, 마법의 능력을 지닌 헥스족 등 낯선 고유명사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원작소설을 읽은 독자가 아니라면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황금나침반>의 기초 개념을 이해하느라 정신 없이 자막을 읽어나갈 것이다. 삼부작 중 1편에 해당하는 <황금나침반>은 캐릭터 및 배경설명에 가까운 인상을 준다. 방대한 원작의 이야기를 2시간짜리 영화에 옮기기 힘들었는지 3부작 소설의 1권 중 마지막 세 챕터는 2편의 첫 부분으로 옮겨졌다. 스토리가 산만하고 전개가 너무 급작스런 느낌을 주는 것도 과도한 압축과 무관하지 않다. <반지의 제왕>이나 <나니아 연대기 The Chronicles of Narnia>보다 훨씬 무겁고 훨씬 복잡한 세계를 지닌 <황금나침반>을 영화화하는 데 있어서 2시간은 너무 짧은 시간일 것이다. 물리, 종교, 철학, 신학, 문학, 역사 등을 망라한 지식을 필요로 하는 원작의 세계를 그대로 옮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개념 설명과 캐릭터 및 배경 소개, 줄거리의 단순한 압축만으로 채워진 것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닌 것이다. 원작에 표현된 반기독교적 사상이 대부분 제거된 덕에 논란거리는 줄어들었고, 화려한 컴퓨터 그래픽으로 인해 판타지 영화로서의 화젯거리는 늘어났다. 압축과 생략의 균형에서 일부분 실패했다는 인상을 지우기는 힘들지만, <황금나침반>에 대한 평가는 나머지 두 편이 완성된 후 이야기하는 것이 정당할 듯하다. |
용의주도 미스 신
박용집 | |||
한예슬 | |||
6.77 (참여:84명) | |||
2.00 (참여:1명) | |||
등록일 2007.12.17
신미수(한예슬)는 바쁘다. 광고대행사 AE로도 할 일이 산더민데 간수해야 할 남자는 또 한둘이 아니다. 재벌 3세(권오중)와 고시생 윤철(김인권), ‘몸 좋은’ 연하남 현준(손호영)을 동시에 만나고 있는 미수. 이들 가운데 누구와 결혼을 해야 ‘밝은 미래’를 위한 정답이 될까 골머리를 썩고 있는 그녀 앞에 어느 날 또 한 명의 남자가 나타난다. 같은 아파트에 이사온 이웃집 남자 한동민(이종혁)은 그러나 미수의 연애 대상이 아니다. 그보다 둘은 원수에 더 가깝다. 이사 첫날 동민의 화분을 깬 것을 시작으로 미수와 동민은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대는 사이로 발전한다. 원수든 애인이든, 동시에 네 남자에게 둘러싸인 신미수. <용의주도 미스신>은 네 남자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저울질하는 신미수의 좌충우돌 연애담이다.
<용의주도 미스신>은 멀리 <싱글즈>와 < Mr. 로빈 꼬시기>, 가까이로는 <어깨너머의 연인>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다. 잘 나가는 커리어우먼의 어수룩한 연애를 다룬다는 점에서 < Mr. 로빈 꼬시기>를 빼 닮았다면 남자든, 일이든 ‘내 손으로’ 찾아나서는 20대 후반의 당찬 여성은 <싱글즈>의 ‘그녀들’을 떠올리게 한다. 거기다 남자를 진심 어린 사랑의 대상으로 생각하기보다 취향대로 고르는 ‘쇼핑 품목’처럼 여기는 건 <어깨너머의 연인>을 닮았다. 그런 면에서 <용의주도 미스신> 역시 20, 30대 커리어우먼의 연애와 결혼 방식을 트렌디하게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연애와 결혼, 일을 바라보는 이 시대 커리어우먼의 한 단면을 담고 있다고 해서 모든 영화가 의미 있는 것은 아니다. 네 남자 사이에서 계산기를 두드리며 머리를 굴리던 신미수가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를 향한 진심이란 것을 깨닫게 되는 영화의 이야기 줄기는 트렌디는커녕 진부하기 그지없는 낡은 이야기 방식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다. 거기다 일도, 외모로도 그 누구에게 빠지지 않는 신미수가 왜 남자의 돈과 명성에 그토록 집착하는지에 대해 영화는 어떤 설명도 해주지 않는다. 여러 남자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던 신미수가 별다른 계획도 없이 꿈을 좇아 훌쩍 비행기에 오르는 영화의 결말에 이르러선 <용의주도 미스신>이 20, 30대 커리어우먼의 심리를 얼마나 표면적으로 담고 있는지 쉽게 드러난다. 꿈을 향한 구체적인 계획도, 자신의 삶에 대한 뚜렷한 주체성도 없이 무작정 가방을 꾸리는 신미수의 모습은 이 시대 트렌디드라마들이 ‘꿈’에 대해 표현하는 가장 트렌디한, 그와 동시에 가장 안일한 방식 중 하나를 고스란히 따르고 있다. <용의주도 미스신>의 낡은 이야기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동분서주한 것은 신미수를 연기한 한예슬. 드라마 <환상의 커플> 속 ‘나상실’로 큰 인기를 모았던 한예슬은 스크린 데뷔작인 <용의주도 미스신>에서 도도하고 매력 넘치지만 어딘가 순진한 구석을 품고 있는 신미수를 능청스레 연기하며 영화에 웃음을 새긴다. 한예슬과 함께 호흡을 맞춘 권오중, 김인권, 이종혁 세 남자배우들 역시 각각의 캐릭터에 맞는 연기를 표현해냈다. 그룹 ‘GOD’ 출신으로 <용의주도 미스신>을 통해 연기에 도전한 손호영은 그러나 랩퍼라는 캐릭터에 맞게 노래를 할 뿐 연기자로서의 큰 변신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용의주도 미스신>은 <아라한- 장풍대작전>의 조감독을 맡았던 박용집 감독의 연출 데뷔작이다. |
<내사랑> - <러브 액츄얼리>보다는 <새드무비> |
대학생 커플 소현(이연희)과 지우(정일우)는 소주잔을 나누며 사랑을 키운 커플이다. 소현은 과 선배 지우를 처음 본 순간부터 그를 짝사랑하고 있다. 사랑의 상처로 휴학했던 지우가 복학하자 소현은 용기를 내서 다가간다. 소주 한 잔이면 취해버리는 소현이 지우와 계속 만나기 위해 동원한 방법은 술 잘 마시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하는 것. 처음에는 귀여운 후배로 소현을 만나던 지우 또한 조금씩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수정(임정은)과 정석(류승룡)은 광고대행사에서 함께 일하는 선후배 사이다. 광고기획자인 수정은 홀아비 카피라이터 정석에게 푹 빠져 있다. 죽은 아내를 잊지 못하는 정석은 수정의 끊임없는 애정 공세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는다. 수정과 함께 개기일식 이벤트를 기획하던 정석은 닫혀 있던 마음의 문을 천천히 열기로 마음 먹는다. 진만(엄태웅)은 6년 만에 서울 땅을 밟는다. 헤어진 연인과의 약속 때문이다. 전 세계를 돌며 프리허그 운동을 하던 진만은 예전에 자신이 쓰던 휴대전화 번호의 새 주인이 된 수정에게 부탁해 개기일식이 있는 하루 동안만 전화를 빌려달라고 말한다.
<내사랑>은 옴니버스식 다중 플롯 구조로 이뤄진 영화다. 서로 다른 이유로 만나고 있고, 서로 다른 이유로 헤어졌지만 네 커플(혹은 세 커플과 한 남자)은 애틋한 사랑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거부할 수 없는 짝사랑의 순수함과 떠나간 연인에 대한 맹목적인 애정이 교차되며 전개된다. 전화번호 때문에 진만과 수정이 우연히 만나게 되는 것처럼 서로 다른 에피소드의 이야기가 중첩되기도 하지만 대체로 네 가지 에피소드는 거의 서로를 간섭하지 않으며 독자적으로 진행된다. 다중 플롯 구조로 만들어진 대표적 작품들인 <내쉬빌 Nashville> <매그놀리아 Magnolia> <크래쉬 Crash> 등이 지니고 있는 상호간섭의 세계관과는 다른 차원의 영화인 것이다.
<내사랑>이 <러브 액츄얼리 Love Actually>의 영향을 받은 다중 에피소드 구성의 로맨스 영화라는 점은 부정하기 힘들다. 비슷한 컨셉으로 제작된 한국영화들과 비교하자면, <내사랑>은 <내 생애 가장 행복한 일주일>보다 <새드무비>에 가까운 성격을 갖고 있다. 에피소드들이 독립적이라는 점과 각 에피소드를 묘사하는 방식이 비슷해서다. 사랑도 기쁨도 슬픔도 모두 팬시상품처럼 예쁘게 포장돼 있고 로맨스의 공상적인 성격을 두드러지게 표현한다. 겨울이 시간적 배경은 아니지만, 포스터가 이야기하듯 크리스마스 시즌에 어울리는 영화다. 크리스마스의 축제 분위기가 만들어내는 비현실적인 에너지가 <내사랑>의 단점을 감싸며 팬시상품 같은 감수성을 장점으로 뒤바꾸기 때문이다. <내사랑>은 <연애소설> <청춘영화>를 만든 이한 감독의 세 번째 장편영화다.
내셔널 트레져: 비밀의 책
존 터틀타웁 | |||
니콜라스 케이지, 다이앤 크루거, 존 보이트 | |||
10.00 (참여:2명) | |||
5.00 (참여:2명) | |||
등록일 2007.12.17
미국에 엄청난 규모의 국부를 안겨준 지난 2004년 이후, 벤 게이츠(니콜라스 케이지)는 미국 전역을 돌며 각종 강연과 인터뷰로 바쁜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하지만 다 좋은 것만은 아니다. 벤은 아내인 애비게일(다이앤 크루거)과는 사사껀껀 말다툼으로 일관하다 현재 별거 중인 상태. 또한 벤의 절친한 동료인 라일리(저스틴 바사)는 엄청난 규모의 세금을 감당하지 못해 자동차까지 압류된 상태다. 이런 벤에게 위기가 닥친다. 에이브라함 링컨 대통령의 암살범인 존 윌커스 부스의 일기장에서 사라진 부분이 발견되고, 벤의 고조부가 엉겹결에 링컨 암살의 공모자라는 누명을 쓰게 된다. 순식간에 미국의 영웅 집안에서 매국노 집안으로 추락한 게이츠 가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벤은 전세계에 퍼져 있는 실마리를 찾아 프랑스와 영국, 미국 등지를 누빈다.
벤 게이츠가 돌아왔다. <내셔널 트레져: 비밀의 책 National Treasure: Book of Secrets >(이하 <내셔널 트레져 2>)은 지난 2004년 개봉되어 전세계에서 무려 3억5천만 달러가 넘는 초특급 흥행 수입을 기록한 <내셔널 트레져 National Treasure>의 3년만의 속편이다. 미국 동부 지역으로 한정되었던 1편에 비해 전세계로 그 무대를 확대하고 액션이 더 강해지는 등 스케일이 커지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내셔널 트레져 2>는 1편을 충실하게 재연한다. <내셔널 트레져>가 미국의 고도들인 필라델피아, 보스턴, 뉴욕 등을 무대로 미국 건국 신화에 대한 재기발랄한 비틀기를 통해 색다른 재미를 선사했다면, <내셔널 트레져 2>가 건드리는 부분은 미국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끈 에이브라함 링컨 암살기다. 프랑스에 남아있는 자유의 여신상, 영국 버킹검 궁과 백악관에 있는 두 개의 탁자 그리고 미국 대통령만이 볼 수 있다는 비밀의 책에서의 힌트를 통해 벤은 또 다시 엄청난 규모의 국부에 도달하게 된다. 동시에 게이츠 집안의 명예가 회복되는 것은 물론이다. 할리우드의 마이다스의 손인 제리 브룩하이머가 제작을 담당한 <내셔널 트레져 2>는 전편의 캐스트들과 스태프들이 그대로 참여하고 있다. <쿨 러닝 Cool Runnings> 이후 줄곧 디즈니에서 연출작을 내놓고 있는 존 터틀텁의 연출은 오락 영화로서는 그다지 흡잡을 것이 없게 <내셔널 트레져 2>를 뚝딱 만들어냈다. 그러나 아기자기한 직소 퍼즐을 푸는 것 같은 긴박감을 주었던 전작과는 달리 <내셔널 트레져 2>의 각본은 다소 설득력이 부족할 정도로 허점이 많다.(<내셔널 트레져 2>의 각본은 1편에 이어 테드 엘리어트와 테리 로시오 그리고 위벌리 남매가 담당했다) 1편이 차례 차례 수수께끼를 풀어야 최종 라운드까지 나아갈 수 있는 구성의 영화였다면, 2편은 이보다는 벤의 화끈한 액션에 조금 더 의존한다. 또한 벤 게이츠과 확실히 대결 구도를 이뤄야 할 악당 미치 윌킨슨의 애매한 캐릭터 설정도 <내셔널 트레져 2>의 약점이다. 그러나 니콜라스 케이지, 다이앤 크루거, 저스틴 바사 등 기존 삼총사의 파트너십은 '척하면 척' 일 정도로 훌륭하다. 1편에 비해 비중이 다소 줄어들기는 했지만, 다이앤 크루거의 애비게일과 저스틴 바사의 라일리는 벤의 훌륭한 조력자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존 보이트과 하비 카이틀 외에 영화에 새로 합류한 중견 배우들의 면면도 화려하기 이를데 없다. <더 퀸 The Queen>으로 그 해 전세계의 모든 영화제와 시상식의 여우주연상을 꿰찬 헬렌 미렌의 벤의 어머니인 에밀리 애플턴 역할로 출연하며, 에드 해리스가 악역 미치 윌킨슨 역할로 분해 <더 록 The Rock> 이후 11년 만에 니콜라스 케이지와 조우한다. |
같은 달을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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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카사쿠 켄타 | |||
쿠보즈카 요스케, 진관희, 쿠로키 메이사 | |||
7.58 (참여:52명) | |||
등록일 2007.12.17
외과 레지던트 테츠야(쿠보즈카 요스케)는 소꿉친구로 지내온 에미(쿠로키 메이사)와 결혼을 앞두고 있다. 심장병을 앓고 있는 에미를 직접 고쳐주려고 의사가 된 테츠야는 늘 에미의 곁을 지키며 사랑을 키워나간다. 그러던 어느 날, 테츠야는 자신의 오랜 친구이자 에미를 같이 좋아했던 돈(진관희)이 얼마 남지 않은 수감 생활을 끝마치지 못하고 탈옥했다는 소식을 경찰로부터 듣는다. 돈의 탈옥은 에미가 보낸 한 통의 편지 때문에 발생한 것. 테츠야는 돈에게 여전히 애틋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에미를 보며 묘한 질투심을 느낀다. 한편, 경찰의 눈을 피해 도주를 감행하던 돈은 힘겹게 에미의 집을 찾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돈은 테츠야의 방해로 에미의 얼굴조차 볼 수 없고, 테츠야는 에미의 어정쩡한 태도 때문에 갈수록 불안함을 느낀다.
츠치다 세기의 동명 만화를 영화화한 <같은 달을 보고 있다 Under The Same Moon>는 한 여자를 사랑하는 동갑내기 친구 테츠야와 돈의 이야기를 그린다. 테츠야와 돈은 어린 시절 자잘한 사건과 사고가 있을 때마다 서로를 지켜주던 절친한 친구 사이지만 심장병으로 시골에 요양을 온 에미를 만나면서부터 관계가 틀어진다. 영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달은 서로 다른 행동을 취하는 세 남녀의 모습 뒤에 빈번히 등장하며 이들의 엇갈린 사랑을 비교해 나간다. 뛰어난 그림 솜씨를 지닌 돈은 활활 타오르는 불을 화폭에 그려 넣으며 에미를 만나지 못하는 분노를 삭이고, 에미의 사랑을 의심하는 테츠야는 수술대 위에서 두근거리는 심장에 쉽게 칼을 대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같은 달을 보고 있다>는 부분적으로 보이는 무리한 설정들로 인해 정갈한 멜로 드라마로서의 매력을 상당수 잃어버렸다. 테츠야는 조직폭력배의 총에 맞아 사경을 헤매고 있는 돈을 아무렇지 않게 찾아내고, 돈은 가는 곳마다 지인을 만나 각종 역경을 헤쳐나가는 등 이야기 상의 허점이 영화의 설득력을 떨어뜨린다. <란도리 Laundry> <고 Go>의 쿠보즈카 요스케가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고민하는 테츠야를 무리 없이 소화해내고, <무간도 Infernal Affairs>의 소년 유견명으로 출연한 진관희가 순애보적인 사랑을 보이는 돈으로 출연한다. <같은 달은 보고 있다>의 연출은 <의리없는 전쟁 Battles without Honor and Humanity> <배틀 로얄 Battle Royale>로 유명한 후카사쿠 킨지의 아들인 후카사쿠 겐타가 맡았다. |
앨빈과 슈퍼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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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힐 | |||
제이슨 리, 로스 바그다사리언 주니어 | |||
8.80 (참여:15명) | |||
등록일 2007.12.17
LA의 유명 음반사 로비. 도시 외곽 숲 속의 나무에서 살던 다람쥐 앨빈과 사이먼, 테오도르는 살던 나무가 잘려나가는 바람에 얼떨결에 음반사 로비에 놓인 트리 위에서 살게 된다. 어느날, 세 마리의 다람쥐는 음반사 사장에게 된통 당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작곡가 데이브의 가방으로 뛰어든다. 덕분에 데이브는 얼떨결에 세 마리의 다람쥐와 동거 생활을 하게 된다. 함께 살면서 세 마리 다람쥐의 음악적 재능을 알게 된 데이브는 이들을 ‘앨빈과 슈퍼밴드’라는 이름의 힙합 가수로 데뷔시키는데, 이들은 곧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된다. 그런데 ‘앨빈과 슈퍼밴드’는 자신들의 인기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자 매니저 역할까지 도맡은 데이브의 간섭을 귀찮게 생각하기 시작한다.
<앨빈과 슈퍼밴드 Alvin and The Chipmunks>의 시작은 195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8년 작곡가이자 뮤지션인 로스 바그다서리언은 '앨빈과 칩멍크스 Alvin and The Chipmunks'라는 세 명의 다람쥐로 이루어진 밴드를 만들어 쇼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시작한다. '앨빈과 칩멍크스'는 쇼 프로그램을 통해 인기를 얻기 시작하고, 발표한 노래는 그래미상까지 수상하며 빅 히트를 기록해 대중적인 팝 아이콘으로 자리잡게 된다. 쇼 프로그램에서는 로스 바그다서리언이 데이브로 출연하고, '앨빈과 칩멍크스' 밴드의 세 다람쥐 앨빈과 사이먼, 테오도르는 인형으로 출연했다. 이 캐릭터가 인기를 끌면서 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앨빈쇼> 시리즈가 1961년 가을 편성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게 된다. <앨빈과 슈퍼밴드 Alvin and The Chipmunks>는 이 만화를 영화화한 것이다. <앨빈과 슈퍼밴드>는 귀여운 다람쥐 캐릭터와 통통 튀는 이야기 구조로 재미를 선사한다. 자신만만하고 겁 없는 리더 앨빈을 비롯, 머리 좋은 사이먼, 귀엽고 순수한 테오도르까지 눈길을 끄는 개성 넘치는 캐릭터와 기발한 이야기로 눈길을 끈다. 앨빈과 슈퍼밴드의 연주와 노래는 잔재미를 주기에 충분하다. 가족 관객을 겨냥한 듯 더빙판에서는 슈퍼주니어의 강인과 희철, 신동이 가각 다람쥐 앨빈, 사이먼, 테오도르의 목소리를 연기한다. <앨빈과 슈퍼밴드>는 겨울 방학 시즌 아이들을 위한 영화로는 훌륭한 선택이 될 듯하다. |
메리 크리스마스
크리스티앙 카리옹 | |||
다이앤 크루거, 벤노 퓨어만 | |||
9.28 (참여:269명) | |||
등록일 2007.12.17
1차 세계 대전 중 독일과 프랑스, 영국 세 나라가 접전을 벌이는 한 전장에서 벌어진 일이다. 독일군이 점령한 프랑스 북부에서 100미터도 채 떨어지지 않은 거리를 사이에 두고 대치 중인 영국군과 프랑스군, 독일군. 크리스마스 이브에 이들은 잠시 서로를 향해 겨누던 총을 내려놓고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만끽한다. 베를린 오페라 하우스 소속의 독일인 베테랑 테너 슈프링크(벤노 퓨어만)는 스코틀랜드의 팔머 신부 (게리 루리스)의 백파이프 반주에 맞춰 캐롤을 부른다. 사랑하는 연인을 찾아 위험한 전쟁터를 찾아온 소프라노 안나(다이안 크루거)도 연인과 호흡을 맞춰 캐롤을 불러 온기를 더한다. 음악에 취한 세 나라의 군인들은 임시 휴전을 맺고 크리스마스 이브를 만끽한다. 크리스마스 이브를 함께 보낸 세 국가의 군인들은 다음날부터 서로가 적군이라는 사실에 새삼 혼란을 느끼게 된다.
<메리 크리스마스 Joyeux Noel>은 이브 뷔페토의 저서 [플랑드르와 아르투아의 전쟁 1914-1918]에 ‘1914년 믿을 수 없는 크리스마스’라는 소제목으로 실린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작품이다. 영화는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던 군인들이 크리스마스 이브에 인간으로서 하나가 되는 모습을 감동적으로 재현해낸다. 전쟁이라는 극단적 상황 속에서도 인간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잃지 않은 군인들의 모습이 서정적인 음악과 어우러져 한 편의 시처럼 표현된다. 크리스티앙 카리옹 감독이 몇 년 동안 철저한 준비 끝에 만든 <메리 크리스마스>는 2006년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과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에 노미네이트되는 등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메리 크리스마스>는 독일, 프랑스, 영국, 세 나라가 대치한 상황을 그린 영화답게 스탭도 다국적으로 구성됐다. 2001년 <봄을 전하는 제비 Une Hirondelle A Fait Le Printemps, One Swallow Brought Spring>로 데뷔한 크리티앙 카리옹 감독은 프랑스 출신이며, 베를린 오페라 하우스의 테너였던 슈프링크와 그의 연인 안나로 출연한 벤노 퓨어만과 다이안 크루거는 독일 출신. 프랑스군의 오드베르 중위 역은 프랑스의 기욤 카네가, 백파이프를 멋들어지게 불어 깊은 인상을 남긴 팔머 신부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게리 루리스가 맡아 영화의 컨셉을 충실히 살려낸다. |
이토록 뜨거운 순간
에단 호크 | |||
마크 웨버, 제시 해리스, 로라 린니 | |||
8.28 (참여:18명) | |||
6.00 (참여:1명) | |||
등록일 2007.12.17
열네 살에 SF 판타지 <컴퓨터 우주탐험 Explorers>으로 데뷔해 <죽은 시인의 사회 Dead Poets Society> <얼라이브 Alive: The Miracle of the Andes> <비포 선라이즈 Before Sunrise>와 같은 영화들로 배우로서의 입지를 탄탄히 한 에단 호크는 그러나 배우 아닌 또 다른 꿈이 있었다. 그는 오래 전부터 작가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1996년 그는 꿈을 이루었다. 그가 태어난 뜨거운 도시 “‘텍사스’를 뜻하는 동시에 가장 뜨거운 감정 상태를 표현한” 제목의 책 [이토록 뜨거운 순간 The Hottest State]을 내놓은 것이다. 20대 에단 호크의 개인적 경험을 듬뿍 녹여 넣은 [이토록 뜨거운 순간]은 한 남녀의 뜨거운 사랑을 축으로 젊음의 열기와 혼란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마릴린 먼로, 제니스 조플린, 테네시 윌리엄스가 머물렀고 섹스 피스톨즈의 리더 시드 비셔스가 여자 친구인 낸시를 살해한 곳이기도 한 뉴욕의 전설적인 호텔, 첼시를 배경으로 한 디지털 영화 <첼시 호텔 Chelsea Walls>(2001)을 연출한 에단 호크는 다음 연출작으로 자신의 소설 데뷔작(이후 그는 또 다른 소설 [웬즈데이]를 내놓았다)을 선택했다.
텍사스 출신의 배우 지망생 윌리엄(마크 웨버)은 연기를 위해 삶의 터전을 뉴욕으로 옮긴다. 그리고 동네 바에서 가수 지망생 사라(카타리나 산디노 모레노)를 만나 한 눈에 사랑에 빠진다. 장난처럼 시작된 이들의 사랑은 윌리엄이 영화 촬영을 위해 떠난 멕시코에서 뜨겁게 타오른다. 윌리엄과 그를 따라 멕시코로 향한 사라는 일주일 간 호텔 방에 틀어박혀 사랑을 나눈다. 하지만 세상 모든 열기는 결국 식게 마련. 홀로 한 달간의 영화 촬영 일정을 끝내고 뉴욕으로 돌아온 윌리엄은 사라의 눈빛이 예전 같지 않음을 감지한다. 홀로 있을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며 윌리엄을 밀어내는 사라와 그런 사라를 놓아주고 싶지 않은 윌리엄. 뜨거운 순간은 잠시, 차디찬 냉기만이 남은 연인의 다툼은 그렇게 시작된다. <이토록 뜨거운 순간>은 스무 살 청춘 남녀의 진한 사랑을 통해 세상의 모든 ‘관계’에 대해 되묻는다. 다가가려 하면 할수록 멀어지는 사라 때문에 상처 입은 윌리엄은 어린 시절 자신을 떠난 아버지 빈스(에단 호크)를 찾아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그는 어머니 제시(로라 리니)도 만난다. 정서적 소통보다 육체적으로 더 끌렸던 예전 여자친구 사만다(미셸 윌리엄스)와도 다시 만날 시도를 한다. 여기에 늘상 삐걱거리기만 하는 사라와 그녀의 어머니가 또 다른 관계 축으로 등장한다. 열병 같은 사랑 이후 홀로 남겨진 윌리엄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일방적 열정으로 꾸려지는 것이 아님을, 꽉 조여 서로를 안은 포옹만큼 적당한 거리를 둔 발걸음 사이에서도 생겨나는 것임을 조용히 깨닫는다. <이토록 뜨거운 순간>은 스무 살 청년의 지독한 연애담, 이를 통한 지독한 성장통이다. 소설 속에서 프랑스 파리로 여행을 떠났던 윌리엄과 사라는 영화로 옮겨와 멕시코로 여행지를 바꿨다. 에단 호크는 “파리의 로맨틱함도 좋지만, 이미지 안에서 ‘열기’가 느껴지게 하기 위해” 촬영지를 멕시코로 최종 선택했다. 그렇게 태어난 멕시코의 풍광은 원색 이미지와 더불어 숨이 턱턱 막힐 만큼 더운 기운을 영화에 불어넣는다. 물론 <이토록 뜨거운 순간>은 멕시코의 풍광 이외에도 아름다운 영상들을 영화 곳곳에 쟁여두고 있다. 또한 노라 존스의 ‘Don’t Know Why’를 작곡한 제시 해리스가 만들어낸 음악 선율들은 때론 감미롭고 때론 격정적으로 영화를 뒤흔든다. <첼시 호텔>에 출연한 바 있는 마크 웨버가 또 다시 에단 호크와 호흡을 맞춰 윌리엄을 연기했고, 조슈아 마스턴 감독의 <기품 있는 마리아 Maria Full of Grace>에 출연한 콜럼비아 출신 배우 카타리나 산디노 모레노가 사라를 연기했다. 에단 호크는 윌리엄의 아버지 빈스로 등장한다. |
<택시 블루스> - 서울의 우울한 블루스 |
2004년 부산국제영화제 일주아트하우스작가지원 펀드로 만들어진 <택시 블루스>의 제작 방식은 약간 특이하다. <택시 블루스>는 카메라를 택시 안에 설치 한 뒤 승객의 동의를 구해 촬영하는 방식으로 제작됐지만, 승객이 촬영 허가를 내리지 않는 경우엔 배우들을 통해 이를 재연하고 있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의 사건과 사고를 카메라에 담지 않았다는 점에서 <택시 블루스>는 기존 다큐멘터리 문법에 다소 어긋나 있는 것이 사실. 그러나 최하동하 감독이 선택한 이 방법은 택시를 타는 서울 시민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최상의 선택으로 보여진다. 최하동하 감독이 택시 운전을 통해 경험한 세상은 결코 아름다운 곳이 아니다. 처제와 가진 부정을 최하동하 감독에게 자랑 삼아 늘어놓는 사람도 있고, 남편과 더 이상 못살겠다며 시어머니에게 울며 하소연하는 사람도 있다. <택시 블루스>는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경계를 오가며, 다큐멘터리 제작 방식만 고집했더라면 담아내지 못했을 장면을 가감 없이 그려낸다.
최하동하 감독은 <택시 블루스>를 촬영하기 위해 택시 운전사가 된 사람이 아니라, 택시 운전을 하다 영화를 기획하게 된 사람이다. <택시 블루스>에는 다양한 화각으로 찍은 승객들의 모습 이외에도 택시 기사로서의 울분과 고충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일반적인 택시 기사들은 하루 10만여 원의 사납금을 택시회사에게 건네주고 나면 생계조차 불가능한 실정. 최하동하 감독은 체력적으로 한계를 느끼면서도 초과근무를 이어나가고, 일이 끝난 후에도 택시처럼 작은 방안에서 잠을 청하며 힘겨운 하루를 마감한다. 장거리 고객이 많은 장소를 다른 택시기사에게 말해주면 안 된다는 최하동하 감독의 고백, 악덕 사주의 만행을 고발하기 위해 분신 자살을 감행하는 다른 택시 운전기사의 모습이 영화의 중간중간에 파고드는 것은 물론이다. 독립영화전용상영관인 인디스페이스에서 단관 개봉하는 <택시 블루스>는 올 겨울에 만날 수 있는 가장 슬픈 영화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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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주차 개봉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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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즉시공 시즌2> - 더욱 노골적인 풍기문란 |
대학생 은식의 좌충우돌 성생활기 <색즉시공>이 5년 만에 다시 찾아왔다. ‘시즌 2’라는 꼬리표를 단 이번 영화는 전국 400만의 관객을 동원하며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전작을 벤치마킹하듯 여배우들의 과감한 노출과 화장실 코미디로 전반을 구성하고 눈물 코드로 후반을 마무리하는 구성을 보인다. 전편과의 차이점이 있다면, 노출의 강도는 세어지고, 지저분했던 화장실 코미디는 다소 수그러들었다는 것. 또한 <여고괴담 세 번째 이야기: 여우계단> <썸>의 송지효가 임창정의 상대역으로 출연한다는 것이 <색즉시공 시즌2>의 가장 큰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섹스코미디를 표방하는 <색즉시공> 시리즈의 매력은 단순 명료하다. 성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한 대학생들의 모습으로 웃음을 유발하고, 노골적인 볼거리들로 관객의 숨겨진 욕망을 자극한다는 것. <색즉시공 시즌2>는 수영장과 해수욕장을 무대로 빈번한 노출신을 등장시키고, 새로운 남녀의 출연으로 위기를 맞는 은식-경아 커플, 성국-유미(유채영) 커플의 한바탕 소동으로 코믹한 상황을 만들어나간다.
<색즉시공 시즌2>의 주연배우는 분명 임창정과 송지효지만, 조연으로 등장하는 최성국과 신이 그리고 유채영이 ‘오버 연기’를 제대로 소화해내며 이야기의 재미를 더해간다. 특히 난폭한 언어를 구사하는 수영부 감독 유미 역의 유채영은 <색즉시공 시즌2>의 웃음제조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종격투기 동아리와 수영부가 함께 떠나는 합숙훈련 장면, 대학교과 술집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해프닝들, 후반부를 장식하는 이종격투기 장면은 은식과 경아의 애틋한 사랑이야기와 별개로 진행돼 아쉬움을 남긴다. 여성의 시선을 철저히 배제한 채 남성 위주의 성적 판타지로 이야기를 직조하고, 트랜스젠더 등 성적소수자를 코미디의 소재로 가볍게 다뤘다는 것은 <색즉시공 시즌2>가 모든 이의 공감대를 이끌어낼 만한 섹스코미디로서의 한계를 보여준다.
영화의 시작. 번화한 쇼핑몰 광장에서 대치 중인 두 남녀를 호기심 어린 스테디 캠이 훑는다. <싸움>이라는 제목에 어울리게 두 남녀의 육박전을 기대하게 할 무렵, 남자는 여자에게 갑작스러운 사랑 고백을 한다. 이들을 둘러싼 주변 사람들의 뜨거운 박수 갈채는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영화의 진정한 시작은 그 이후부터. 얼마 후 이혼을 택한 두 남녀의 관계를 살벌하기 짝이 없고, 결국 이들은 생사를 건 전쟁의 길로 접어든다. <찜> <하루> 그리고 감우성, 손예진 주연의 TV 드라마 <연애시대>의 한지승 감독이 연출한 <싸움>은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 주연의 <미스터 앤 미세스 스미스 Mr & Mrs. Smith> 혹은 더 거슬러 올라가면 마이클 더글라스와 캐서린 터너가 서로 죽이지 못해 안달하는 부부로 출연하는 <장미전쟁 The War of the Roses>을 떠올리게 한다. 위 두 영화처럼 한지승 감독은 <싸움>을 통해 남녀간의 싸움을 또 하나의 소통의 형태이자 사랑 표현의 방식으로 풀어낸다.
로맨틱 드라마에 일갈한 한지승 감독의 실력은 <싸움>에서도 여전하다. 설경구와 김태희라는 배우의 매력과 장점들에서 기초한, 실제 두 연인의 마음 속에 있을 법한 심리를 자유자재로 뽑아낸다. '하드보일드 액션코미디'라는 거창한 영화의 홍보 문구처럼 <싸움>에서 두 남녀가 벌이는 싸움은 다소 과하다 싶을 정도. 그러나 상대를 향한 반응이 이토록 과한 이유는 그만큼 상대에 대한 애정이 강하기 때문이다. 두 주인공을 더 이상 화합이 불가능한 상태까지 밀어 넣은 영화는 이후 둘의 감정 변화에 집중한다. 그러나 <싸움>은 지나치게 두 주인공의 에피소드에만 의존한다. 줄기차게 싸워대며 등을 돌린 두 주인공이 극 말미 화해하게 되는 과정과 결말은 뜬금없이 보일 정도다. 또한 극 중 등장하는 PPL은 극의 몰입에 방해가 될 정도로 과도, 과다하다.
설경구와 김태희의 연기 호흡은 나쁘지 않다. 상민 역의 설경구는 로맨틱 드라마 <사랑을 놓치다>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등과는 또 다른 생활인 연기를 편하게 보여준다. 영화 데뷔작 <중천>으로 몰매를 맞았던 김태희의 연기도 이번에는 그럭저럭 합격 점을 받을만하다. 문제는 둘 사이의 화학반응의 부재다. 설경구가 연기하는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은 듯한 능구렁이 상민과는 달리 김태희의 진아는 왠지 어색하고 부자연스럽다. 사랑과 결혼, 헤어짐과 이혼 그리고 그 후 폭풍을 연기하기에 김태희는 아직 시기적으로 이르다.
묵시록적인 종말론을 다루고 있는 리처드 매드슨의 소설 [나는 전설이다]가 세 번째로 영화화됐다. SF 공포소설 [나는 전설이다]는 조지 로메로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The Night of the Living Dead>나 <28일 후 28 Days Later…> 등의 좀비영화에 커다란 영향을 준 작품. 1964년 우발도 라고나 감독에 의해 만들어진 <지구 최후의 생존자 The Last Man on Earth>과 보리스 사갈 감독이 연출한 1971년작 <오메가 맨 The Omega Man>에 이어 <콘스탄틴 Constantine>의 프랜시스 로렌스가 매드슨의 전설적인 공포소설을 다시 영화로 옮겼다. 프랜시스 로렌스 감독은 원작소설이 지닌 암울하고 고독한 종말론의 기운과 홀로 남은 주인공의 복잡한 내면 세계를 SF 블록버스터의 외형과 공존시키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전의 두 편이 표현해내지 못한 폐허의 거리를 완벽하게 묘사한 <나는 전설이다>는 세계에서 가장 번잡한 도시라 할 수 있는 뉴욕을 마치 19세기의 황량한 서부처럼 바꿔놓았다. 혁신적인 디지털 기술로 원작의 시각적 상상력을 화면으로 옮겨 놓은 것이다. 문제는 리처드 매드슨이 이전 작품들에 대해 지적했던 것처럼 주인공이 느끼는 절대 고독을 얼마나 무게감 있게 표현하느냐다. 정식 개봉 전 가진 시사 결과, 평론가들은 절대적이라고 말할 정도는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호의적인 평가를 내렸다. 국내 관객들은 12월 12일부터 직접 확인할 수 있다.
<파리에서 Dan Paris>는 판이하게 다른 형제의 사랑 이야기를 경쾌한 톤으로 풀어놓는다. 한 여자와 진지하게 사랑하고 헤어진 후에는 그녀를 잊지 못해 괴로워하는 형 폴과 여자들을 쉽게 만나 가볍게 즐기고 쉽게 헤어지는 동생 폴의 사랑법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매사에 너무 진지한 형을 이해하지 못하는 동생 조나단의 이야기와 언제나 장난스럽고 가볍기만 한 동생을 이해하기 어려운 형 폴 사이의 간격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차차 좁혀져간다. 이처럼 <파리에서>는 성격이 판이하게 다른 두 사람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한집에서 시간을 보내며 서로에 대해 알게 되고 이해하게 되는 과정을 발랄하게 풀어낸다.
삶의 태도가 완전히 다른 두 형제의 이야기는 배우들의 열연으로 더욱 빛난다. 여러 국적의 학생들이 바르셀로나 대학의 기숙사에서 문화 충돌을 겪는 내용의 <스페니쉬 아파트먼트 The Spanish Apartment>와 2005년 베를린국제영화제 은곰상 수상작인 <내 심장이 건너뛴 박동 De battre mon coeur s'est arr?t?>에서 열연한 로맹 뒤리스는 우울한 표정으로 실연의 아픔에 고통받는 폴 역을 자연스럽게 소화해낸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몽상가들 The Dreamers>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였던 루이 가렐이 쉽게 연애하고 쉽게 헤어지는 가벼운 남자 조나단을 맡아 로맹 뒤리스와 대조적인 분위기를 연출해내며 영화를 경쾌하게 이끌어나간다. <파리에서>는 <사랑의 노래 Les Chansons d’Amour>로 올해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기도 한 크리스토프 오노레 감독이 2006년에 만든 영화로, 그 해 칸국제영화제 감독주간에 소개돼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퍼펙트 블루 Perfect Blue> <파프리카 Paprika>의 곤 사토시 감독이 연출을 맡은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 Tokyo Godfathers>(이하 ‘크리스마스’)은 버려진 아이의 부모를 찾아나선 세 노숙자의 여정을 담은 애니메이션이다. <크리스마스>는 일본 도쿄의 뒷골목을 배회하는 노숙자 3인방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지만, 키요코의 부모를 찾아가는 이들의 행보가 우연의 연속으로 진행돼 판타지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도박빚을 감당하지 못하고 가족을 떠난 긴은 우연히 사랑하는 자신의 딸인 키요코(<크리스마스>에는 총 3명의 키요코가 등장한다)를 만나고, 미유키는 갑작스럽게 발생한 조직폭력 암살사건에 휘말려 인질로 끌려간다. 또한, 하나가 도로에서 잡는 택시운전사는 언제나 같은 사람인데, 이는 단순한 우연의 일치로만 설명되기 힘들다. 설득력이 떨어지는 이야기 전개지만, 곤 사토시 감독은 크리스마스라는 들뜬 분위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일련의 사건들을 매끄럽게 봉합시키는 연출력을 과시한다. 긴과 하나 그리고 미유키가 가진 각각의 사연들이 ‘키요코 부모찾기 프로젝트’에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간 점도 <크리스마스>의 구성을 더욱 풍성하게 해주는 부분. 크리스마스의 기적이 일어나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현실에 있을 법한 판타지로 풀어내 그 감동을 더한다. <크리스마스>는 TV 애니메이션 <카우보이 비밥 Cowboy Bebop>의 노부모토 케이코가 극본을 맡았으며, 빼곡한 간판이 들어찬 현대 도쿄의 모습은 TV 애니메이션 <카드캡터 체리>를 제작한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매드하우스’가 만들었다.
<아르헨티나 할머니 Argentine Baba>는 국내에도 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는 일본 소설가 요시모토 바나나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 가출한 아버지를 찾아나선 미츠코가 괴짜 할머니 유리를 만나게 되면서 상처를 치유하고 삶의 여유를 되찾게 된다는 이야기를 그린다. 소설 [아르헨티나 할머니 Argentine Baba]의 삽화를 그렸던 요시토모 나라가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와 엔드 크레딧을 담당한 것에서 알 수 있듯, <아르헨티나 할머니>는 귀엽고 아기자기한 원작의 분위기를 스크린에 그대로 옮기는데 주력한다. 유리가 살고 있는 ‘아르헨티나 빌딩’은 허허벌판에 위치해 신비스런 느낌을 자아내며, 파스텔 톤으로 촬영된 영화의 색감은 원작이 가진 따뜻하고 평온한 느낌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영화는 주인공 미츠코가 치료원에서 일하며 짝사랑을 시작하는 등 소소한 설정의 차이만 있을 뿐, 상처를 치유해가는 미츠코의 일상을 그렸다는 점에서 원작과 그 궤를 같이한다.
하지만 간결하고 담담한 문체의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을 스크린에 그대로 옮기다 보니, 이야기가 기복 없이 전개돼 지루함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사실. 또한 과도하게 사용된 탱고 음악이나 예쁘장하게만 그려진 유리의 모습은 원작과 그 차이가 상당해 괴리감을 불러일으킨다. CF 감독 출신인 나가오 나오키 감독은 상처받은 사람들의 치유와 소통을 유려한 화면 속에 그려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삶과 죽음을 관조하는 원작의 담백한 태도까지는 담아내지 못해 아쉬움을 남긴다. 일본의 대표적인 국민배우로 손꼽히는 야쿠쇼 코지가 아내의 죽음으로 인해 두려움과 상실감을 동시에 느끼는 사토루 역을 톡톡히 소화해내며,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Crying Out Love, in the Center of the World>, <올웨이즈 3번가의 석양 Always - Sunset on Third Street>의 호리키타 마키가 아르헨티나 빌딩의 일원이 되어가는 미츠코를 자연스럽게 연기해낸다.
문제 삼형제의 인도 여행기 <다즐링 주식회사 The Darjeeling Limited>는 이 지점에서 또 다른 여행을 마련해두고 있다. 아버지의 유품이 든 가방 11개를 이고 지고 걷던 이들은 우연히 인도 소년들의 사고 현장을 목격하고 그곳에서 한 소년의 죽음과 만난다. 소년의 장례식을 위해 한 마을에 머물게 된 삼형제는 이어 어머니가 머물고 있는 인도 오지의 수도원을 방문하면서 조금씩 철이 들어간다. <다즐링 주식회사>는 몸은 어른이나 정신은 철부지인 삼형제의 ‘정서적 성장담’, 각자의 개성을 인정하지 못하던 형제의 ‘마음 허물기 과정’이다. 전작 <로얄 테넌바움 The Royal Tenenbaums>으로 ‘콩가루 가족’에 관한 유쾌한 기록을 남긴 웨스 앤더슨 감독은 “기차 여행을 하는 삼형제의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 <다즐링 주식회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각본가 로만 코폴라와 <맥스군 사랑에 빠지다 Rushmore>로 인연을 맺은 배우 제이슨 슈왈츠먼과 함께 인도 기차여행을 하며 구체적인 시나리오를 써내려갔다.
직접 경험한 여행담이 묻어 있는 탓에 <다즐링 주식회사>는 인도 열차여행에 관한 구체적인 묘사와 흥미로운 사건이 가득하다. 각기 다른 개성으로 빛나는 삼형제의 좌충우돌 또한 자잘한 웃음을 만들어내며 영화에 생기를 더한다. 하지만 다소 과장된 설정 역시 적지 않다. 삼형제가 철이 드는 계기가 되는 인도 소년의 죽음은 앞뒤 사건과 어떤 연관 고리도 찾을 수 없이 급작스럽고 아버지가 유품으로 남긴 가방을 비롯, 여러 영화적 상징들이 직설적으로 영화의 주제를 대변한다. 또한 기승전결의 또렷한 이야기 구조를 따르지 않는 이야기 줄기는 자칫 영화를 지루하게 만들 위험을 안고 있다.
웨스 앤더슨의 영화에 항상 얼굴을 내미는 ‘웨스 앤더슨 사단’은 <다즐링 주식회사>에도 여전하다. 웨스 앤더슨과 대학 때부터 인연을 쌓아온 오언 윌슨과 <맥스군 사랑에 빠지다> 이후 줄곧 친구로 지내온 제이슨 슈왈츠먼이 각각 맏형과 막내를 연기하고, <맥스군 사랑에 빠지다> <로얄 테넌바움>은 물론 <스티브 지소와의 해저 생활 The Life Aquatic with Steve Zissou>에서도 웨스 앤더슨과 함께 한 빌 머레이가 깜짝 등장했다. <로얄 테넌바움>과 <스티브 지소와의 해저 생활>의 안젤리카 휴스턴 역시 삼형제의 엄마로 잠시 얼굴을 비춘다. 반면 웨스 앤더슨이 “오래 전부터 언젠가 꼭 한번 영화 작업을 함께 하고 싶었다”는 애드리언 브로디는 <다즐링 주식회사>로 처음 이들과 호흡을 맞췄다. 또 <다즐링 주식회사>의 ‘영화 속 영화’ 혹은 ‘번외편’으로 볼 수 있는 단편 <호텔 슈발리에 Hotel Chevalier>에는 ‘잭’ 제이슨 슈왈츠먼과 나탈리 포트먼이 함께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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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첫주 개봉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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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 0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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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 포 텐> - 지적이고 위트 넘치는 영국산 로맨틱 코미디 |
데이비드 니콜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스타트 포 텐 Starter For 10>은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학문에 열중하고 사랑에 눈뜨는 대학생 시절을 낭만적으로 그려낸 로맨틱 코미디다. 감독인 톰 보그한과 원작자인 데이비드 니콜스는 실제 영화의 배경이 된 브리스톨 대학을 함께 다닌 대학 동기 사이. 자신들이 대학을 다닌 1980년대 영국 대학의 학구적인 분위기와 순수한 대학생들의 모습을 담아내기로 의기투합한 두 사람은 영국인들이 좋아하는 퀴즈쇼를 영화의 중심에 놓고 퀴즈쇼에 참가하려는 대학생들의 순수한 학문에의 열정과 그 과정에서 생겨나는 실수, 대학생다운 순수한 사랑 이야기를 영화에 고스란히 녹여낸다. 'In Between Days' 'Love Song' 등 더 큐어의 노래를 비롯한 1980년대 영국의 유명 팝송들은 당시의 분위기를 재현해내는데 단단히 한몫을 해낸다.
해외 언론들은 이 지적이고 세련된 영국산 로맨틱 코미디에 호평을 쏟아냈다. “<스타트 포 텐>은 훌륭한 시나리오와 세련된 연출,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 삼박자가 어우러진 웰 메이드 로맨틱 코미디다”라는 [시카고 트리뷴]의 평부터 “1980년대를 향한 유쾌하고 낭만적인 여행을 하는 듯한 느낌을 선사한다” “지나간 시대에 대한 이야기라는 낡은 선입견을 깰 만큼 발랄하고 지적이며 위트가 넘치는 따뜻한 이야기가 매력적이다”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가볍게 풀어내며 공감을 이끌어낸다"에 이르기까지 해외 언론들의 평가는 칭찬 일색이다.
배우들의 연기에 대해서도 호평이 주를 이뤘다. 주연을 맡은 세 배우의 고른 연기가 영화 보는 재미를 배가시킨다는 평가가 압도적이다. <나니아 연대기: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 The Chronicles of Narnia: The Lion, The Witch & The Wordrobe>과 <어톤먼트 Atonement> <라스트 킹 The Last King of Scotland> <비커밍 제인 Becoming Jane> 등에서 눈에 띄는 연기를 보여준 영국 배우 제임스 맥아보이가 지적인 욕구를 가진 노동계급 출신 브라이언을 자연스럽게 연기해내며 영화의 중심을 잡아준다. 영국의 유명 중견 배우 피터 홀의 딸이기도 한 레베카 홀이 행동주의자 레베카 역을 맡아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역시 영화배우인 부모를 둔 앨리스 이브는 사회자가 되고 싶어 퀴즈쇼 참가를 원하는 금발의 앨리스로 분해 개성 있는 연기를 보여준다.
<헤어스프레이> - 원작보다 귀엽고 깜찍하고 신나는 뮤지컬 영화 |
1960년대는 아직 인종차별이 심하던 시기. 코니 콜린스 쇼에서 흑인 출연자를 볼 수 있는 것도 한 달에 한 번뿐이다. 트레이시는 흑인 친구 시위드(일라이저 켈리)와 친해지면서 흑인들의 춤에 빠지기 시작한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자 코니 콜린스 출연자 중 한 명인 링크(잭 에프런)와 쇼 진행자 코니 콜린스(제임스 마스덴)의 관심을 끈 트레이시는 시위드의 도움으로 당당히 코니 콜린스 쇼에 입성한다. 하지만 미스 볼티모어 출신으로 방송국을 운영하고 있는 벨마(미셸 파이퍼)와 코니 콜린스 쇼에 출연 중인 딸 앰버(브리트니 스노우)는 트레이시를 쇼에서 쫓아내려 한다. 하지만 트레이시의 목표는 단순히 미스 헤어스프레이가 되는 것이 아니다. 흑인 출연자는 한 달에 한 번만 출연하게 돼 있는 인종차별적 규정을 없애는 것이 트레이시와 친구들의 새로운 목표다. 벨마와 앰버는 트레이시가 미스 헤어스프레이 선발대회에 참가하지 못하도록 음모를 꾸미고, 트레이시와 가족, 친구들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운다.
<헤어스프레이 Hairspray>는 존 워터스 감독의 1988년작 영화와 이를 토대로 제작된 브로드웨이 뮤지컬로 잘 알려진 작품이다. 뮤지컬보다는 극영화에 가까웠던 원작 영화와 다르게 뮤지컬의 특성을 강화했다는 점에서 2007년작 <헤어스프레이>는 브로드웨이 뮤지컬에 더 가깝다고 말할 수 있다. 극 중 배우들이 부르는 노래는 대부분 뮤지컬에서 가져왔다. 노래와 춤에 큰 비중을 둔 탓에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그랬던 것처럼 <헤어스프레이> 리메이크 버전에도 원작 영화에 등장하는 일부 캐릭터와 장면들이 나오지 않는다. 뮤지컬 각본을 썼던 토마스 미핸과 마크 오도넬의 초안은 <미세스 다웃파이어 Mrs. Doubtfire>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 The Thomas Crown Affair>의 레슬리 딕슨이 각색했고, 댄서 출신이자 뮤직비디오 감독 출신인 <웨딩 플래너 The Wedding Planner> <스텝 업 Step Up>의 아담 섕크먼이 안무와 연출을 맡았다.
원작 영화와 뮤지컬의 장점을 영리하게 결합한 <헤어스프레이>는 원작의 명성을 결코 훼손시키지 않는 출중한 완성도를 선보인다. 원작 영화보다 훨씬 순진하고 발랄하며 뮤지컬적인 분위기로 제작된 <헤어스프레이>의 가장 큰 매력은 주인공 트레이시가 발산하는 밝은 에너지다. 캐스팅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트레이시 역의 니키 브론스키는 발랄하고 사랑스러운 노래와 춤으로 시선을 사로잡으며 작품의 톤과 색채를 대변한다. 조연들의 캐스팅도 적확하다. 특히 전통적으로 남자배우가 연기하는 에드나 역의 존 트라볼타와 악역으로 분한 미셸 파이퍼는 영화의 양념으로서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모처럼 장기를 발휘할 수 있는 작품을 만난 아담 쉥크먼 감독의 연출력은 단연 발군이다. 적절한 과장의 한계 내에 위치한 캐릭터들과 선악의 분명한 대립, 비현실적인 극적 구성을 하나의 쇼로 변화시키는 춤과 노래, 현실과 판타지가 공존하는 복고풍 의상과 세트 등 아담 쉥크먼 감독은 <헤어스프레이>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을 완벽하게 조화시킨다. ‘바바리맨’으로 등장하는 존 워터스 감독이나 원작영화에서 니키 역을 맡았던 리키 레이크 등의 카메오 출연도 흥미롭다. 간단히 말해, <헤어스프레이>는 <물랑루즈 Moulin Rouge> <시카고 Chicago> <드림걸즈 Dreamgirls>와 함께 2000년 이후 할리우드에서 제작된 최고의 뮤지컬 영화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데스 센텐스> -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고 |
<쏘우 Saw>의 제임스 완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범죄소설가 브라이언 가필드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데스 센텐스 Death Sentence>는 갱단에게 몰살당한 가족을 위해 복수를 감행하는 한 가장의 이야기를 그린다. 평범한 중년 남성 닉은 자신의 아들을 죽인 범인을 직접 처단하지만 닉이 살해한 인물은 갱단 보스 빌리의 친동생으로, 이는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불러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닉이 아들과 아내를 차례로 잃고, 빌리가 친동생과 조직원을 떠나 보내면서 이들의 활극은 점차 강도를 더해간다. 총기 사용법 조차 알지 못했던 닉이 일개 갱단과 홀로 맞선다는 설정은 다소 황당해 보이지만, 가족을 잃은 분노와 복수에 초점을 맞춘 탓에 닉의 고군분투는 사뭇 비장하게 그려진다.
<데스 센텐스>는 복수를 소재로 액션과 드라마 사이를 아슬하게 오가는 작품이다. 주인공 닉이 갱단에게 쫓기며 5층짜리 주차 건물을 넘나드는 장면이나, 산탄총과 권총을 바꿔가며 갱단과 싸움을 벌이는 마지막 총격신은 액션영화 특유의 긴장감을 발산한다. 닉의 부성애를 강조하기 위해 영화의 초반부, 화목했던 가정의 모습을 그리는데 상당부분 러닝 타임을 할애한 것도 드라마를 놓치지 않으려는 제임스 완 감독의 계산으로 보여진다. 하지만 복수를 복수로 맞서려는 닉을 말리지 않는 담당 경찰관, 닉의 눈물 어린 호소로 혼수상태에서 깨어나는 둘째 아들, 자신의 아들을 죽여달라며 총기를 건네는 빌리의 아버지 등 현실적이지 못한 캐릭터가 즐비해 있어 날카롭게 세공된 복수극을 보는 느낌은 아니다. 배우들도 케빈 베이컨 만이 자신의 몫을 성실히 수행할 뿐, 조연 배우들은 상투적이고 과장된 연기가 많아 아쉬움을 남긴다.
<결혼하고도 싱글로 남는 법> - 로맨스와 가족애 모두를 |
현실에선 쉽게 찾아볼 수 없지만 로맨틱코미디의 소재로 가짜 연애만큼 흔한 것도 없을 터. <결혼하고도 싱글로 남는 법>은 흔한 소재를 가져오는 대신 이를 흔하지 않게 요리하기 위해 최선을 기울인다. 루이스의 시끌벅적한 가족들이 이런 ‘대안’의 한 방편으로 채택된 인물들. 루이스의 인생을 제멋대로 관리하는 여섯 여자 형제와 어머니는 루이스와 엠마의 연애를 흥미진진하게 엮어가는 힘이 되는 존재들이 된다. 여느 로맨틱코미디들이 남녀 주인공의 변화무쌍한 감정 변화에 초점을 두는 것과 달리 <결혼하고도 싱글로 남는 법>은 그렇게 주변 인물들과 남녀 주인공이 벌이는 좌충우돌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덕분에 <결혼하고도 싱글로 남는 법>은 로맨틱코미디인 동시에 가족 드라마의 색깔을 함께 띠기도 한다.
가족애에 관한 영화의 관심은 루이스의 가족만으로 그려지는 것은 아니다. 샬롯 갱스부르가 연기하는 엠마는 싱글이지만 아이를 입양하고 싶어하는 인물. 이를 통해 영화는 가족을 꾸리는 것을 지긋지긋하게 생각한 루이스가 아이와 가족이라는 존재에 서서히 마음을 여는 과정을 보여준다. 요란하지만 사랑스러운 루이스 가족과 가짜 연애에 푹 빠진 두 주인공의 좌충우돌이 신선한 웃음을 만들어내지만 <결혼하고도 싱글로 남는 법>은 여느 로맨틱코미디와 전혀 다를 바 없는 ‘교과서’ 같은 결론을 향해 달려간다. 가짜 연애가 진심으로 변하는 순간의 ‘진심’이 관객을 진심으로 울리지 못하는 것은 바로 영화의 이러한 전형적인 이야기 구조 탓이다.
사랑과 가족애 모두를 지닌 <결혼하고도 싱글로 남는 법>은 박스오피스에서 큰 힘을 발휘했다. 지난해 11월 자국 프랑스에서 개봉해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The Devil Wears Prada> <판의 미로-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Pan's Labyrinth>를 제치고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른 <결혼하고도 싱글로 남는 법>은 프랑스에서 3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다. 흥행 성적에는 배우들의 몫도 한 몫 차지했다. <21 그램 21 Grams> <수면의 과학 The Science of Sleep> <레밍 Lemming>의 샬롯 갱스부르와 <타인의 취향 Le Gout des Autres> <수면의 과학>에 출연한 배우이자 코미디 영화 <디디에 Didier>의 감독인 알랭 샤바 모두 프랑스가 자랑하는 배우들이다. 알랭 샤바는 <결혼하고도 싱글로 남는 법>의 각본에도 참여했다.
<상하이의 밤> - 상하이에선 사랑을 하세요 |
일본, 중국 합작의 <상하이의 밤>은 다수의 뮤직비디오와 광고 등을 연출한 중국의 장 이바이가 연출을 맡았다. 감독의 이력을 반영하듯 영화는 마치 한 편의 뮤직비디오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꽤 감각적인 영상을 자랑하며, 포강반점, 포동지구, 그랜드 하얏트 상하이, 코튼 클럽 등 상하이의 주요 관광 명소들이 아름답게 보여진다. 그러나 고속 촬영과 영화 내내 계속되는 사운드트랙이 극의 흐름을 끊을 정도로 남발되는 것은 옥에 티다. 중, 일 합작 영화 답게 남, 녀 주인공은 일본과 중국의 대표급 배우들이 출연하고 있다. 미즈시마 역은 <으랏차차 스모부 Sumo Do, Sumo Don't> <쌍생아 Gemini>의 모토키 마사히로가, 린시 역은 TV 드라마 <황제의 딸>과 <소림축구 Shaolin Soccer>로 우리에게도 낯익은 조미가 연기하며, <비밀의 화원 My Secret Cache> <워터보이즈 Waterboys>의 니시다 나오미와 다케나카 나오토의 모습도 볼 수 있다.
<더 펫> - 애완인이 되어 드립니다 |
<더 펫 The Pet>은 사람을 애완동물로 키운다는 자극적인 설정으로 눈길을 끄는 영화다. 국내 케이블방송이 제작한 오락 프로그램 <애완남 키우기-나는 펫>에서도 다루어진 소재지만, <더 펫>의 애완인 프로젝트는 한층 수위를 높였다. D. 스티븐슨 감독은 주인의 명령에 완벽하게 복종하는 진짜 애완동물 같은 애완인의 이야기를 펼쳐 놓는다. 영화 속 애완인은 주인의 명령이라면 알몸으로 눈밭을 뛰어다니는 일도 마다할 수 없고, 동물의 우리 같은 철창 속에 갇혀 자야 하는 인간 이하의 삶을 사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영화는 이런 자극적인 소재를 자극적으로 활용하는데 그치고 더 이상 진보된 생각은 보여주지 않는다.
6개월의 계약 기간 동안 애완인이 된 메리가 시간이 지날수록 동물처럼 변해가며 인간으로 되돌아가기를 원치 않는다는 설정은 자극을 넘어 억지스러운 수준이다. 필립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으며 메리가 변화했다는 대사가 연이어 반복될 뿐 인간임을 포기하는 메리의 심리 상태는 전혀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메리의 나체를 여과없이 보여주는 등 선정적인 화면 연출에 더 치중한다는 혐의를 지울 수가 없다. 게다가 인신매매가 횡행하는 나라들을 나열하는 결말은 뜬금없이 느껴질 정도다. 애완인이라는 도발적인 소재에서 출발한 <더 펫>은 사도마조히즘적인 쾌감을 얻으려는 필립과 메리의 이야기를 넘어서 인신매매라는 소재까지 끌어들이면서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방황하고 만다. <더 펫>은 무리한 주제의 확대와 어설픈 인물 묘사, 촘촘하지 못한 이야기 구성으로 소재가 갖고 있는 도발적이고 충격적인 효과를 반감시키며 어정쩡한 영화에 머물고 마는 우를 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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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11월 마지막주 개봉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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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3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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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크 더 리드> - 언제나 마음은 태양 |
<테이크 더 리드 Take the Lead>는 <시스터 액트 Sister Act> <위험한 아이들 Dangerous Minds> 혹은 더 거슬러 올라가 시드니 포이티에 주연의 <언제나 마음은 태양 To Sir, with Love>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 실존 인물인 피에르 둘레인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희망이라곤 전혀 없어 보이는 미국 뉴욕 빈민가의 한 고등학교. 마약 거래와 총질이 난무하는 이곳에 피에르는 볼룸 댄스를 아이들에게 소개한다. <테이크 더 리드>의 시작은 앞에 이야기한 모든 영화들의 그것과 같다. 당연하다. 힙합과 랩에 익숙한 요즘 아이들에게 탱고, 차차차, 룸바 같은 볼룸 댄스가 마음에 들리 만무다. 그러나 점차 이들은 요상한 볼룸 댄스의 매력에 점차 빠져들고, 결국 춤과 함께 더 중요한 사실을 깨닫기에 이른다. 삶에서 낙오되는 것이 아닌, 삶의 주도권을 잡아 가는 것. 다름 아닌 <테이크 더 리드>의 주제다. <맘보 킹 The Mambo Kings> <에비타 Evita> 등에서 멋진 춤실력을 보여준 바 있는 안토니오 반데라스는 <테이크 더 리드>에서 녹슬지 않은 그의 춤실력을 발휘한다. 뮤직비디오 감독 출신의 리즈 프리드랜더가 연출한 <테이크 더 리드>는 그의 이런 이력을 반영하듯 빠르고 역동적인 편집과 촬영이 인상적인 댄스 장면은 돋보인다. 그러나 외형적인 완성도에 비해 내실은 살짝 처지는 편. 내러티브나 극 전개, 캐릭터 설정 등은 다소 구태의연하게 비춰지기도 한다.
<우리동네> - 배우들의 연기가 돋보이는 스릴러 |
<우리동네>는 한 동네에 두 명의 연쇄 살인범이 살고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스릴러영화다. 그러나 <우리동네>는 범인이 누구인지 추적해나가는 일반적인 스릴러와는 달리 범인의 존재를 처음부터 알려준 후 왜 그가 연쇄 살인범이 될 수밖에 없었는가를 따져묻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때문에 영화는 충동적으로 집주인을 살해한 경주가 자신의 범죄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연쇄 살인범의 소행인 것처럼 위장하는 것이나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효이가 경주를 문자로 협박하고, 또 경주의 살인을 알고 있는 재신이 경주의 범죄 사실을 덮어주려 애쓰는 모습 등을 통해 범죄자와 형사의 심리를 설명하고, 범죄자들 사이, 그리고 범죄자와 형사 사이에서 생겨나는 심리적 긴장감을 살리는데 집중한다. 그러나 <우리동네>는 느린 진행과 지나치게 친절한 설명이 담긴 에피소드의 나열로 긴장감이 잘 살아나지 않는다. 또 범죄자들의 빈약한 범죄 동기가 심리 스릴러로서의 깊이감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느슨하고 설명적인 진행에도 불구하고 <우리동네>를 볼 만하게 만드는 것 배우들의 연기. 최근 TV드라마 <하얀 거탑>과 <커피 프린스 1호점>으로 인기가 급상승한 이선균은 우정을 소중하게 여기는 강력반 형사 재신을 인간적인 형사로 만들어낸다. TV드라마 <포도밭 그 사나이>와 뮤지컬 <헤드윅>의 스타 오만석이 충동적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인기 없는 추리 소설 작가 경주 역을 맡아 죄책감과 우정 사이에서 흔들리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연기해낸다. <천하장사 마돈나> <아들> 등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었던 류덕환이 잔인한 연쇄 살인범 효이를 무난하게 소화해낸다. 연출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을 졸업한 신예 정길영 감독이 맡았다.
<은하해방전선> - 수다와 산만, 소통의 정신없는 유희 |
<은하해방전선>은 영화 만들기에 대한 영화인 동시에 연애에 관한 성장영화다. 우디 앨런의 영화처럼 말이 많지만, 그보다는 훨씬 산만하고 정신없다.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럭비공처럼 황당한 유머와 장난이 출몰한다. 젊은 독립영화 감독다운 발랄함과 쾌활함이 영화 전체를 지배한다. 영재의 대사처럼 영화는 산만하게 진행되지만, 이야기를 이끄는 두 가지 축은 흐트러짐이 없다. 데뷔 영화를 준비하는 초보 감독의 좌충우돌 소동과 서툰 연애 속에서 성장하는 젊은이의 시행착오가 진지한 듯 코믹하게 이어진다. 실어증에 걸린 영재 대신 혁권은 영재가 만든 단편의 주제가 ‘소통’으로 시작해서 ‘소통’으로 끝난다고 말하지만, 정작 <은하해방전선>은 소통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가 아니다. 소통이란 단어로 장난을 치는 것이다. 복화술로 말하는 혁권, 실어증에 걸려 목소리 대신 악기 소리를 내는 영재, 영재와 은하의 정신 없는 말싸움 등 감독은 ‘소통’으로 놀이를 한다. <은하해방전선>이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바로 소통을 유희의 수단으로 삼는 부분이다. 하지만 산만한 장난은 유희에서 끝날 뿐 영화의 주제적인 측면으로 수렴되지 않는다. 영화 만들기와 연애라는 두 가지 축에서 벗어난 수다와 장난은 영화의 핵심으로 융합되지 못하고 산발적인 유희로 남는 데 그친다. 장난스럽고 산만한 것이 <은하해방전선>의 매력이자 핵심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러한 장점마저도 영화의 핵심이 꽉 채워져 있지 않는 듯한 공허함은 쉽게 지우지 못한다.
<히트맨> - 살인 게임, 영화로 태어나다 |
<히트맨 Hitman>은 2000년 등장해 지금껏 전세계 1천 만장의 판매고를 올린 동명 게임을 원작으로 한 작품. 킬러 ‘에이전트 47’을 내세워 냉철한 캐릭터 묘사와 반사회적인 성향, 강도 높은 폭력 묘사로 인기를 끈 게임이 영화로 옮아와 폭력과 액션을 적절히 버무린 액션영화로 태어난 것이다. 실제 게임 매니아인 자비에르 젠스 감독은 살인이 가득한 게임의 폭력적인 성향과 러시아 정부와 미국 CIA, 인터폴을 아우르는 음모론을 적절히 섞어낸다. <히트맨>의 가장 큰 매력은 쉼 없이 몰아치는 액션연기. No.47은 총과 칼을 적재적소에 사용할 줄 아는 동시에 맨손 무술도 유감없이 발휘한다. 암살의 갖은 ‘기술’이 만들어내는 극적 긴장감과 No.47의 강도 높은 액션 신들이 영화의 재미를 북돋운다. <히트맨>의 또 다른 재미는 우리에겐 익숙지 않은 러시아의 낯선 풍광을 즐길 수 있다는 것. 영화의 대부분 공간을 차지하는 상트페테르부르크와 터키 이스탄불, 불가리아의 이국적인 풍경들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액션 신들이 영화 속에 가득하다.
영화 <히트맨>과 게임의 가장 큰 차이를 꼽으라면 단연 No.47에 대한 묘사.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냉혈한으로 그려진 게임과 달리 영화 속 No.47은 인간적인 면모를 갖고 있다. 벨리코프의 정부이자 사건의 목격자로 지목된 여인 니카에게 No.47은 종종 연민과 사랑의 감정을 품는다. 킬러에게 인간적 면모를 심어주는 것은 물론 캐릭터를 더욱 다채롭게 만드는 데 큰 몫을 한다. 하지만 <히트맨> 속 No.47의 감정은 설득력이 다소 떨어진다. 니카에게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은 급작스럽고 별 연관 고리가 없으며, 이는 No.47을 바라보는 니카의 감정도 마찬가지다. 킬러와 목격자로 만나 사랑이 싹터가는 과정이 액션과 함께 영화의 가장 큰 축을 세우고 있지만 인물의 심리 묘사에 관객이 자연스레 감정 이입을 하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킬러 No.47을 연기하며 화려한 액션을 선보인 이는 <다이하드 4.0 Die Hard 4.0>에서 브루스 윌리스와 싸우는 테러리스트, 토마스 가브리엘을 연기한 배우 티모시 올리펀트. 액션 연기를 훌륭하게 소화하는 티모시 올리펀트는 첫 주연작 <히트맨>에서 충분한 매력을 뿜어낸다. 이는 니카를 연기한 신예 올가 쿠릴렌코도 마찬가지다. 옴니버스 영화 <사랑해, 파리 Paris, Je T’Aime>에서 엘리야 우드에게 실연을 당하는 뱀파이어 여인을 연기한 올가 쿠릴렌코는 니카를 매력적인 여인으로 만들어냈다. 또한 우리에게 드라마 <위기의 주부들 Desperate Housewives> 속 젠틀맨 ‘이안’으로 알려진 더그레이 스콧은 No.47을 쫓는 인터폴을 연기한다.
<어거스트 러쉬> - 음악은 사랑을 싣고
11년 전 뉴욕, 기타리스트 루이스(조나단 리스 마이어스)와 촉망받는 첼리스트 라일라(케리 러셀)은 서로 첫눈에 사랑에 빠져 함께 밤을 보낸다. 하지만 라일라 아버지의 반대로 이들은 헤어지고, 얼마 후 라일라는 임신 사실을 알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라일라는 아이를 출산하지만 라일라의 아버지는 그녀에게 아이가 유산되었다고 거짓말을 한다. 이 사건 이후 루이스와 라일라는 모두 음악에 대한 열정을 잃고, 기타와 첼로를 손에서 놓는다. 그로부터 11년 후, 루이스와 라일라의 아이인 에반(프레디 하이모어)은 부모의 재능을 물려받아 특별한 재능을 지닌 아이로 성장한다. 보육원에서 성장한 에반은 부모만이 자신의 음악을 알아볼 수 있으리라는 굳은 믿음을 갖고 무작정 뉴욕 행을 감행한다.
<찰리와 초콜렛 공장 Charlie and the Chocolate Factory>의 프레디 하이모어, <벨벳 골드마인 Velvet Goldmine>과 헨리 8세로 분한 드라마 [튜터스 The Tutors]로 최근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조나단 리스 마이어스, <미션 임파서블 3 Mission Impossible 3>의 케리 러셀 등 세 명의 주요 캐스트의 연기는 수준급이다. 특히 음악 신동 에반 역할의 프레디 하이모어는 멜로디와 반주, 퍼쿠션까지 기타 한 대로 연주하는 핑거스타일 연주법을 극 중 완벽하게 재현한다. 또한 테렌스 하워드, 로빈 윌리암스 등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중견 배우들과 더불어 드라마 <왕과 나>의 구혜선이 3초 정도 스크린에 모습을 비치는 것을 보는 것은 이채로운 경험이다.(<어거스트 러쉬>는 CJ엔터테인먼트(주)가 제작에 부분 투자했다) 배우들의 호연과는 달리 영화 자체는 밋밋하다. <뉴욕 탈출 Escape from New York>과 <후크 The Hook>의 닉 캐슬이 쓴 <어거스트 러쉬>의 시나리오는 우연과 비약으로 일관하는 안이한 시나리오다. 영화는 극 마지막 센트럴 파크에서 벌어지는 세 모자의 감격스러운 상봉 이외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감히 말하건데, <어거스트 러쉬>는 2007년 개봉된 모든 영화들을 통틀어 가장 나이브한 영화다. |
<마이클 클레이튼> - 인간적 영웅의 고뇌 |
법률회사와 거대 기업의 연관고리를 들여다보고, 다국적 기업의 음모를 파헤치는 영화 <마이클 클레이튼 Michael Clayton>은 <본 The Bourne> 시리즈를 통해 ‘제이슨 본’을 만들어낸 각본가 토니 길로이가 각본과 연출을 맡은 작품이다. 그리고 <본> 시리즈가 그러했던 것처럼 <마이클 클레이튼>은 거대한 음모와 맞닥뜨린 ‘인간’의 내면 풍경을 담아내는 데 주력한다. 시리즈 가운데 두 편인 <본 슈프리머시 The Bourne Supremacy>와 <본 얼티메이텀 The Bourne Ultimatum>을 연출한 폴 그린그래스 감독은 “본은 슈퍼히어로나 만화 속 영웅과 다르다. 그의 내면에는 선량한 본과 과거의 암살자 본이 공존한다”는 말로 제이슨 본의 매력을 설명했다. <마이클 클레이튼>에서 조지 클루니가 연기한 마이클 클레이튼 역시 제이슨 본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해결사’ 마이클 클레이튼은 U/노스의 음모를 파헤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만 그와 동시에 회사와 개인의 이익을 위해 적당히 세상과 타협할 줄 아는 인물이기도 하다. 정의만 올곧게 외치는 영웅이 아닌, 생활에 찌든 마이클 클레이튼이 마지막 양심을 지키기 위해 발버둥치는 과정은 그래서 여느 슈퍼히어로보다 더 큰 감흥을 전한다.
토니 길로이 감독은 영웅은 물론 악인에게도 인간적인 품새를 새기는 걸 잊지 않는다. 그는 U/노스의 법무팀장으로 아서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여인 카렌 크로더(틸다 스윈튼)를 악인으로 묘사하지만 그 뒤에 놓인 그녀의 인간적 고뇌 역시 놓치지 않는다. 성공한 여인으로서의 당당함보다 홀로 있을 때 불안에 떨고 죄책감에 시달리는 유약한 모습을 묘사하는 데 영화가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마이클 클레이튼>이 정의와 불의를 판단하기 이전에 그 앞에 선 인간 내면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데 더 큰 목적을 두고 있음을 시사한다. 영화가 풍성한 인간 내면을 담아낼 수 있었던 덴 뭐니뭐니해도 배우들의 몫이 가장 컸다. 조지 클루니는 삶의 피로를 가득 안고 사는 남자, 마이클 클레이튼의 미묘한 감정연기를 훌륭히 소화하고, 틸다 스윈튼 역시 “처음부터 카렌 크로더는 틸다 스윈튼”이라 생각했다는 토니 길로이 감독의 기대를 완벽히 충족시킨다. 중견 배우 톰 윌킨슨, 처음 <마이클 클레이튼>의 시나리오를 보고 연출 욕심을 낸 시드니 폴락 역시 빛나는 조연으로서 영화를 풍성하게 했다. 하지만 인물의 내면에 집중한 탓에 영화의 스릴러로서의 긴장감은 덜한 편이다. 토니 길로이 감독은 스릴러의 장르적 긴장감엔 아예 관심을 두지 않은 것처럼 영화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U/노스의 음모가 밝혀지고, 아서가 죽음을 맞는 것은 물론 마이클 클레이튼이 사건을 파헤쳐가는 과정 모두에 긴장과 박진감은 찾아볼 수 없다.
<열한번째 엄마> - 불행한 사람들의 사랑법 |
<열한번째 엄마>는 2005년 영화진흥위원회 시나리오 공모전에 당선된 동명의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영화는 엄마를 열한 번이나 갈아치우는 불행한 삶을 사는 소년 재수와 사랑할 줄도 사랑받을 줄도 몰랐던 한 여자 사이에 생겨나는 교감을 잔잔하게 펼쳐놓으며 관객의 감정선을 자극한다. 먹고 자는 단조로운 일상을 살며 재수가 숨겨놓은 식권을 훔쳐내 순대와 떡볶이를 사다 먹는 철딱서니 없는 여자와 동사무소에서 주는 지원금을 모아 김밥을 사다먹을 만큼 억척스런 재수 사이에서 펼쳐지는 사소한 에피소드들이 영화를 진행시킨다. <열한번째 엄마>는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의 척박한 삶을 현미경으로 보듯 세밀하게 그려내 감동을 이끌어낸다. 그러나 <열한번째 엄마>는 꼼꼼한 디테일 묘사에 비해 이야기의 연결은 논리적이지 못한 편이다.
<서프라이즈>와 <거칠마루>를 연출한 김진성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열한번째 엄마>는 톱스타 김혜수가 자발적으로 참여했다는 점에서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김혜수는 인생의 밑바닥까지 추락한 여자 역을 자연스럽게 연기해내며 극의 중심을 잡아준다. 걸핏하면 아들을 두들겨 패는 나쁜 아빠 역의 류승룡도 강렬한 연기로 강한 인상을 남긴다. 특히 옆집 백수 총각 백중을 연기한 황정민은 짧은 출연 분량에도 불구하고 개성 있는 연기로 강한 인상을 남긴다. 억척엄마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 중견배우 김지영은 맛깔나는 연기로 영화의 긴장된 분위기를 이완시키는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안경> - 사건보단 사색을 |
<안경 Megane>은 지난 여름 국내에서 개봉해 관객의 사랑을 얻은 영화 <카모메 식당 Kamome Diner>을 연출한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신작 영화. 핀란드 극북의 풍광을 담아낸 <카모메 식당>과 달리 <안경>은 햇살 따스한 바닷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안경>과 <카모메 식당>은 닮은 구석이 많다. <카모메 식당>이 핀란드로 여행 온 두 명의 일본 여성과 그곳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한 여인이 만나 벌이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처럼 <안경> 역시 바닷가 마을에 살고 있는 이와 그곳을 찾아온 낯선 이의 만남에서 이야기를 끌어간다. 하지만 낯선 이들이 만난다고 해서 특별한 ‘사건’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같이 모여 밥을 먹고, 길을 걷고, 바닷가에 앉아 조용히 바다를 바라본다. 영화 속 타에코가 근처에 관광지나 볼거리가 없냐고 묻자 마을 사람 모두가 고개를 갸웃하며 이곳은 볼거리보단 "사색하기 좋은 곳"이란 대답을 하는 것처럼 영화는 대부분의 러닝타임을 ‘사색하게 좋게’ 담아낸다. 사건보다 그저 풍경을 비추는 쪽을, 대사보다 침묵을 선택한 것이다.
별다른 사건도, 특별한 대사도 없지만 <안경>은 깊은 울림을 남긴다. 휴대폰이 터지지 않는 곳을 찾아 이곳에 왔다는 타에코의 조용한 여행에 관객 역시 동참할 수 있는 까닭이다. 러닝 타임 내내 관객은 세상의 어지러운 흐름을 잊고 한적한 사색의 재미를 경험할 수 있다. 덧붙여 밥과 빙수를 나눠 먹으며 바닷가에 모여 함께 체조를 하며 웃는 이들의 얼굴을 보다 보면 훈훈한 인간미마저 전해진다. 사건 대신 사색을 선택해 이야기를 꾸리는 <안경>을 풍요롭게 한 건 역시 배우들의 힘. <요시노 이발관 Yoshino’s Barber Shop> <카모메 식당>을 비롯해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전작 네 편에 얼굴을 비친 모타이 마사코, <카모메 식당>의 식당 주인에서 민박집 손님이 된 고바야시 사토미의 안정적인 연기에 더해 미츠이시 켄, 이치카와 미카코, 카세 료 등의 조연들이 연기가 반짝인다. 영화 내내 감상할 수 있는 한적한 시골 바다풍경은 덤으로 얻을 수 있는 재미다.
<스쿨아웃> - 파리냐 베니돔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
<스쿨아웃 Fin de curso>은 졸업여행지 선정을 놓고 대결을 펼치는 포르투갈 학생들의 이야기를 다룬 섹스코미디다. 하지만 영화는 포르투갈 학생이 아닌 스페인 전학생 하이메를 중심으로, 파리와 베니돔으로 나뉜 학생들의 모습을 균형 있게 그려 나간다. 파리를 가고 싶어하는 이들은 클럽에서 술값으로 수십 유로를 써도 지장이 없는 중산층이며, 베니돔을 선호하는 이들은 학교 화단에 마리화나를 키워 돈을 벌 궁리를 하는 하층민이다. 서로 다른 이해관계 때문에 졸업 여행지가 둘로 나뉘었지만, 이들 모두 청소년 시절의 뜨거운 혈기와 성적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 파리를 지지하는 여학생 마르타(아이다 폴치)와 곤잘로의 일행인 노아(요하나 코보) 사이에서 고민하는 주인공 하이메의 모습을 보는 것이 이 영화의 핵심. 토사물을 내뱉고, 다람쥐가 정액을 핥는 등 강도 센 화장실 유머가 빈번히 등장하지만 <스쿨아웃>은 영화의 초반부 복선으로 깔아 두었던 각각의 설정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코믹한 상황을 이어나간다. 특히 하이메가 장의사 아들이라는 점은 친구로부터 따돌림 당하는 이유도 되지만, 여행지 선정 문제를 해결하는 결정적인 부분으로 작용된다는 점은 인상깊다. 스페인의 젊은 감독 미구엘 마티는 화면 분할, 콜라주 기법 등을 사용해 사춘기를 통과하는 포르투갈 학생들의 모습을 감각적으로 풀어놓는다.
<차밍스쿨 & 볼룸댄스> - 리듬 속에 상처를 싣고 |
<차밍스쿨 & 볼룸댄스 Marilyn Hotchkiss Ballroom Dancing & Charm School>는 영화제목만 보면 댄스영화로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영화는 주인공 프랭크가 자살한 아내를 잊어가는 과정을 그린 극복기에 가깝다. 영화의 주 무대인 댄스학원에는 현란한 춤사위가 펼쳐지지 않는다. 매주 목요일마다 만남을 갖는 댄스학원 수강생들은 느린 호흡의 왈츠와 차차차를 춰가며 상대방과 호흡을 맞추고,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는다. 프랭크 역시 마찬가지다. 미망인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죽은 아내들의 클럽’에서도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했던 프랭크는 댄스학원에 다니면서 옷장에 보관돼 있던 아내의 옷을 치우고, 유골을 강가에 버리기 시작한다. 춤을 잘 추기 위해선 일정한 규칙을 숙지해야 하고, 아내를 잊기 위해선 무엇이 선행되어야 하는 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프랭크는 볼룸댄스 수강생인 메레디스를 만나면서 다른 사람의 고통에도 관심을 갖게 된다.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다소 무거운 이야기는 유년기 스티브와 리사의 풋풋한 첫사랑이 중간중간에 삽입되며 활기를 되찾는다. 어머니의 손에 반강제적으로 끌려와 춤을 추게 된 스티브는 리사를 만나면서 조금씩 사랑에 눈을 떠간다. 리사에게 춤을 권하는 어린 스티브의 모습과 메레디스에게 춤을 권하는 프랭크의 모습이 교차되는 장면은 <차밍스쿨 & 볼룸댄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분 중 하나다. <차밍스쿨 & 볼룸댄스>는 배우의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구급차에서 펼쳐지는 로버트 칼라일과 존 굿맨의 연기대결도 볼만하지만, <브레이브 원 The Brave One>의 메리 스틴버겐 역시 어머니의 명성을 벗어 던지고 자신만의 볼룸댄스 학원을 만들어가는 원장 마리안을 훌륭히 소화해낸다.
<메모리즈> - 세 명의 감독, 세 나라의 기억 |
우선, 하룬 파로키 감독의 <베스터보르크 수용소 Respite>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네덜란드에 위치한 유대인 수용소 베스터보르크의 모습을 담은 무성 영화다. 베스터보르크의 수감자인 브레스라우어가 촬영한 필름을 바탕으로 제작된 <베스터보르크 수용소>는 일반적인 유대인 소재의 영화와 다르게 행복한 수감생활을 보내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채워져 있다. 재소자들은 수용소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생활할 뿐, 축구를 하고, 춤을 배우고, 신문을 읽고 있다. 하룬 파로키 감독은 이 영상들이 베스터보르크 사령관인 겜메커의 지시에 의해 만들어진 영상임을 강조하고 수감자들의 얼굴 이면에 드려진 씁쓸한 미소를 포착해 나간다.
페드로 코스타 감독의 <토끼 사냥꾼들 The Rabbit Hunters>는 포르투갈 리스본의 판자촌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소외층을 주인공으로 한다. 직장을 잃은 후 아내에게 버림받은 이 사람들은 숲 속을 누비며 토끼든, 비둘기든 간에 가리지 않고 사냥하며 끼니를 해결한다. 파스텔톤의 리스본 시내와 무채색의 판자촌 사람들이 묘한 대조를 이루는 <토끼 사냥꾼들>은 <뼈 Ossos> <행진하는 청춘 Juventude Em Marcha> 등 힘없고 쓸쓸한 사람들에 주목하는 페드로 코스타 감독 작품의 연장선을 이어간다.
유진 그린 감독은 이메일로 사랑을 싹 틔우는 두 남녀의 이야기를 그린 <편지 Correspondences>를 내놓았다. 열일곱 살의 청년 브리질은 클럽에서 우연히 만난 블랑쉬에게 호감을 갖게 된다. 브리질과 블랑쉬는 이메일을 주고 받으며 서로에 대해 차츰 알아가지만, 이들의 만남은 철저히 온라인에 한정돼 있다. 브리질은 첫 인상만으로 블랑쉬를 사랑하게 되며, 블랑쉬는 자신을 사랑했던 한 남자의 자살을 잊지 못하고 브리질을 밀어낸다. 나레이션으로 처리되는 두 남녀의 편지 내용이 영화의 주를 이루고 있어 자칫 이야기의 흐름을 놓칠 수도 있지만, 기억이 사랑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따져본다면 쉽게 지나칠 수 없는 작품이다.
<강을 건너는 사람들> - 한국과 일본, 희망의 미래를 실천하는 사람들 |
김덕철 감독이 네 명의 주인공을 선정했던 기준은 ‘한일 관계를 몸으로 겪은 사람, 두 나라 관계의 변화를 갈망하며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는 사람, 나아가 한국과 일본의 공존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일본군수공장에 강제 징용된 후 목숨을 건 파업에 참여했던 김경석 옹은 태평양전쟁 한국인 희생자 유가족 회장 등을 지내며 한국과 일본간의 과거사를 청산하기 위해 평생을 바쳤다. 일본인 고교생 다카키 쿠미코는 2000년 여름 자매도시 부천을 방문한 후 처음으로 일본의 잘못된 과거사를 알게 되고 이후 부천의 학생들과 꾸준히 교류하며 우정을 쌓는다. 한국과 일본의 역사에 대해 다시 생각하며 화해를 꿈꾸는 다카키 쿠미코의 의지는 반전운동으로 이어진다. 한때 재일한국인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자살까지 시도했던 송부자 씨는 일본에서 1인극을 계속하며 한국인과 일본인에게 한일간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를 건넨다. 또한 올바른 역사를 알리고자 고려박물관 건립에 앞장서며 화해의 새 시대를 꿈꾼다. 마틴 루터 킹 목사를 존경하는 세키타 히로오 목사는 일본 내 재외국인들의 인권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재일한국인이 밀집해 있는 지역에서 바자회를 열거나 김경석 옹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는 것 하나 하나가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길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강을 건너는 사람들>은 한국과 일본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옳지 않은 것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기보다 보다 나은 미래에 대한 고민을 담으려 노력한다. 2시간 22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의 다큐멘터리가 관객에게 호소하는 가장 큰 힘은 변화의 사실성을 그대로 담아낸 7년의 시간이다. 태평양전쟁으로 인해 야스쿠니 신사에 묻힌 한국인의 유해를 고국으로 옮기기 위해 노력한 김경석 옹은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하고 사망하고, 고려박물관 건립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던 송부자 씨는 마침내 감격의 눈물을 흘린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병렬 구성으로 네 명의 인물을 좇는 김덕철 감독은 내레이션이나 설명적인 자막을 최대한 배제함으로써 관객이 객관적인 위치에서 인물들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돕는다. 각 인물들의 변화를 사실적으로 포착하기 위해 압축의 수위를 낮췄기 때문에 극적인 느낌이 크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다소 지루하게 느껴지는 사건들을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어렵지 않게 감독이 담고자 하는 진심에 도달하게 된다. 한국과 일본은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공존해야 하는가? <강을 건너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답은 멀지 않은 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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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3주차 개봉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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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2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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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금고연쇄습격사건> - 모두, 은행 털러 갑니다 |
<마을금고연쇄습격사건>은 같은 날 같은 은행을 털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소동극이다. 초보 은행강도, 전문 은행강도, 비리 경찰관이 만나 엎치락뒤치락하는 모습이 이 영화의 핵심이다. 마을금고에서 만나게 된 세 일행이 각자의 이해관계에 맞춰 태도를 바꿔가는 모습은 흥미진진하다. 배기로는 아픈 딸의 병원비를 마련해 주겠다는 구 반장의 거래를 받아들이고, 경찰에 포위돼 마을금고를 탈출할 방법이 요원하던 만수는 배기로와 손을 잡고 탈출을 감행한다. 마을금고 밖에서 은행강도 사건을 지휘하는 경찰서장 역시 회유책과 무력 진압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얼마 남지 않은 정년퇴임을 무사히 끝내기만을 바란다.
하지만 영화는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딸을 향한 배기로의 부성애가 지나치게 강조돼 소동극으로서의 초점이 흐려진다. 딸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배기로의 추억 역시 중간중간 삽입되지만, 좌충우돌한 은행강도 사건과 자연스럽게 어울리지 못한다. 웃음과 감동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했던 <마을금고연쇄습격사건>은 러닝타임이 흐를수록 이야기가 어두워지며 신파로 흐르는 우를 범하고 만다. 이문식, 백윤식, 박효준 등 주연배우들의 연기호흡은 매끄럽다. <전설의 고향> <라디오 스타>의 한여운은 은행강도에게 삿대질을 할 정도로 당찬 여성인 미쓰리로 등장해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세븐데이즈> - 납치 스릴러와 법정 드라마의 행복한 만남 |
<세븐데이즈>는 속도에 관한 한 올해 개봉된 어떤 한국영화에도 뒤쳐지지 않는 작품이다. 지연이 딸을 잃게 되기까지 10분이 채 지나지 않는다. 관객은 지연의 일상생활을 들여다볼 기회도 없이 납치사건에 정신을 팔려야 한다. 은영이 납치된 후부터 딸을 구하기 위한 지연의 발걸음은 정신 없이 빨라지기 시작한다. 몇 달은 해야 할 일을 일주일 만에 해야 하니 속도를 내지 않으면 딸은 포기해야 한다. 이야기의 속도보다 빠른 것은 편집의 속도다. 시종일관 핸드헬드 카메라로 움직이는 화면은 일반 극영화보다 3~4배는 빠른 속도로 짧게 끊어져 이어 붙여지고 때로는 하나의 프레임 내에서 중첩돼 움직인다. 숨가쁘게 움직이는 등장인물들과 카메라 덕분에 이야기는 숨돌릴 틈도 없이 진행된다. 관객에게는 영화가 던져주는 정보를 이어 붙일 시간도 충분치 않을 정도다. 숨돌릴 틈을 주지 않으니 스릴러 장르의 첫 번째 덕목인 긴장감은 시종일관 유지된다.
과도한 속도로 밀어붙이는 <세븐데이즈>는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납치 스릴러의 한계를 법정드라마와 수사극을 접목시켜 극복한다. 결과는 꽤 성공적이다. 딸을 납치당한 변호사와 비리 때문에 쫓기는 형사, 범죄여부가 불확실한 피의자 등 인물 구도도 스릴러영화의 요소로서 부족함이 없고 ‘싱글맘’이라는 주인공의 상황과 모성애를 사건과 연결시키는 방식도 자연스럽다. 전형적인 장르영화의 공식을 따르면서도 군더더기 없는 빠른 호흡으로 관객을 끌어당긴다. 무엇보다 사건의 개연성과 논리를 잘 꿰어 맞춰 극 자체의 완성도를 높인 점을 칭찬할 만하다. 한국영화로서는 파격적인 편집 방식도 눈길을 끌고, 주요 출연진의 연기 또한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관객의 몰입을 돕는다. 다만 반전이 담긴 결말을 지나치게 자세히 보여주는 것은 영화의 전체적 흐름을 흐트러트리는 요소로 기능한다. 하지만 몇 가지 단점에도 불구하고 <세븐데이즈>는 분명 올해 한국영화 중 두드러지는 스릴러 작품으로 기록되기에 충분하다.
<스카우트> - '너' 를 잡기 위해서라면 |
<스카우트>는 1980년 선동열이 광주제일고 3학년이었다는 사실에서 출발하는 영화다. < YMCA 야구단 >(이하 '야구단') <광식이 동생 광태>의 김현석 감독이 연출과 각본, 제작을 겸한 <스카우트>는 (현재까지도 계속되는) 한국 두 사립 대학의 운동 선수 스카우트 경쟁과 5.18 광주 민주화 항쟁 이야기를 바탕으로 김현석 감독 특유의 알콩달콩한 연애담을 이야기한다. 1970년대 서울과 1980년 5월 광주를 오가며 영화는 감독이 직, 간접적으로 경험한 추억들을 마음껏 풀어놓는다. 광주항쟁이라는 무거운 시대적인 요소가 끼어들긴 했지만, 대학 MT에서 서로 사랑을 확인하고 이소룡이 죽던 날 느닷없는 결별 선언을 당한 호창은 <광식이 동생 광태>의 광식의 조금 먼저 세대 버전이다.
영화는 호창이 광주항쟁이 막 일어나기 직전인 5월 18일까지 9박 10일 동안 광주에서 겪는 해프닝을 연대기 순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이 영화의 99퍼센트는 허구입니다' 라는 위트 있는 자막으로 시작되는 <스카우트>는 극 중 대부분이 허구의 내용이다. 광주 YMCA에서 호창이 글러브를 쥐어준 초등학생이 바람의 아들 이종범이었다던지, 호창이 광주에서 동열의 부모와 벌이는 여러 에피소드들은 철저히 감독의 머리에서 나온 이야기들로, 선동열을 기억하는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하지만 <스카우트>는 코미디보다는 멜로에 조금 더 방점을 찍는다. 광주가 점차 위기의 상황으로 치달으면서, 호창의 상황도 비슷한 길을 걷는다. 물론 그의 1차 목적은 선동열이었지만, 세영과의 우연한 만남 이후 호창은 그 동안 철저히 놓고 있었던 과거 그녀와의 추억을 돌이킨다. 결국 지난 7년 동안 놓고 지냈던 세영의 결별 이유가 밝혀지면서 영화는 철저히 멜로 쪽으로 방향을 튼다.
임창정, 엄지원, 박철민, 백일섭 등 배우들의 연기는 좋다. 김현석 감독이 각본을 쓴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에서 미녀스타와 사랑을 이루는 야구심판 범수로 등장한 바 있는 임창정은 <스카우트>에서 이제는 일갈한 생활인 연기를 완벽하게 소화해낸다. 그럴듯한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세영 역의 엄지원은 그럭저럭 임창정과 묘한 화학반응을 일으키며, 감초 조연 곤태 역의 박철민은 극 중 대부분의 코미디를 담당한다. 하지만 <스카우트>는 몇 가지 아쉬움을 남긴다. 김현석 감독이 실제 느끼고 경험했던 <광식이 동생 광태>의 생생함과는 달리 <스카우트> 속 1970~80년대는 감독이 경험하지 않은 조금 더 과거의 시대다. 이런 탓에 <스카우트>는 대과거(1970~80년대)와 과거(1990년대)가 충돌하는 것 같은 불협화음을 낸다. 배경과 옷차림만 1980년일 뿐 극을 관통하는 정서는 1990년대라는 말이다. 분명 김현석 감독은 대단한 스토리텔러다. 그러나 그의 이런 장기는 (아직은) 감독이 실제 경험한 그의 동시대성 영화에서 찬란히 빛난다. 아쉽지만 <스카우트>는 <광식이 동생 광태>보다는 <야구단>쪽에 가깝다.
<베오울프> - 영웅, 디지털 옷을 입다 |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영국 영웅서사시가 디지털로 탈바꿈했다. <베오울프 Beowulf>는 게르만족의 영웅서사시인 ‘베오울프 Beowulf’를 스크린에 옮긴 퍼포먼스 캡쳐 영화다. 총 3,182행으로 이뤄진 원작은 괴물 그렌델과 그의 모친을 살해하는 1부와 보물을 지키던 용을 퇴치하는 2부로 이뤄진 베오울프의 무용담이다. 하지만 <펄프 픽션 Pulp Fiction>의 시나리오 작가로 유명한 로저 에버리와 소설 [스타더스트 Stardust]의 작가 닐 게이먼은 전설적인 영웅 베오울프의 활약상을 그리는데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영화의 초반부, 거친 파도를 헤치며 이웃 나라에서 건너온 베오울프는 용맹함을 최고로 치는 전통적인 전사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베오울프는 매일 연회를 열며 술에 취해있는 흐로스가 전사들을 대신해 그렌델을 처단하지만, 자신의 위용을 자랑하기 위해 거짓말도 할 줄 알며, 여인의 유혹에 흔들리는 현대적인 영웅의 면모를 보인다. 인과관계가 뚜렷하지 않았던 원작의 이야기 구조는 시나리오 작가 로저 에버리와 닐 게이먼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됐다. 흐로스가 왕, 물의 마녀, 베오울프가 치정관계로 얽혀, 되풀이 되는 운명과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이라는 <베오울프>의 주제를 간결하게 전달한다.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 Who Framed Roger Rabbit> <폴라 익스프레스 The Polar Express> 등 실사와 애니메이션의 결합에 집요한 관심을 보여온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은 배우들의 온몸에 센서를 부착하는 퍼포먼스 캡쳐 외에도 안구의 움직임을 잡아내는 EOG(Electrooculography) 기술을 도입, 더욱 진일보한 영상을 만들어낸다. 물의 마녀가 수면 위를 유유히 거닐며 베오울프를 유혹하는 장면이나 하늘 위에서 펼쳐지는 용과 베오울프의 전투신은 디지털 영상으로 제작된 <베오울프>의 매력을 유감없이 느낄 수 있는 부분. 3D 아이맥스 버전 <베오울프>는 날카로운 화살촉의 질감까지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고대 영웅의 이야기가 최첨단 컴퓨터그래픽과 만나 일어나는 화학작용은 놀랄만한 수준이다.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은 실사와 애니메이션의 아슬한 경계에 서있는 이 영화처럼 감성과 이성의 논리에서 갈팡질팡하는 베오울프의 모습을 디지털 화면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낸다. 실제 나이가 50세인 레이 윈스톤이 미끈한 몸매를 지닌 청년 베오울프로 등장할 수 있었다는 것은 퍼포먼스 캡쳐 영화의 가능성을 미리 엿볼 수 있는 지점. 상업영화로서의 재미와 영화 테크놀로지의 미학적 성취를 고르게 이끌어낸 <베오울프>를 온전한 모습으로 접하기 위해선,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제작단계부터 의도했던 3D 아이맥스 버전 관람이 필요하다.
<검은 땅의 소녀와> - 2007년, 폐광촌의 풍경 |
해곤(조영진)은 최근 진폐증 진단을 받았다. 더 이상 갱도에서 탄을 캘 수도, 그렇다고 입원해 산재보험을 받을 수도 없는 신세. 결국 광산 일자리에서 물러난 해곤은 퇴직금 명목으로 받아 든 돈으로 작은 트럭을 구입한다. 하지만 트럭을 몰며 생전 처음 시작한 생선 장사는 길게 가지 못한다. 지적 장애를 앓고 있는 열한 살 아들 동구(박현우)가 트럭으로 카지노 손님의 그랜저 승용차를 받아버렸기 때문이다. 사고 뒷수습으로 트럭마저 잃어버린 해곤은 점점 생활은 뒷전으로 하고 술만 들이켠다. 생활비는커녕 집조차 철거 대상이 되어버린 상황. 해곤의 씩씩한 막내딸 영림(유연미)은 하루하루 피폐해져 가는 아빠를 보는 것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오빠와 함께 하는 것이 점점 힘들다.
강원도 속초, 태백, 사북 일대를 배경으로 한 전작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을 작업하며 전수일 감독은 폐광이 늘어만 가는 탄광촌의 현실을 직접 눈으로 접하게 됐다. 그리고 합병증을 발견하면 모두가 ‘축하’를 보낸다는 진폐증 환자들의 고통은 그렇게 전수일 감독의 시선을 통해 영화로 되살아났다. 전수일 감독은 <검은 땅의 소녀와>에 어떤 덧칠도 하지 않았다. 영화 속 광부들이 함께 불러 젖히는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막장으로 넘어간다’는 노래 구절처럼 영화는 막장으로 가 닿은 폐광촌의 쓸쓸한 삶을 ‘날 것’ 그대로 담아낸다. 덕분에 <검은 땅의 소녀와>는 비극의 색조가 짙다. 합병증으로 입원한 옆집 아저씨가 부러운 영림이 아빠가 ‘배앓이’를 했으면 해서 내린 어린 결정은 폐광촌의 희망 없는 현실을 관객 앞에 묵직하고 아프게 각인시키고, 폐광촌을 떠도는 광부의 초점 없는 시선은 그들의 삶에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는 관객을 반성하게 한다. 그렇다고 <검은 땅의 소녀와>에 비극의 색채만 드리운 건 아니다. 버려진 집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새끼 고양이처럼 그 땅에도 생의 기운이 있다는 것을 영화는 에둘러 말한다.
<검은 땅의 소녀와>를 빛내는 건 ‘리얼리티’다. 지하 800미터에 자리한 갱도를 뚫고 들어가 잡아낸 광부들의 채굴 현장, 낡아가는 폐광촌의 쓸쓸한 풍광, 카지노 사업이 불러온 강원도의 빈부 격차는 물론 어린 나이를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똑 부러진 감정 연기를 선보이는 두 아역의 호연이 영화를 ‘진짜’로 만들어냈다. 여기에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에서 유괴범을 연기했던 배우 조영진은 진폐증 환자로 광부의 아픈 현실을 온몸으로 보여준다. 올해 베니스국제영화제 비경쟁부문에 초대돼 국제예술영화관연맹상과 리나 만자카프레상을 수상한 <검은 땅의 소녀와>는 올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넷팩상 역시 수상했다.
<색화동> - 살 떨리고 땀 나는 에로영화의 현장 |
원제 ‘태극기를 꽂으며’가 심의에 걸려 제목이 바뀌는 수난을 겪었던 <깃발을 꽂으며>의 공자관 감독은 에로영화계에서 봉만대 감독만큼이나 잘 알려진 인물이다. <만덕이의 보물상자> <이태원 버스> <하지마> 등을 내놓으며 에로영화계에서 개성 있는 감독으로 자리잡았던 공자관 감독이 에로비디오의 ‘명가’ 클릭엔터테인먼트와 손을 잡고 독립영화 <색화동>을 만들었다. <색화동>은 에로영화가 아닌 에로영화에 관한 영화다. 에로영화 현장에 뛰어든 풋내기 조감독을 통해 에로영화를 찍는 사람들의 애환을 그린다. 촬영장을 섭외하기 위해서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해야 하는 조감독 진규, 여배우를 탐하는 제작사 사장, 이야기 전개가 흐트러져도 시간이 부족하면 중요한 장면을 찍지 않고 넘어가는 황감독 등을 통해 에로영화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전달한다. 사회적 금기와 편견을 정면 돌파해야 하는 제작진의 애환이 코믹하게 전개된다.
<색화동>의 가장 큰 장점은 경험에 기반한 사실적인 캐릭터 구성과 이야기 전개다. 사회적인 이슈나 개인적인 내면, 추상적인 상징 등으로 대표되는 독립영화에 대한 편견을 깨고 <색화동>은 재미있는 아이디어로 관객친화적인 접근을 시도한다. 자극적인 소재주의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초년생의 성장 이야기로 발전시킨 점 또한 칭찬할 만하다. 하지만 에로영화에 대한 사람들의 견해를 담은 다큐멘터리 장면은 인서트로서 효율적인 기능을 하지 못하고 사족에 머무른다. 저예산영화의 기술적인 한계를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크게 흠잡을 데 없는 완성도를 지니고 있지만, 독립영화 특유의 도전적인 실험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은 아쉬움을 살 만하다.
<춤추는 나의 베아트리체> - 열병을 앓는 청춘을 위한 시 |
<춤추는 나의 베아트리체 El Camino de los ingleses>는 스페인 출신으로 할리우드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배우 안토니오 반데라스의 두 번째 연출작이다. 1999년 아내인 멜라니 그리피스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코미디 <크레이지 인 알라바마 Crazy in Alabama >로 연출 데뷔한 후 7년 만의 일. 미국에서 영어로 제작된 데뷔작과 달리 두 번째 연출작 <춤추는 나의 베아트리체>는 스페인 작가 안토니오 슬레르의 소설을 원작으로 스페인어로 제작돼 안토니오 반데라스의 뿌리를 짐작케 한다. 이 영화는 <스파이키드 Spy Kids> 시리즈와 <슈렉 Shrek> 시리즈, 그리고 <레전드 오브 조로 Legend of Zoro> 등 안토니오 반데라스의 출연작과는 달리 예술영화의 향취를 풍기는 작품이다.
2007년 베를린국제영화제 라벨유럽영화상 수상을 수상하기도 한 <춤추는 나의 베아트리체>는 청춘의 열병을 앓는 젊은 주인공 미겔리토의 이야기를 지옥과 천국, 연옥을 여행하는 시인 단테의 이야기를 담은 서사시 [신곡]을 인용해 시적으로 풀어냈다. 햇살이 뜨거운 스페인을 배경으로 인생에서 가장 뜨거운 시기인 청춘을 통과하는 젊은이들의 기쁨과 고통, 좌절, 아픔, 슬픔 등을 서정적인 화면에 담아낸다. 알베르토 아마릴라와 마리아 루이즈 같은 스페인의 젊은 배우들뿐 아니라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욕망의 낮과 밤 Tie Me Up! Tie Me Down! > <하이힐 High Heels> <키카 Kika> 등에서 톡특한 캐릭터를 선보였던 빅토리아 아브릴과 <하몽하몽 Jamon Jamon> 등 100편이 넘는 작품에 출연한 후안 디에고 등 스페인의 중견배우들도 출연해 젊은 배우들과 조화로운 앙상블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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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3주차 개봉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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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1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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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1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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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2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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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2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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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금고연쇄습격사건> - 모두, 은행 털러 갑니다 |
<마을금고연쇄습격사건>은 같은 날 같은 은행을 털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소동극이다. 초보 은행강도, 전문 은행강도, 비리 경찰관이 만나 엎치락뒤치락하는 모습이 이 영화의 핵심이다. 마을금고에서 만나게 된 세 일행이 각자의 이해관계에 맞춰 태도를 바꿔가는 모습은 흥미진진하다. 배기로는 아픈 딸의 병원비를 마련해 주겠다는 구 반장의 거래를 받아들이고, 경찰에 포위돼 마을금고를 탈출할 방법이 요원하던 만수는 배기로와 손을 잡고 탈출을 감행한다. 마을금고 밖에서 은행강도 사건을 지휘하는 경찰서장 역시 회유책과 무력 진압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얼마 남지 않은 정년퇴임을 무사히 끝내기만을 바란다.
하지만 영화는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딸을 향한 배기로의 부성애가 지나치게 강조돼 소동극으로서의 초점이 흐려진다. 딸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배기로의 추억 역시 중간중간 삽입되지만, 좌충우돌한 은행강도 사건과 자연스럽게 어울리지 못한다. 웃음과 감동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했던 <마을금고연쇄습격사건>은 러닝타임이 흐를수록 이야기가 어두워지며 신파로 흐르는 우를 범하고 만다. 이문식, 백윤식, 박효준 등 주연배우들의 연기호흡은 매끄럽다. <전설의 고향> <라디오 스타>의 한여운은 은행강도에게 삿대질을 할 정도로 당찬 여성인 미쓰리로 등장해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세븐데이즈> - 납치 스릴러와 법정 드라마의 행복한 만남 |
<세븐데이즈>는 속도에 관한 한 올해 개봉된 어떤 한국영화에도 뒤쳐지지 않는 작품이다. 지연이 딸을 잃게 되기까지 10분이 채 지나지 않는다. 관객은 지연의 일상생활을 들여다볼 기회도 없이 납치사건에 정신을 팔려야 한다. 은영이 납치된 후부터 딸을 구하기 위한 지연의 발걸음은 정신 없이 빨라지기 시작한다. 몇 달은 해야 할 일을 일주일 만에 해야 하니 속도를 내지 않으면 딸은 포기해야 한다. 이야기의 속도보다 빠른 것은 편집의 속도다. 시종일관 핸드헬드 카메라로 움직이는 화면은 일반 극영화보다 3~4배는 빠른 속도로 짧게 끊어져 이어 붙여지고 때로는 하나의 프레임 내에서 중첩돼 움직인다. 숨가쁘게 움직이는 등장인물들과 카메라 덕분에 이야기는 숨돌릴 틈도 없이 진행된다. 관객에게는 영화가 던져주는 정보를 이어 붙일 시간도 충분치 않을 정도다. 숨돌릴 틈을 주지 않으니 스릴러 장르의 첫 번째 덕목인 긴장감은 시종일관 유지된다.
과도한 속도로 밀어붙이는 <세븐데이즈>는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납치 스릴러의 한계를 법정드라마와 수사극을 접목시켜 극복한다. 결과는 꽤 성공적이다. 딸을 납치당한 변호사와 비리 때문에 쫓기는 형사, 범죄여부가 불확실한 피의자 등 인물 구도도 스릴러영화의 요소로서 부족함이 없고 ‘싱글맘’이라는 주인공의 상황과 모성애를 사건과 연결시키는 방식도 자연스럽다. 전형적인 장르영화의 공식을 따르면서도 군더더기 없는 빠른 호흡으로 관객을 끌어당긴다. 무엇보다 사건의 개연성과 논리를 잘 꿰어 맞춰 극 자체의 완성도를 높인 점을 칭찬할 만하다. 한국영화로서는 파격적인 편집 방식도 눈길을 끌고, 주요 출연진의 연기 또한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관객의 몰입을 돕는다. 다만 반전이 담긴 결말을 지나치게 자세히 보여주는 것은 영화의 전체적 흐름을 흐트러트리는 요소로 기능한다. 하지만 몇 가지 단점에도 불구하고 <세븐데이즈>는 분명 올해 한국영화 중 두드러지는 스릴러 작품으로 기록되기에 충분하다.
<스카우트> - '너' 를 잡기 위해서라면 |
<스카우트>는 1980년 선동열이 광주제일고 3학년이었다는 사실에서 출발하는 영화다. < YMCA 야구단 >(이하 '야구단') <광식이 동생 광태>의 김현석 감독이 연출과 각본, 제작을 겸한 <스카우트>는 (현재까지도 계속되는) 한국 두 사립 대학의 운동 선수 스카우트 경쟁과 5.18 광주 민주화 항쟁 이야기를 바탕으로 김현석 감독 특유의 알콩달콩한 연애담을 이야기한다. 1970년대 서울과 1980년 5월 광주를 오가며 영화는 감독이 직, 간접적으로 경험한 추억들을 마음껏 풀어놓는다. 광주항쟁이라는 무거운 시대적인 요소가 끼어들긴 했지만, 대학 MT에서 서로 사랑을 확인하고 이소룡이 죽던 날 느닷없는 결별 선언을 당한 호창은 <광식이 동생 광태>의 광식의 조금 먼저 세대 버전이다.
영화는 호창이 광주항쟁이 막 일어나기 직전인 5월 18일까지 9박 10일 동안 광주에서 겪는 해프닝을 연대기 순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이 영화의 99퍼센트는 허구입니다' 라는 위트 있는 자막으로 시작되는 <스카우트>는 극 중 대부분이 허구의 내용이다. 광주 YMCA에서 호창이 글러브를 쥐어준 초등학생이 바람의 아들 이종범이었다던지, 호창이 광주에서 동열의 부모와 벌이는 여러 에피소드들은 철저히 감독의 머리에서 나온 이야기들로, 선동열을 기억하는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하지만 <스카우트>는 코미디보다는 멜로에 조금 더 방점을 찍는다. 광주가 점차 위기의 상황으로 치달으면서, 호창의 상황도 비슷한 길을 걷는다. 물론 그의 1차 목적은 선동열이었지만, 세영과의 우연한 만남 이후 호창은 그 동안 철저히 놓고 있었던 과거 그녀와의 추억을 돌이킨다. 결국 지난 7년 동안 놓고 지냈던 세영의 결별 이유가 밝혀지면서 영화는 철저히 멜로 쪽으로 방향을 튼다.
임창정, 엄지원, 박철민, 백일섭 등 배우들의 연기는 좋다. 김현석 감독이 각본을 쓴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에서 미녀스타와 사랑을 이루는 야구심판 범수로 등장한 바 있는 임창정은 <스카우트>에서 이제는 일갈한 생활인 연기를 완벽하게 소화해낸다. 그럴듯한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세영 역의 엄지원은 그럭저럭 임창정과 묘한 화학반응을 일으키며, 감초 조연 곤태 역의 박철민은 극 중 대부분의 코미디를 담당한다. 하지만 <스카우트>는 몇 가지 아쉬움을 남긴다. 김현석 감독이 실제 느끼고 경험했던 <광식이 동생 광태>의 생생함과는 달리 <스카우트> 속 1970~80년대는 감독이 경험하지 않은 조금 더 과거의 시대다. 이런 탓에 <스카우트>는 대과거(1970~80년대)와 과거(1990년대)가 충돌하는 것 같은 불협화음을 낸다. 배경과 옷차림만 1980년일 뿐 극을 관통하는 정서는 1990년대라는 말이다. 분명 김현석 감독은 대단한 스토리텔러다. 그러나 그의 이런 장기는 (아직은) 감독이 실제 경험한 그의 동시대성 영화에서 찬란히 빛난다. 아쉽지만 <스카우트>는 <광식이 동생 광태>보다는 <야구단>쪽에 가깝다.
<베오울프> - 영웅, 디지털 옷을 입다 |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영국 영웅서사시가 디지털로 탈바꿈했다. <베오울프 Beowulf>는 게르만족의 영웅서사시인 ‘베오울프 Beowulf’를 스크린에 옮긴 퍼포먼스 캡쳐 영화다. 총 3,182행으로 이뤄진 원작은 괴물 그렌델과 그의 모친을 살해하는 1부와 보물을 지키던 용을 퇴치하는 2부로 이뤄진 베오울프의 무용담이다. 하지만 <펄프 픽션 Pulp Fiction>의 시나리오 작가로 유명한 로저 에버리와 소설 [스타더스트 Stardust]의 작가 닐 게이먼은 전설적인 영웅 베오울프의 활약상을 그리는데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영화의 초반부, 거친 파도를 헤치며 이웃 나라에서 건너온 베오울프는 용맹함을 최고로 치는 전통적인 전사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베오울프는 매일 연회를 열며 술에 취해있는 흐로스가 전사들을 대신해 그렌델을 처단하지만, 자신의 위용을 자랑하기 위해 거짓말도 할 줄 알며, 여인의 유혹에 흔들리는 현대적인 영웅의 면모를 보인다. 인과관계가 뚜렷하지 않았던 원작의 이야기 구조는 시나리오 작가 로저 에버리와 닐 게이먼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됐다. 흐로스가 왕, 물의 마녀, 베오울프가 치정관계로 얽혀, 되풀이 되는 운명과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이라는 <베오울프>의 주제를 간결하게 전달한다.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 Who Framed Roger Rabbit> <폴라 익스프레스 The Polar Express> 등 실사와 애니메이션의 결합에 집요한 관심을 보여온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은 배우들의 온몸에 센서를 부착하는 퍼포먼스 캡쳐 외에도 안구의 움직임을 잡아내는 EOG(Electrooculography) 기술을 도입, 더욱 진일보한 영상을 만들어낸다. 물의 마녀가 수면 위를 유유히 거닐며 베오울프를 유혹하는 장면이나 하늘 위에서 펼쳐지는 용과 베오울프의 전투신은 디지털 영상으로 제작된 <베오울프>의 매력을 유감없이 느낄 수 있는 부분. 3D 아이맥스 버전 <베오울프>는 날카로운 화살촉의 질감까지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고대 영웅의 이야기가 최첨단 컴퓨터그래픽과 만나 일어나는 화학작용은 놀랄만한 수준이다.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은 실사와 애니메이션의 아슬한 경계에 서있는 이 영화처럼 감성과 이성의 논리에서 갈팡질팡하는 베오울프의 모습을 디지털 화면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낸다. 실제 나이가 50세인 레이 윈스톤이 미끈한 몸매를 지닌 청년 베오울프로 등장할 수 있었다는 것은 퍼포먼스 캡쳐 영화의 가능성을 미리 엿볼 수 있는 지점. 상업영화로서의 재미와 영화 테크놀로지의 미학적 성취를 고르게 이끌어낸 <베오울프>를 온전한 모습으로 접하기 위해선,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제작단계부터 의도했던 3D 아이맥스 버전 관람이 필요하다.
<검은 땅의 소녀와> - 2007년, 폐광촌의 풍경 |
해곤(조영진)은 최근 진폐증 진단을 받았다. 더 이상 갱도에서 탄을 캘 수도, 그렇다고 입원해 산재보험을 받을 수도 없는 신세. 결국 광산 일자리에서 물러난 해곤은 퇴직금 명목으로 받아 든 돈으로 작은 트럭을 구입한다. 하지만 트럭을 몰며 생전 처음 시작한 생선 장사는 길게 가지 못한다. 지적 장애를 앓고 있는 열한 살 아들 동구(박현우)가 트럭으로 카지노 손님의 그랜저 승용차를 받아버렸기 때문이다. 사고 뒷수습으로 트럭마저 잃어버린 해곤은 점점 생활은 뒷전으로 하고 술만 들이켠다. 생활비는커녕 집조차 철거 대상이 되어버린 상황. 해곤의 씩씩한 막내딸 영림(유연미)은 하루하루 피폐해져 가는 아빠를 보는 것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오빠와 함께 하는 것이 점점 힘들다.
강원도 속초, 태백, 사북 일대를 배경으로 한 전작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을 작업하며 전수일 감독은 폐광이 늘어만 가는 탄광촌의 현실을 직접 눈으로 접하게 됐다. 그리고 합병증을 발견하면 모두가 ‘축하’를 보낸다는 진폐증 환자들의 고통은 그렇게 전수일 감독의 시선을 통해 영화로 되살아났다. 전수일 감독은 <검은 땅의 소녀와>에 어떤 덧칠도 하지 않았다. 영화 속 광부들이 함께 불러 젖히는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막장으로 넘어간다’는 노래 구절처럼 영화는 막장으로 가 닿은 폐광촌의 쓸쓸한 삶을 ‘날 것’ 그대로 담아낸다. 덕분에 <검은 땅의 소녀와>는 비극의 색조가 짙다. 합병증으로 입원한 옆집 아저씨가 부러운 영림이 아빠가 ‘배앓이’를 했으면 해서 내린 어린 결정은 폐광촌의 희망 없는 현실을 관객 앞에 묵직하고 아프게 각인시키고, 폐광촌을 떠도는 광부의 초점 없는 시선은 그들의 삶에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는 관객을 반성하게 한다. 그렇다고 <검은 땅의 소녀와>에 비극의 색채만 드리운 건 아니다. 버려진 집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새끼 고양이처럼 그 땅에도 생의 기운이 있다는 것을 영화는 에둘러 말한다.
<검은 땅의 소녀와>를 빛내는 건 ‘리얼리티’다. 지하 800미터에 자리한 갱도를 뚫고 들어가 잡아낸 광부들의 채굴 현장, 낡아가는 폐광촌의 쓸쓸한 풍광, 카지노 사업이 불러온 강원도의 빈부 격차는 물론 어린 나이를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똑 부러진 감정 연기를 선보이는 두 아역의 호연이 영화를 ‘진짜’로 만들어냈다. 여기에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에서 유괴범을 연기했던 배우 조영진은 진폐증 환자로 광부의 아픈 현실을 온몸으로 보여준다. 올해 베니스국제영화제 비경쟁부문에 초대돼 국제예술영화관연맹상과 리나 만자카프레상을 수상한 <검은 땅의 소녀와>는 올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넷팩상 역시 수상했다.
<색화동> - 살 떨리고 땀 나는 에로영화의 현장 |
원제 ‘태극기를 꽂으며’가 심의에 걸려 제목이 바뀌는 수난을 겪었던 <깃발을 꽂으며>의 공자관 감독은 에로영화계에서 봉만대 감독만큼이나 잘 알려진 인물이다. <만덕이의 보물상자> <이태원 버스> <하지마> 등을 내놓으며 에로영화계에서 개성 있는 감독으로 자리잡았던 공자관 감독이 에로비디오의 ‘명가’ 클릭엔터테인먼트와 손을 잡고 독립영화 <색화동>을 만들었다. <색화동>은 에로영화가 아닌 에로영화에 관한 영화다. 에로영화 현장에 뛰어든 풋내기 조감독을 통해 에로영화를 찍는 사람들의 애환을 그린다. 촬영장을 섭외하기 위해서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해야 하는 조감독 진규, 여배우를 탐하는 제작사 사장, 이야기 전개가 흐트러져도 시간이 부족하면 중요한 장면을 찍지 않고 넘어가는 황감독 등을 통해 에로영화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전달한다. 사회적 금기와 편견을 정면 돌파해야 하는 제작진의 애환이 코믹하게 전개된다.
<색화동>의 가장 큰 장점은 경험에 기반한 사실적인 캐릭터 구성과 이야기 전개다. 사회적인 이슈나 개인적인 내면, 추상적인 상징 등으로 대표되는 독립영화에 대한 편견을 깨고 <색화동>은 재미있는 아이디어로 관객친화적인 접근을 시도한다. 자극적인 소재주의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초년생의 성장 이야기로 발전시킨 점 또한 칭찬할 만하다. 하지만 에로영화에 대한 사람들의 견해를 담은 다큐멘터리 장면은 인서트로서 효율적인 기능을 하지 못하고 사족에 머무른다. 저예산영화의 기술적인 한계를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크게 흠잡을 데 없는 완성도를 지니고 있지만, 독립영화 특유의 도전적인 실험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은 아쉬움을 살 만하다.
<춤추는 나의 베아트리체> - 열병을 앓는 청춘을 위한 시 |
<춤추는 나의 베아트리체 El Camino de los ingleses>는 스페인 출신으로 할리우드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배우 안토니오 반데라스의 두 번째 연출작이다. 1999년 아내인 멜라니 그리피스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코미디 <크레이지 인 알라바마 Crazy in Alabama >로 연출 데뷔한 후 7년 만의 일. 미국에서 영어로 제작된 데뷔작과 달리 두 번째 연출작 <춤추는 나의 베아트리체>는 스페인 작가 안토니오 슬레르의 소설을 원작으로 스페인어로 제작돼 안토니오 반데라스의 뿌리를 짐작케 한다. 이 영화는 <스파이키드 Spy Kids> 시리즈와 <슈렉 Shrek> 시리즈, 그리고 <레전드 오브 조로 Legend of Zoro> 등 안토니오 반데라스의 출연작과는 달리 예술영화의 향취를 풍기는 작품이다.
2007년 베를린국제영화제 라벨유럽영화상 수상을 수상하기도 한 <춤추는 나의 베아트리체>는 청춘의 열병을 앓는 젊은 주인공 미겔리토의 이야기를 지옥과 천국, 연옥을 여행하는 시인 단테의 이야기를 담은 서사시 [신곡]을 인용해 시적으로 풀어냈다. 햇살이 뜨거운 스페인을 배경으로 인생에서 가장 뜨거운 시기인 청춘을 통과하는 젊은이들의 기쁨과 고통, 좌절, 아픔, 슬픔 등을 서정적인 화면에 담아낸다. 알베르토 아마릴라와 마리아 루이즈 같은 스페인의 젊은 배우들뿐 아니라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욕망의 낮과 밤 Tie Me Up! Tie Me Down! > <하이힐 High Heels> <키카 Kika> 등에서 톡특한 캐릭터를 선보였던 빅토리아 아브릴과 <하몽하몽 Jamon Jamon> 등 100편이 넘는 작품에 출연한 후안 디에고 등 스페인의 중견배우들도 출연해 젊은 배우들과 조화로운 앙상블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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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2주차 개봉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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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0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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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스틱 자살소동> - 판타스틱 자살백서 |
‘자살’이란 소재를 축으로 30여 분의 단편을 묶은 옴니버스 <판타스틱 자살소동>은 독립영화 전문 배급사 인디스토리와 MBC드라마넷이 공동 제작한 작품. 꿈과 현실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암흑 속의 세사람>을 <핵분열가족>으로 올해 클레르몽페랑단편영화제 국제경쟁부문에 진출한 박수영 감독, <날아라 닭!>을 <피터팬의 공식>을 연출한 조창호 감독, <해피버스데이>를 <거울 속으로>의 김성호 감독이 연출했다. ‘자살’이란 소재를 같이 했을 뿐 전혀 다른 색깔로 만들어진 세 이야기는 그러나 자살을 어둡고 내밀한 것에서 밝고 경쾌한 리듬으로 끌어낸다. 꿈과 현실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자살을 ‘꿈’의 한 형태로 바꾼 <암흑 속의 세사람>이 로맨스와 SF, 전쟁 스릴러를 뒤섞으며 자살을 한바탕 소동극으로 그린다면 <날아라 닭!>은 우연한 사건으로 인해 자살하지 못한 한 남자의 아이러니, <해피버스데이>는 노인의 자살 안에 유쾌한 극적 반전을 심어두었다. 세 이야기의 질감이 모두 달라 한 편의 옴니버스로서 매끈하게 이어지진 않지만 각 영화마다 뒤통수치는 반전의 재미와 독특한 상상력이 가득하다.
장르의 구애 없이 자유자재로 ‘자살의 풍경’을 그려내는 영화적 시도는 빛나지만 <판타스틱 자살소동>이 이로써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기존 관념과 얼마나 다른지는 생각해볼 문제. 자살을 삶의 ‘그림자’로만 바라보지 않는 영화의 시선은 새롭지만, ‘그래도 살아있는 것이 더 소중하다’는 식의 교훈은 여전하다. 가수 타블로의 영화 배우 선언, 김남진의 연기 변신, <웰컴 투 동막골>의 촌장을 연기했던 연극배우 정재진의 깜찍한 게이 할아버지 연기를 감상하는 재미는 <판타스틱 자살소동>에서 덤으로 얻을 수 있는 재미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상영돼 관객들의 큰 사랑을 얻은 바 있다.
<명랑한 갱이 지구를 움직인다> - 만화적인 상상력이 영화를 움직인다 |
<명랑한 갱이 지구를 움직인다 A Cheerful Gang Turns the Earth>는 네 명의 주연급 배우 캐스팅이 먼저 눈길을 끈다. 인간 거짓말탐지기 나루세 역의 오오사와 다카오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Crying out Love in the Center of the World>로 국내에 잘 알려져 있고, <케이티 KT> <눈에게 바라는 것 What the Snow Brings> 등으로 유명한 사토 코이치는 쿄노 역으로 출연한다. 스즈키 교카는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 Welcome Back, Mr. McDonald> <피와 뼈 Blood and Bones> 등으로 국내 관객들에게 얼굴이 잘 알려져 있으며, 마츠다 료타는 <나나 Nana> <사랑의 문 Otakus in Love>로 잘 알려진 마츠다 류헤이의 동생이다.
이사카 고타로의 동명 소설을 영화로 옮긴 <명랑한 갱이 지구를 움직인다>는 <오션스 일레븐 Ocean’s 11> 시리즈처럼 한 분야에 뛰어난 재능을 지닌 여러 명이 힘을 모아 완벽한 범죄를 꾸민다는 설정으로 시작하는 영화이지만 <오션스 일레븐>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는 영화다. 독특한 재능을 지닌 4인조 갱단이 힘들게 훔친 돈을 다른 강도에게 빼앗기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코믹하게 그린 <명랑한 갱이 지구를 움직인다>는 소설을 영화로 옮긴 작품이라기보다는 만화 같은 영화에 더 가깝다. 이사카 고타로의 작품세계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이야기 자체는 다소 헐거운 편이지만, 매력적인 개성을 지닌 캐릭터들과 만담처럼 이어지는 대사, 만화적 상상력이 가득한 컴퓨터그래픽 등이 플롯의 지루함을 보완한다.
<데드걸> - 여성의 눈으로 바라본 여성의 삶 |
<데드걸 The Dead Girl>은 죽은 여자(the Dead Girl)를 매개로 엮인 다섯 명의 여자들의 이야기를 스릴러 형식으로 풀어놓는 작품. 저마다 다른 고통을 겪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낯선 사람(The Stranger), 자매(The Sister), 아내(The Wife), 어머니(The Mother), 죽은 여자(The Dead Girl) 등 다섯 개의 에피소드에 각각 담겨 있다. 영화는 자매, 아내, 어머니 등 여성의 입장에서만 겪을 수 있는 에피소드를 통해 여성의 삶에 대한 통찰을 보여준다. 배우이자 감독인 카렌 몬크리프는 여성의 감정을 섬세하게 포착해낸 연출로 여성들이 처할 수 있는 상황과 감정들을 설득력있게 묘사해낸다.
2006년 미국 개봉 당시 외신들은 "<데드걸>은 훌륭한 시나리오와 정교한 연출력,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이 행복하게 만난 수작"이라는 평가부터 "<<데드 걸>은 장인의 솜씨로 빚어낸 뛰어난 스릴러" "관습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세련된 연출력이 돋보이는 작품" 등의 호평을 쏟아내며 카렌 몬크리프의 연출력을 높이 샀다. <데드걸>은 연출력뿐 아니라 배우들의 연기도 빛난다. 토니 콜레트, 브리트니 머피, 마샤 게이 하든 등의 배우들은 각각 짧은 에피소드에 잠깐씩 출연할 뿐이지만 연기파 배우답게 제몫을 톡톡히 해내며 여운을 남긴다.
<벡실> - 당신이 상상한 미래 그 이상 |
<벡실 Vexille>은 <애플시드 Appleseed>(2004)를 제작하며 미래 시대, 여전사의 모험을 그린 바 있는 소리 후미히코 감독이 또 한번 그려내는 미래 여전사의 모험극. 일본 최초 100% CG 애니메이션으로 3D 애니메이션 공간에 2D 인물들을 섞어두었던 <애플시드>에서 한발 더 나아가 영화 전체를 3D 라이브 애니메이션으로 마감했다. 제임스 카메론의 <타이타닉 Titanic>에서 컴퓨터 그래픽 작업을 담당한 이래, 숱한 드라마와 영화에서 CG를 맡아온 소리 후미히코 감독은 <벡실>을 컴퓨터 그래픽이 만들어낼 수 있는 최대치의 영상미로 그려낸다. 차가운 톤으로 잡아낸 미국 최첨단 미래 도시의 마천루와 시골 촌락을 떠올리게 하는 오래고 낡은 도쿄의 풍광이 기묘한 대조를 이루는 2077년의 미래 풍경이 눈을 잡아 끌고, 스워드 요원 벡실과 그녀를 돕는 마리아가 일본 정부군을 상대로 벌이는 싸움은 박진감 넘치는 액션으로 탄생했다.
<벡실>의 가장 큰 매력은 3D로 잡아낸 매혹적인 영상미지만 영화를 이루는 아이디어 역시 흥미롭다. 미래 시대에 ‘쇄국’을 감행하고 고립하는 일본이라는 설정부터 시작해 인간이란 유기체의 피를 빨아먹고 크는 로봇, 60년대 촌락으로 그려지는 미래 도쿄의 풍광 등 <벡실>에는 우리가 흔히 ‘미래’라는 이름으로 떠올리는 이미지와는 상반되는 이미지와 아이디어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하지만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유려한 영상에 비해 스토리 줄기는 헐거운 편. 일본을 쇄국으로 몰고 간 조직의 정체가 밝혀지는 과정까지, 반복되는 추격전은 박진감 넘치지만 스토리 상의 찰기는 옅다. 덕분에 벡실의 흥미진진한 추격전은 지루한 스토리와 만나 박진감을 상당 수 잃고 말았다. 컴퓨터 그래픽과 함께 <벡실>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음악. <매트릭스 2 ? 리로디드 The Matrix Reloaded>의 음악을 담당했던 폴 오켄폴드가 만들어낸 빠른 템포의 음악 선율들은 <벡실>의 액션, 추격 신들과 완벽한 호흡을 이룬다.
<세브란스> - 공포와 코미디의 절묘한 만남 |
<새벽의 황당한 저주 Shaun of the Dead> 류의 코믹 공포영화를 선호하는 관객이라면 쌍수를 들고 환호할 만한 작품이 찾아왔다. <크립 Creep>의 크리스토퍼 스미스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세브란스 Severance>는 워크샵 도중 정체불명의 괴한을 만나게 된 회사원들의 이야기를 그린 변종 호러영화다. ‘절단’이라는 영화제목에도 알 수 있듯 <세브란스>는 기본적으로 스플래터 무비의 외형을 띄고 있다. 희생자들은 다리가 잘리고, 머리가 떨어져 나가며, 불에 그을린다. 하지만 크리스토퍼 스미스 감독이 공포를 직조하는 방법은 전통적인 호러영화와 다소 차이가 있다. 예컨대 괴한들에게 쫓기며 숲 속을 도망치는 장면에는 아름다운 바이올린 선율이 흐르고, 괴한들을 향해 발사된 미사일은 어이없게 날라가던 비행기를 맞추는 식이다. 공포와 코미디의 절묘한 만남은 살육이 일어나기 바로 전날, 무기회사 직원들이 나누는 음모론을 모티브 삼아 제대로 구현된다.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치부됐던 무기회사 음모론은 영화 속에 세 차례에 걸쳐 변주되며 이들을 괴롭혀 나간다.
<세브란스>는 스산한 기운을 내뿜는 공포영화 본연의 장르적 쾌감뿐만 아니라, 반전(反戰)이라는 묵직한 주제의식 또한 놓치지 않는다. 불특정다수를 잔혹하게 살해하는 일반적인 호러영화의 살인마와 다르게, <세브란스>의 괴한들은 무기회사 팰리세이드 디펜스에 앙심을 품고 직원들을 처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장 리차드가 자신이 일하는 회사에서 제조된 지뢰를 밟게 되거나, 고통 없이 사람을 죽이는 무기를 개발하고 싶었던 질이 괴한에게 납치돼 공포에 떠는 장면은 <세브란스>의 주제를 더욱 명확하게 전달시킨다. 느닷없이 조명이 꺼지고 날카로운 굉음이 울려 퍼지는 공포영화 클리셰를 철저히 배제한 <세브란스>는 공포영화 마니아에게는 색다른 재미를, 일반적인 관객에게는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스플래터 무비로 손색이 없다.
<색, 계> - 인간의 근원 |
<색, 계 Lust, Caution>(이하 <색계>)는 대만 출신의 세계적인 감독 이안이 지난 2000년작 <와호장룡 Crouching Tiger, Hidden Dragon> 이후 7년 만에 중국 만다린어로 제작한 영화다. 관금붕의 <레드 로즈 화이트 로즈 Red Rose White Rose>, 허안화의 <반생연 Eighteen Springs> 등으로 유명한 중국 상하이 출신의 여류 작가 에일린 창의 28페이지 짜리 단편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올해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한 <색계>로 이안 감독은 <브로크백 마운틴 Brokeback Mountain>이후 불과 2년만에 황금사자상을 두 번째로 손에 넣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영화의 제목인 <색계>에서 '색(色)'은 인간의 욕망을 뜻하며, '계(戒)'는 인간의 신중함 혹은 조심스러움을 뜻하는 말. 겉으로 <색계>는 사랑과 섹스를 의미하지만, 이를 넘어 예술과 삶 등 인간의 모든 행동 양식에 적용될 수 있다. 왕치아즈와 이는 처음 그들에게 다가온 서로를 신중하게 경계하지만, 결국 경계를 뛰어넘는 인간의 욕망 그리고 그 안에서 언제든지 튀어나올 준비가 된 경계심으로 인해 두 명 모두 파국으로 치닫는다. 이안 감독은 <색계>의 두 주인공 왕치아즈와 이의 이야기를 통해 고통과 사랑이 공존하는 인간을 이야기한다.
<색계>는 극 중 등장하는 이와 왕치아즈의 자극적인 정사 장면으로 인해 미국에서는 청소년 관람불가인 NC-17 등급을 받았으며, 중국에서는 무려 30분이 삭제된 채 개봉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극 중 세번에 걸쳐 등장하는 이와 왕치아즈의 정사 장면은 다소 충격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직접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하지만 이안과 로드리고 프리에토 촬영감독(<브로크백 마운틴 > <바벨 Babel>)의 카메라는 이를 '야'한 포르노그래피와는 180도 거리가 있게 담아냈다. 경계로 시작한 이와 왕치아즈의 관계가 점차 치명적인 사랑으로 발전되는 과정이 격정적이다 못해 서로 피를 토할 것 같은 치열함으로 다가온다. 홍콩의 대표적인 배우 양조위는 극 중 묘한 매력을 풍기는 악역 이로 등장, 그 특유의 몸과 눈 연기를 펼친다. 왕치아즈 역할의 배우는 놀랍게도 <색계>가 스크린 데뷔작인 중국의 탕웨이. 이번이 첫 스크린 연기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탕웨이는 연기 대선배인 양조위와 팽팽한 연기 파트너십을 보여준다.
<로스트 라이언즈> - For the Boys |
<로스트 라이언즈 Lions for Lambs>는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감독 겸 배우 로버트 레드포드의 통산 7편째 장편 극영화다. 로버트 레드포드는 미국 할리우드의 열성적인 민주당 지지자로 잘 알려진 인물. 그러나 연출 데뷔작 <보통 사람들 Ordinary People>부터 가장 최근작 <베가 번스의 전설 The Legend of Bagger Vance>(2000)까지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강한 정치색을 띤 현재형의 영화를 찾아볼 수는 없었다. 결국 미국의 일방적인 침략으로 귀결된 아프가니스탄 내전 소재의 <로스트 라이언즈>는 다분히 선동적인 느낌까지 풍기는 정치 드라마다. 정치적 야심으로 똘똘 뭉친 공화당 상원의원, 특종을 원하는 유명 저널리스트,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뇌하는 대학 교수. 영화는 이렇게 세 명의 유력 인사(decision maker)를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그의 확실한 목소리를 낸다. 다름아닌 '테러와의 전쟁' 이라는 명분하에 미국은 전세계적으로 불필요한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로스트 라이언즈>는 1시간 동안 어빙과 재닌이 대화를 나누는 워싱턴 DC와 말리 교수의 캘리포니아 대학 교수실, 그리고 긴박한 작전이 펼쳐지는 아프가니스탄 이렇게 세 곳을 오가며 '리얼 타임' 으로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영화의 원제인 '라이온즈 포 램스'는 1차세계대전 당시 무능력한 영국군 장교의 전략 실패로 인해 용맹한 영국 군인들이 희생되는 것을 통탄한 한 독일군 장교의 언급으로, 극 중 아프가니스탄 행을 자원한 두 대학생 어니스트와 아리안이 '라이온즈'에 해당되는 인물이다. 너무나 확연한 메시지를 지닌 제목처럼 <로스트 라이언즈>의 주제는 확연히 드러난다. <로스트 라이언즈>는 철저한 민주당 지지자의 시선에서 본, 현재 미국과 미국인들의 잘못된 선택에 대한 '자기 반성' 의 영화다.
<더 버터플라이> - 산산조각난 아메리칸 드림 |
미국에서는 ‘산산조각난(Shattered)’이라는 제목으로 공개된 <더 버터플라이 Butterfly on a Wheel>의 원제는 알렉산더 포프의 시 ‘Epistle to Dr. Arbuthnot’ 중 ‘who breaks a butterfly upon a wheel’이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이 구절은 사소하거나 중요하지 않은 결과를 위해 엄청난 노력을 쏟는 것을 의미하며, ‘breaking on the wheel’은 뼈가 부러지는 고통을 주는 고문을 가리킨다. 라이언이 랜달에게 고통을 주는 방식을 설명하는 제목인 동시에 이유를 간접적으로 언급하는 제목인 것이다. 완벽한 삶을 살고 있는 중산층 가장을 상대로 24시간의 무모한 게임을 시작한 반사회적 성격의 납치범. 납치를 소재로 한 스릴러영화로서는 평범한 설정이지만, 작품이 지니고 있는 긴장감과 박진감은 예사롭지 않다. 영리하게 짜여진 시나리오에 배우들의 연기 조화도 안정적이고, 결말 부분에 감춰 놓은 반전도 흥미롭다. 반전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모든 영화가 그렇듯 <더 버터플라이>를 재미있게 보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적은 스포일러다.
<트러블 앤 섹스> - 그와 그녀의 사정 |
<트러블 앤 섹스 Love Stinks>(1999)는 첫눈에 반해 동거를 시작했지만 서로의 단점을 발견하면서 마음이 틀어진 두 남녀의 이야기를 그린 로맨틱 코미디다. 세스와 첼시아는 꼼꼼한 성격, 자상한 마음씨를 가졌다며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지만 상이한 결혼관, 자잘한 성격차이로 차츰 등을 돌리게 된다. 스탠드업 코미디언 출신인 제프 프랭클린 감독은 세스와 첼시아의 직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이들의 불협화음을 묘사해 나간다. 시트콤 작가 세스가 집안에서 있었던 해프닝을 모두 각본으로 옮겨 무대에 재현되는 장면이나, 홈 데코레이터였던 첼시아가 세스의 집안을 자기 마음대로 바꿔버리는 장면은 자연스런 웃음을 유발시킨다. 하지만 <트러블 앤 섹스>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지극히 남성중심적인 시각으로 묘사돼 아쉬움을 남긴다. 결혼에 목을 맨 첼시아는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자 세스의 집과 재산을 빼앗으려는 악녀의 전형을 보이고, 첼시아의 여자친구들은 남자를 그저 돈으로 보는 스테레오 타입의 캐릭터가 대다수다. 8년 만에 지각 개봉하는 <트러블 앤 섹스>는 모델 계의 흑진주라 불리는 타이라 뱅크스가 첼시아의 친구인 홀리로 얼굴을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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